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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29. 2024

두 달만, 읍 약사. 1



“와, 미친”



지난 3달간 애써 외면하던 통장잔고를 확인하고 내뱉은 말이다. 

대학병원을 퇴사하며 ‘이곳저곳을 마음껏 누비는 방랑자’ 가 될 것이라는 거창했던 마음가짐. 

자유로운 보헤미안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한 걸까. 


막상 귀국하고 보니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이젠 돈도 없는- 

말 그대로 가진 것 하나도 없는 불안정한 내 상황은 불안감이라는 파도가 되어 나를 뒤덮는다. 거칠 것 없던 지난 날의 내 모든 소비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뇌와 심장을 콕콕 찌른다. 



‘너 이제 무슨 돈으로 살래?’ 



불안감을 느끼는 내 머리와 달리 몸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 암막 커튼으로 인해 깜깜한 방, 그 어떤 빛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 이불 속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집어 넣은 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잤다. 배고픔에 눈을 떴다. 냉장고에서 대충 몇 가지 반찬을 꺼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구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 중 하나의 제목이 눈에 번뜩 들어왔다.



『1, 2월 단기 풀근무 약사님 모십니다. 숙소 제공』



위치는 경상북도 포항. 

‘숙소도 제공하니까 워케이션 느낌으로 한 번 가볼까? 바다도 볼 수 있을 테니.’

지극히도 단순한 생각으로 바로 지원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구인공고를 올린 약국장님이다. 

걱정인 점은 졸업 후 병원에서만 근무한 터라 약국 업무, 특히나 ‘일반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내 지식의 부족’ 이다. 불안한 마음에 내 상황에 대해서 몇 번이고 말을 했다.



“우리 약국이 일반 의약품 종류가 굉장히 많아서 공부 엄청 되겠네요!”



감사할 따름이다. 병원 경력만 찬 초짜배기나 다름 없는 나를 뽑아 주셔서.

그렇게 난 커다란 캐리어에 두달간의 포항살이 동안 필요할 짐들을 챙겼고,

떠났다. 포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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