5. 나비야. 나를 지켜줘

온 동네가 내 나비였다.

by 이리진


나는 부동산이라는 수업에 막 들어간 전학생이자 열등생이었다.

나 말고 다 똑똑한 애들이 우글거리는 수업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조건 흉내내는 것이다. 애들 대화를 엿들어가면서 대충 진도 파악하고, 다들 웃을 때 같이 웃고, 집중할 때 표정을 관리한다. 필기할 때는 뭐라도 받아 쓰고, 울며 불며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반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냥 열심히 보고 듣고 눈치껏 외웠다. 곧 준비된 백수가 될 거, 그 전에 나 대신 일해 줄 부동산을 세팅하고 누워버리겠다. 월세라는 것도 받아보고, 대짜로 드러누워 일 년은 그냥 뻗어 버려야지.
타인의 걱정이란 건 비싸고 비싸고, 또 비싸다. 목 구멍 안에 걸리면 오래 동안 아프고 뜨겁다. 그러니 함부로 받지 않는 것이 길게 보면 좋다. 아무도 자세히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의 에러는.
난 아주 멈춘 게 아니라고, 덤덤하게 표정을 다듬고 반듯이 선다. 급조한 계산을 숨기고 나는 시행사 직원, 부동산 사장님들을 만나고 사려는 부동산 매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내렸다.


분양 사무실이란 미묘하게 뭔가 다르다. 여기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시장이다, 라는 느낌이 있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어느 정도 계급을 거르는 듯한 오만하고 속물적인 느낌, 그게 나를 묘하게 만족시켰다.
밖에서는 이리 저리 치이며 일하던 내게 이 곳은 신세계였다.


지금같은 부동산 폭등이 있기 훨씬 전이다.
나중에 복기해 보니, 이 시기는 하우스 푸어라는 이름 하에 부동산 투자를 기피하던 시절이었다. 매매보다 청약이 낫고, 청약이 되도 집을 사지 않던 시기. 그래서 젊은사람들은 부동산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분양 사무소와 모델 하우스에는 어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로얄이라고 부르는 우수한 매물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허름하게 입고 오신 분들이 소문 들어보니 입이 딱 벌어지는 자산가인 경우가 많았다. 의외로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은 별로 없었고 다들 눈빛이 강하고 말을 아꼈다. 나처럼 부동산을 처음 사는 분들도 아니었고, 다들 아는 것이 많았다.
구도심과 신도시, 전철 노선과, 개발 예정지에 대한 대화가 빠르게 오갔다. 건물 입지가 어떻고, 이면 도로가 어떻고, 횡단 보도가 어디로 나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는데 다들 침착하게 대답하며 지도를 넘긴다.


이런 저런 파스텔 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지도의 의미를 이 시기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의 구역 구분만 알겠고, 다른 건 안 보이는데 뭔가 다들 다 알아듣고 차분하게 질문도 잘하는 모습에 나는 눈치껏 오가는 대화를 적고 외웠다. 그렇게 초보는 상가를 사고, 오피스텔도 사고 부동산에서 브리핑해주는 예상 월세를 파악한다.


취득세를 내고, 월세를 이 정도 받으면 이자를 제하고 나면 대충 얼마가 나오는지 파악이 된다. 괜찮다. 버틸 만해. 이 정도면 생활이 된다. 여기도 좋아 보이네. 한 개 더 살까. 계약금이 되려나.

초보의 망상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살벌하게 피어올랐고,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반동은 미친 플렉스를 낳았던 것이다. 분양 사무실과, 모델 하우스, 부동산에서의 정중한 접대에 넋이 나간 나는 입으로 말하기도 무서운 거액을 지르고 만다.



이래서 사람을 너무 코너에 몰면 안 돼.


훗날 이 시기를 기억하면서, 나는 돈 들여 만든 사업장에서 세 번이나 쫒겨나면서 한이 맺혔던 건지 내가 잠깐 맛이 좀 갔구나. 생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겁이 없었을까.

이 시기 투자한 내가 살아남은 것은 그저 시기를 잘 탔고 운이 좋았으며, 귀인을 몇 분 만났기 때문이다. 그게 다였다. 나는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다리를 건넜다.



”나비야. 이거 먹어.”



잔금 날짜가 다가오는데.

사업장을 정리할 시기랑 맞물려서 잔금 날짜가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임차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입주장에 전세가가 바닥을 찍듯이, 신도시의 새 상가에서 매물이 우수수 쏟아져 나올 때, 임차가 원활하게 될 리가 없다. 이미 활성화된 오래된 상가가, 새로 지은 반짝반짝하는 상가보다 더 비싼 이유가 이것이다.

그 점을 그 때는 몰랐다. 그냥 대기업이 시공하는 초역세가 망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단순한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항상 주머니에 아기들 먹는 소세지를 몇 개씩 넣고 다녔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적된 피로와 분노로 내 판단력은 썩 좋지 않았다. 은퇴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는데 건강은 흔들거렸다. 치아도 빠지고, 영혼도 빠지고, 그냥 총체적인 난관이었다.
임차인을 찾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부동산도 세입자님 오실 날을 모른다는 것을 감 잡기 시작했다. 대출 이자가 머리 속에서 안녕하고 방문하더니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업 정리하고, 쉴 준비를 하는 주제에 겁 없이 거액의 빚을 내버린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잔금 이후 3개월 정도가 맥시멈이었다.


두려움에 위축된 나는, 일시적이라도 착한 사람이 되면 복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으로 동네 고양이들에게 소세지를 공양하기 시작한다.
나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지옥이니 작고 약한 것들이 측은해 보였다. 남 같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새벽 퇴근을 하고 있었고, 어두운 밤 거리에는 남루한 고양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내밀다가, 소세지를 까서 던져주고는 멀리서 그 놈들을 바라보았다.


여기도 나비, 저기도 나비. 동네 모든 고양이가 내 나비였다. 한번 눈길을 주니 고양이들은 어제 보고 나면 내일 다시 볼 수 있을지 불확실한 먹이 사슬의 약자였다. 이래서 저 놈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비들에게 소세지며 사료를 공양하며, 이 싸늘한 도시에서 그 놈들도 살아남고 나도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빨리 임대가 되지 않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큰 일을 저질렀을까. 분양 사무실, 부동산에 있던 그 정중한 직원들은 물건 팔고 나니 과거의 그 분들이 아니었다.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없이 싹싹하다가 이렇게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이. 과장 광고 아니냐며 달려와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화는 빗발쳤다. 그러나 계약은 무를 수 있는 게 아니며 도장은 무서운 것이다.

투자는 언제나 낙오자를 낳는다. 그리고 다치는 건 투자자 뿐만이 아니다.


이 때 만난 부동산 사장님 한 분은 새벽에 자기 차에서 돌아가셨다. 제일 괜찮은 분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과로와 스트레스.

부동산 업계의 사람들도 사람이다. 내 투자 결정은 내 책임이다.



그래. 멋지게 인정은 하는데 불안감이 바짝 타올랐다. 사업장을 다시 차리고 한번만 더 달려볼까. 그냥 부동산 다 던져 버릴까. 가족들에게는 다 말하지 못하고, 온갖 생각에 나는 새벽에 허공을 바라보았다.


사업을 정리하면서, 집기를 헐값에 매도하고, 내 손으로 설계한 인테리어를 때려 부순다. 교육청에 폐업을 신고하면서, 더운 여름날 나는 지하철에서 목이 뜨거웠다.

어디 가도 헷갈리지 않는 당당한 백수가 되었다. 감은 눈꺼풀 위로 따끈따끈한 그 느낌에 다시 성질이 올랐다. 아니 나는 멋지게 사업 정리하고, 부동산 사서 월세 받는 우아한 은퇴자가 될 건데, 나는 아무도 걱정시키지 않는 야무진 사람인데. 나는 엄청나게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남루한가.



그 즈음에 지하철 유리창에 머리를 쾅 내리쳤던 것이다. 아프지 않고 시원해서, 내리치는 김에 두어 번 내리친 것 같은데 누가 말려준 것 같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떻게 수습하고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나쁜 기억은 차라리 없애는 것도 괜찮지 않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소마를 삼키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모두 엔딩이 나지 않는 하루 하루를 살아나가야 하는데 발생하는 모든 상처를 다 안고 갈 필요는 없다. 적당히 지우면 기운 내서 다음 날을 맞을 수도 있다. 기억이 조금 사라진 나라고 해도 그것도 나다.

그리고 내일은 또 좋을 수도 있는 거니까. 어쨌든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


그래, 내일은 좋을 수도 있다.
임차인이 오셨다. 그리고 매수자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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