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라면.
백화점을 좀 털어야겠다.
봄 볕에는 며느리, 가을볕은 딸 내보낸다고 하던데 나는 봄날 거지꼴로 끌려 다니는 백수 딸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특출나게는 못해도 그럭저럭 사회인처럼은 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뭐 망태만 들면 완벽한 심마니였다.
집에는 쑥이 산처럼 쌓였다. 그 해, 나와 엄마는 쑥의 원수이자 천적이었다.
더는 이럴 수 없었다. 최소한 사람 꼴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쑥을 뜯다 뜯다 보니, 방구석에서 기어 다니던 나는 이제 충분히 동네 백화점 정도는 걸어서 갈 수 있을 체력이 되었다.
땡볕 아래서 그놈의 쑥도 뜯는데, 시원하고 깨끗한 백화점에서 차 마시며 노닥거리는 것은 아주 할 만할 것 아닌가. 마치 손발에 무거운 추를 달고 체력 단련하다 어느 순간 전투력이 쑥 올라간 만화 주인공 같았다. 나는 조금 기가 살아났다.
”고객님. 핏 하게 입으시니까 확 살잖아요. 왜 펑퍼짐한 것만 찾으세요. 전 이거 꼭 추천하고 싶어요. “
” 연한 코랄색이 딱이에요. 맨 입술로 다니면 건조하니까요, 이거 하나 깔아주시고, 위에 포인트로…..”
”이 캐시미어 코트 지금 가져가세요. 패딩이 편하긴 한대요, 질 좋은 코트 하나는 후회를 안 해. 이거 시즌 세일 진짜 많이 들어갔어요… “
그렇다. 백화점이다.
백화점의 친절한 언니들은 말만 다정할 뿐. 나를 조목조목 용서 없이 깠다.
나를 꼭 붙잡고 이것저것 대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진지하고 심각했다. 내가 입어보기를 끝내 귀찮아하면 내 등짝을 살살 쓸어주며 달래서 집요하게 입어보라고 하고, 입고 나오면 박수를 짝짝짝 쳐주던 매장 언니도 있었는데 음..... 내가 일하고 있었을 때라면 스카웃하고 싶은 인재였다.
인류애인지 매출에 대한 열정인지, 나는 매장마다 들르면 한참을 붙잡혀 있었다.
눈이 풀려 푸대 자루같은 원피스만 입고 있는 나.
뭘 바르기도 귀찮아서 봄인데도 입술이 터 있던 나.
그녀들은 모자란 애를 보듯 나를 요리조리 고쳐보려고 노력했다.
개선할 의지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소비 자체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별 거부감 없이 추천받은 것들을 사들였다. 쇼핑백을 방에다 두고 비닐 포장을 풀기도 귀찮아 쌓아 두는 게 며칠이었다. 코트를 입으려면 이너를 다시 사야 하고, 이너를 사고 나면 가방이 필요하고, 가방이 생기면 신발을 사야 한다. 립스틱을 바르려면 베이스가 필요하고, 베이스를 하려면 다시 로션이 필요하다.
뭐 이렇게 갖춰놓은 게 없나. 나는 단계별로 미션을 깨듯이 매장을 돌았다. 체력이 없으니 멀리는 못 가겠고, 가까운 백화점만 뻔질나게 출근해서 오늘의 아이템을 사고, 행사장을 들렀다가 지치면 차가운 디저트를 앞에 두고 사람 구경을 했다.
10층 카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참 보기가 좋다.
사람의 외모는 다 거기서 거기지만, 잘 다듬어진 디테일은 차이가 난다. 학군지에서 오래 학원을 하다 보면 이미 알만큼 알게 되지만, 진정한 그루밍은 화려함이 아니다. 시간과 금전상의 여유는 사람을 골격부터 피부, 머리카락부터 목소리까지 바꾸어놓는다는 것을 안다.
단정한 머리칼에 깨끗한 피부, 반듯한 자세에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톱과 큐티클,
소재가 좋고 재단이 잘 된 무난한 컬러의 옷.
로고가 크지 않은 가방과 신발들.
남자나 여자나 다르지 않았다. 일하면서 많이 봤던 풍경이다.
나는 저런 사람들과 매일같이 만나며 일을 해야 했으므로 내가 가진 게 10이라면 70 정도는 있어 보이게 부풀리는 방법을 배웠다. 가끔 이런 것들에 적의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 풍경 속에 깔려있는 폐쇄성을 굳이 애써 인식하기보다, 그냥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감상하는 것이 편안했다.
그러나 이제.... 바라보기만 할 필요가 있나?
무표정하게 사람들을 구경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 일 없이 갑자기 내 인식이 변했다.
뻔질나게 새벽 퇴근하는 것도 아니고, 막아야 할 대금도 없는데, 나는 왜 저걸 바라보고만 있을까.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찻잔을 툭툭 두드린다.
지난 오랜 체험은 마치 묶어놓은 개처럼 나를 익숙한 세계 외의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게 잡아두고 있었다.
씁쓸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쇼핑해 놓은 물건들을 걸치고 바르기 시작했다. 체력이 후달리면 침대에 한참 누웠다가 끙 하고 다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고 손질했다. 그루밍도 제대로 하려면 일이다.
그렇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면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게 되었다. 그러려던 게 아닌데, 뭔가 그렇게 된다. 우연히 눈을 내리깐 순간, 대충 막 끌고 다니던 낡은 단화에 시선이 가고, 나는 다음 순간 예쁜 샌들을 찾고 있었다.
푸석푸석하고 대충 하고 나온 꼴이 갑자기 의식되고 불편해졌다. 세상 사람이 보든가 말든가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 달라졌다. 타인의 걱정과 배려를 받고 싶지 않았고, 깨끗하고 환한 이 공간에서 이질적으로 혼자 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일 접었잖아. 당장 굶을 것도 아니고, 쓸 돈도 있지 않나.
사람 꼴을 갖춰보자. 예쁘게 하고 다니고, 사연 있는 것처럼 구질구질한 티를 내지 말고, 밝고 화사하게.
내 쇼핑에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미루고 미루어 놓았던 것들이 일제히 자기주장을 시작했다.
천년만년 젊을 것도 아니고. 언제 또 이런 날이 오겠나. 나는 오프라인 온라인 할 것 없이 바쁘게 사들였다. 소비는 없던 기운도 끌어올렸다. 돈 쓸 시간도 없어 비슷한 옷만 입고 다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자본주의가 좋은 게 뭐냐. 탕진잼이지. 나는 통장 잔고를 대강 가늠하며 내일이 없이 사들였다. 물론 백수의 정체성을 잊을 수 없으니, 아주 과한 소비는 할 수 없었지만, 나는 내 기준의 사치를 시작했다. 색깔별로 같은 옷을 사들이며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약간은 복수심 같기도 한 기묘한 흥분. 다 엿먹어라.
화끈한 소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힘에 두들겨 맞았던 울분을 풀고 싶었고, 역설적으로 돈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감정의 기복은 여전히 심했지만 매일같이 하나씩 뭐든 사들고 오다 보니 기분이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잘 메지도 않을 명품가방도 사고, 절대 안 입을 것 같은 옷도 사고, 지나가다가 예쁘면 사고,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에 들어서 사들이는 쇼핑을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피부과에 가서 잠깐 10분 상담하고 덜컥 카드를 그었다.
”엄마 열 번, 나 열 번이야, 무조건 점심 먹고 나면 피부과 가서 드러누우세요.”
”엄마까지 뭘 그렇게 비싼 걸 해. 너나 해. “
”아이 씨. 몰라 엄마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 나 그냥 거지 꼴로 살 거야. 엄마 갈 거야, 말 거야?”
엄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피부과 케어를 받았다. 나는 좀 염세적인 면이 있는데 엄마는 확실히 요즘 기준으로 훈녀랄까. 부지런하시고 잘 꾸미고, 상냥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익숙하지 않은 좋은 곳에 가도 우아하게 잘 적응하고 즐기는 그런 면이 나와 달랐다. 피부과에서도 금세 의사샘과 친해져서 종알종알 이야기하시며 레이저를 받는 엄마가 좋았다. 그리고 나의 고질병, 허세가 채워져서 더욱 좋았다.
이제는 좀비같은 수면 리듬을 고쳐야 한다.
새벽, 해가 뜨기 전 파란 새벽에 잠들고 낮까지 잠들어 있는 이유는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잠들어 있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면 사람은 계속 잔다. 이건 사교육 필드에서 학생들한테도 자주 보던 패턴이었다. 일부러 초저녁부터 수면 보조제를 먹고, 아침에는 기어나와서라도 물 속에 들어갔다. 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면 어떻게든 깨어났다. 일어나기 싫을까봐. 나는 온갖 비누와 바디용품을 사다 놓았다.
우울증 환자에게 향기로운 바디 클렌저를 추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로션을 바르고 식사를 하려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인데도 그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 안 겪어본 사람은 그렇게 게으를 수 있는지 놀랍겠지만... 그게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근성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아무튼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런 시기가 있다.
일어날 수 없을 때, 씻기도 힘들고, 머리도 말리기 힘든 시기, 밥 먹는 것보다 커피로 끝내고 싶은 그런 시기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나는 바디 클렌저가 필요하다. 다정한 거품과 향기에 위로받으러 비척비척 일어나는 그런 아침도 있기 때문에.
빈약한 의지력을 자책하는 대신, 나는 매장을 다니며 좋은 향기가 나는 바디클렌저를 샀다.
미루어 놓은 치과도 가고, 안과도 가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밥을 먹었다. 백화점을 매일 다니다 보니 세상에는 예쁜 것들도, 맛있는 것들도 참 많았다. 잔고를 남기지 않고 매달 써버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는 포장을 푸는 속도보다 빠르게 물건을 샀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조금 생기고, 약간의 체력이 받쳐주니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혼자뿐이고, 소득은 가늘게라도 이어지고 있었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이제 없지 않은가? 그래, 나한테 쓰는 거다. 다 쓰고 그 다음은 알 게 뭐야.
소비는 어느새 일이 되었다. 이틀 걸러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 엄마는 쇼핑도 꼭 저같이 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약간 살풀이 같기도 했다. 항상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고 긴장하던 버릇대로 나는 소비도 전투적이었다.
나는 20대부터 쇼핑하고 커피 마시며 나를 단장하는 모습을 잘 상상할 수 없었다. 바닥에서 시작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한테 쓰기 전에 챙겨야 할 사람이 항상 떠올라서. 별 것도 아닌 것들에 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그 울렁한 감각이 짜증나서 그냥 내가 선수쳐서 빨리 포기하는 게 편했다.
하나씩 포기를 할 때마다 칭찬을 듣는다. 뭐, 나만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슬퍼하는 것도 구차하다.
나는 반항심이 센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가스라이팅이나 암시에 약한 사람이기도 했다. 건강이 작살나고, 직업이 날아가고 대출을 끌어안고 우울증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나는 내 같잖은 금기들을 무시할 수 있는 똘기가 생겼던 것이다.
방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며 문득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 카렌이 떠올랐다.
그깟 구두가 빨간색이면 어떻고, 검정 색이면 어때서. 아예 맨발이면 또 어때서 사람 발목을 자르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애들 보는 동화가 되었다.
카렌의 잘린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로 마을을 춤추듯 걸어나가고, 카렌은 나무 의족에 목발을 짚고 평생 봉사와 회개를 하는 동화.
동화는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큰 규율을 반영한다.
빨간 구두, 혹은 분홍신. 그건 그냥 허영을 단죄하는 금기의 이름이다.
공동체에 적합하게 살고 네 감각과 욕망을 위한 소비는 눈치껏 자제하라는 금기.
숨가쁘게 사들이다 보니 알겠다. 빨강이나 검정이나 구두는 구두다. 그냥 물질은 물질일 뿐이다.
고상한 취미로 쳐주는 책이나 시뻘건 구두나, 똑같은 소비다. 가져서 즐거운 것.
왜 고상함과 천박함을, 그 폭력적인 가치관을 덮어씌우나.
냉소가 자라고 때늦은 반항심이 샘솟았다. 머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손톱을 다듬고 시향도 안 해본 향수를 사들이면서 나는 이제야 와야 할 곳으로 찾아온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이거였구나. 대가를 치르고 케어를 받는 인생.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질식시키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여행 다니고, 쇼핑하며 가족들과 좋은 데서 식사하는 바로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목표였구나, 나는 일을 접고 난 후에 처음으로 희미한 만족감을 느꼈고, 그 감각을 유지하고 싶어서 부지런히 카드를 그었다.
”아유. 우리 고객님. 어디 아팠어요? 혹시 애기 낳았어? 머리카락이 아주 지푸라기가 됐네. 난 이거 파마 절대 못해요. 클리닉만 합시다. “
”아이 씨. 저 결혼도 안 했잖아요. 쌤 “
오랜만에 간 미용실에서 담당샘은 혀를 끌끌 차며, 머리를 연신 만져보고 가위를 대보고 한숨을 쉬었다. 모처럼 좀 자르고 펌이라도 할랬더니, 내 꼴을 본 담당샘은 경악을 하며 이 머리칼에 파마약을 대는 꼴을 절대로 볼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3교대를 하는 거냐, 혹시 하며 묻는다며, 안 보이는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냐.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단백질이 다 빠졌냐. 호들갑에 난리였다. 샘 창피해, 고만해요.
다시 한번 생각하지만 미용실 다녀오는 건 참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도 다녀오고 나니 나는 동물 병원 다녀온 강아지처럼 훨씬 의기양양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더 이상 피로에 절어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우울증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어서 진심으로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씻고 바르고 입고, 다듬는 모든 일련의 행동들. 모든 그루밍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자, 마치 망가졌던 전원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나는 잠시라도 화색이 돌았다.
활짝 웃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쉬워졌다. 넉살 좋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작은 칭찬이 내 불안을 지웠다. 화사하게 꾸미고 보송보송한 상태로, 시원한 백화점에서 달달한 것을 마시며 예쁜 것들을 쇼핑하는 것은 내게 과자 같고 크림 같았다.
이렇게 오래오래 행복했어요 라고 끝나는 동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백화점에서 사들인 안도감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의기양양하고. 뿌듯하던 그 감각은 자꾸만 희미해져서 쇼핑의 간격을 좁혀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콧대 높은 척 하는 백화점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매장마다 돌아가면서 번갈아 세일을 하고, 우수 고객을 위한다는 특별 이벤트는 어김없이 매달 열린다. 내가 아무리 물건을 사들여도, 판매원들은 언제나 더 팔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내 알량한 잔고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산 물건이 내일도 나를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참 이상한 경험이었다.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그 당일이 제일 좋고, 택배는 받는 그 날이 제일 즐겁다. 사놓은 물건들이 서랍과 옷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딱히 쓸 데가 없는 물건을 보면서 이걸 왜 샀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 이제는 사들일 것도 없어서, 순간의 즐거움도 더 빌려오기 어렵다는 것.
새벽 세 시에 다시 음악을 틀어놓는다.
폰을 던져 둔 채로, 침대에 기대어 멀거니 창문을 본다.
알고 있었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렇게 될 줄 알고도 망나니 칼춤 추듯이 돈을 써재끼고, 행복한 사람들을 흉내내며 백화점을 배회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에 잘 자리 잡고 있는 웰메이드 기성품이 될 수 없다면 그 비슷한 외견이라도 갖추고 싶었다.
즐겁고 밝은 모습으로 깔깔대며 엄마와 쇼핑하고, 친구들과 여행하는 그런 풍경 사진이라도 남겨두면, 정말 그렇게 살고 있었다고 훗날 내가 믿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나를 완전히 잘 속일 수 있었을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서랍 속에 포장된 물건들을 넣고 천천히 밀어 닫았다.
허망하지만 이것들로 나는 한순간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걸로 된 거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 흔한 경험을 샀다. 즐거웠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행복한 거짓말의 순간들이 나한테는 그래도 위안이었다. 진짜였던 아니었든 내 마음은 잠깐 쉬어갔다.
정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눈과 귀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