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피어오르나.
숨을 돌렸다.
찬 바람이 불 무렵 임차인이 맞춰졌다. 여러 개의 상가가 무사히 세팅되었다. 월세로 이자를 감당하고 남은 소득이 모여 생활비 이상이 만들어졌다. 아주 큰 돈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 한도 안에 맞춰서 살 수 있으므로 나는 만족했다. 일하지 않고 받는 자산 소득은 처음이었기에 큰 기대 없이 사고 없는 투자를 한 것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귀인이라고 해야 할까. 가장 비싼 1층 상가에는 잔금 치르기 전에 매수자가 나타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강남에서 오신 투자가는 하루 동네를 둘러보더니 여러 번 재지도 않고, 내 상가를 덥썩 사주셨다.
" 한 장 드리는 걸로 하고, 중개사님 따로 챙겨드리겠습니다. "
배포에 존대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이때부터 가지게 된 투자 철칙이 있는데. 무조건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비싼 것을 사라는 것이다. 아파트던, 상가든, 오피든, 무조건 제일 좋은 걸 사면 상승기에 수익도 높지만. 최악의 지옥에도 탈출이 쉽다. 이자 감당만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었다. 내 부담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숨이 확 트였다.
그렇게 계약이 마무리되고, 나는 1년 일해야 벌 수 있던 소득을 한 순간에 쥐었다.
첫 번째 귀인이었다.
소득 구조가 바뀌었다. 나는 이제 일할 곳이 없어진 한때 자영업자였고 현재 백수였다.
한동안 잠만 잤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자고, 혹시 잔소리를 하면 호텔방이라도 나가서 잘 생각이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내 가느다란 소득은 이어졌다. 월세 파이프 라인은 나를 숨쉬게 했고, 상가 매도 수익은 목돈이 되어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아. 인정해야 한다.
내 노력은 외부의 폭력에 쉽게 무너져 버렸지만, 자본은 내 존엄을 지켜주었다. 우습고도 슬펐다. 내가 골골대며 쉬고 있어도 아무도 나를 동정하거나 한심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는 도박을 한 것뿐인데 사람들은 전략이라고 한다. 내 몸값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추락을 면했다.
겨울이 왔다. 추위가 시리다 못해 아팠다. 냉기가 칼날 같아 골이 울렸다.
나는 아침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그냥 잠에만 빠져 있었다.
10년 넘게 밤샘하며 굶어가며 일하던 패턴은 몸에 새겨져 있었다. 새벽에는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깨어 있었고, 해가 뜰 때, 잠들어 오후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오후에도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자라고 해도 잘 수 있었다. 한달 내내 자라고 해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먹는 것도 귀찮았다. 생각은 극단적으로 흐르고, 몸은 잠들고 싶었다.
거울을 보자, 푸석하고 퀭한 얼굴이 비친다. 먹는 게 없는데 퉁퉁해지는 배가 이상했다. 아침에는 납작한데 하루 종일 점점 부어오르는 배가 아팠다. 이 때는 잘 몰랐지만 나는 대사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근육이 없어진 허리와 등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앉고 서고 눕는 것도 느렸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바람만 스쳐도 눈이 시렸다.
그러나 그게 뭐라고. 나는 쉴 수 있는 것 만으로 괜찮았다. 미칠 것 같은 전화 벨 소리에 쫒기지 않고, 웃으면서 영업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살 만했다. 무표정하게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다니. 어우야, 살 만하다.
약속이 있으면 일주일 정도 몸을 쉬게 해야 하루 나가서 사람들과 웃으면서 어울릴 수 있었다. 귀가하면 다시 일주일을 앓았다. 이건 과로의 후유증이기도 했지만 약한 우울증 같기도 했다. 기력이 없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증상. 이게 우울증인가 희미하게 자각한 순간에 나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나는 보수적인 성향이다.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견디고 덮기로 했다.
몇 차례 감정이 요동치고 극단적으로 치닫았다. 별 일 아닌 일에도 자꾸 위험한 상상이 든다. 설움도 과하고, 분노도 과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억울한 것만 생각난다. 안 좋은 선택을 한 연예인들의 기사가 귀에 꽂혔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변한다. 취향도, 성격도. 나를 제대로 추스릴 수 없으니 가족도 보고 싶지 않다. 어떤 소리도 다 소음이었다.
번아웃은 사람의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면을 헤집어서 숨겨둔 약점을 꺼낸다. 조용히 소문 없이 먼지처럼 사라졌으면.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프고 볼품 없어진 내가 다시 사람들과 만나고 사랑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될 것 같지 않았다.
부동산이 준 소득은 그저 내 존엄을 지탱해 줄 뿐이었다.
존엄은 중요하지만 인간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 쑥 캐러 가자. 일어나.”
난 풀이라고는 콩나물밖에 몰랐다. 파란 건 다 시금치고.
동면하는 곰처럼 웅크린 내가 얼마나 꼴 보기 싫으셨으면, 꽤 오래 참아주던 엄마는 완전 무장을 하고, 가방을 멘 채로 잠든 나를 툭툭 찼다. 서울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촌뜨기에게 웬 쑥을 뜯으러 가야 한다고 큼직한 배낭을 주시고, 무슨 낫인지. 칼인지를 주시고, 그래도 자외선은 막아야 한다고 밀짚 모자를 주시고 가자는 것이다.
아니. 쑥을 캐서 뭐하시게요. 하니 엄마는 떡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떡이요? 쑥떡? 아니 그게 뭔데. 나는 기절할 것 같았다.
” 유명한 데서 사드릴께요. 사 드시면 되지 그걸 뭘 만들어 “
”시끄럽다. 얼른 씻고 나오면 가서 맛있는 거 사줄께”
아니 일단 뭐가 먹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오래 걸을 자신도 없고, 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떡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니 일단 무슨 쑥을 땅에서 캐서 떡을 만든다는 말인가. 자급자족도 아니고. 매장 가면 널린 게 명인의 떡인데.
도깨비처럼 부릅뜬 엄마의 눈초리가 짜증스럽고 그래도 눈치 보여 화는 못 내겠고. 몸은 축축 늘어지는데 엄마는 서울에서 쑥을 캐면 다 오염되어 있으니 경기도 외진 공원으로 가시겠다는 것이다.
하루 걸러 토하면서 빌빌거리는 나를 데리고. 쑥과 시금치도 구분이 안 가는 나를 데리고. 버스만 한 시간 타는 야외 공원에 가서, 대나무 돗자리를 펴고, 밀짚 모자를 쓰고 쑥을 캐시겠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 신흥 종교도 아니고.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엄마는 자꾸 누우려는 내 등짝을 찰싹찰싹 후려치며 당신께서 쑥이 매우 먹고 싶으시다며, 여자에겐 쑥이 좋고, 소화가 잘 되고, 약보다 낫고. 어쩌고 하시며 나를 기어이 김포 평야까지 끌고 가셨다.
밀짚모자에 , 난 배낭을 싫어하는데 꼭 배낭을 주셨다. 손이 자유로워야 쑥을 캐고 들고 온다 이거였다. 아니.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엄마. 차라리 쑥을 사는 게 어떨까요. 꼭 직접 떡을 만드시고 싶으시다면.
그러나 엄마는 나를 발로 차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막 솟아나는 아기 쑥을 캐려면 지금 뿐이다. 파는 쑥은 질겨서 못 먹는다.
나는 후회했다. 수익형 부동산을 살 것이 아니라 집을 샀어야 했다.
독립해서 혼자 조용히 칩거를 했어야 하는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다더니. 제 때 독립을 못한 죄로 나는 그 날부터 무자비하게 쑥을 뜯으러 끌려 다니기 시작했다. 눈이 시리게 연두색이 가득한 들판에 돗자리를 깔고 작은 낫을 쥐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다.
이런 낫은 또 어디서 사신 건가. 왜 내가 뜯은 것은 죄다 쑥이 아니라 잡초라고 하시는 걸까. 쑥은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피어오르는 거야.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못 뜯겠어요. 하니 엄마는 아프면 돗자리에 좀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 뜯으라고 하셨다. 나는 피곤해 눈물이 핑 도는데 엄마는 무심하게 산더미처럼 쑥을 캐서 그걸로 떡을 만들어 나를 먹였다.
밥이 껄끄러워 안 넘어가면 그냥 쑥떡을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을 과연 신뢰해야 하나 의심스러웠다.
기절할 것처럼 피로해서 잠들고 나면 다음 날 다시 배낭을 진 엄마가 쑥을 캐러 가자고 호령을 하신다. 시간이 없다. 일어나라. 서둘러라, 쑥은 지금 시기에만 나고 놓치면 못 먹는다. 전쟁에 출전하는 대장군처럼 서릿발같은 그 기세에 나는 비실비실한 군졸처럼 끌려나갔다.
봄이 오면 쑥이 난다는 세상의 심플한 규칙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진짜 왜 이러시냐고 울며 불며, 짜증을 내다가 사과를 하다가 한 대 맞고 다시 입이 쭉 나온 채로 쑥을 캐러 다녔다. 엄마 세대는 왜 그렇게 쑥떡을 좋아하나 고찰도 하고, 힘들어 어흐흑 누웠다가 이를 악물고 쑥을 캤다.
눈부신 햇빛을 손으로 가린 채로 멍하니 음악을 듣다가, 엄마랑 옛날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아 웃기도 웃었다. 노오란 햇빛이 와글와글 쏟아지고 나는 도저히 고독한 분위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봄이었다.
어떻게 고마워해야 할까. 엄마에게.
어떤 말로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런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