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둘째 딸이 유튜브에서 학습된 기계 같은 소리를 하고 다닌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자세히 들어보니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에서 자신의 계정을 홍보하는 말인데, 나름 음률이 있어서 반복적으로 따라 하기 좋다 보니 두 딸이 고스란히 따라 한다. 며칠 전부터 똥 밟았어 노래를 부르며, 구독을 연신 외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어렸을 때 '못 찾겠다. 꾀꼬리~꾀꼬리', '웬 열~' 등 유행어나 어디서 전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말을 따라 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은 흘렀지만 조금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유튜브를 이겨보려고 무모한 도전을 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용 시간을 통제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크리에이터들은 그런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용해서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을 은연중 학습시켜 가볍고 고운 손가락을 빨간색 버튼에 가져다 놓게 만든다. 과연 우리 아이들만 구독을 외치고 있나?
며칠 휴가를 얻어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글을 쓰는 만족감보다 "구독, 라이킷, 조회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까지는 이른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여 초고를 아내에게 보내고, 친한 작가분들과 글을 공유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응원하는데 정성을 더하고 있지만,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발행하고 반응을 보면서 흐뭇해하거나 좌절하는 짓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구독자가 늘면서 글에 대한 부담감이 더해지는 것을 처음 느꼈다. 처음으로 다 쓴 글을 지워보기도 했고, 발행한 글 중에도 지우고 싶은 글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진짜 작가처럼 고뇌하지 않고 '담벼락의 낙서도 소중한 기록이다'라는 초심을 유지하기로 다짐했다. 이래서 새벽에 글 쓰는 게 좋다.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정리된다.
최근 '기주 효과'로 구독자가 조금 늘면서 '구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사전적 의미는 신문이나 책 따위를 구입하여 읽는 행위를 말하는데, 지금은 여러 범주에서 활용하며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가 부여된다. 5년 전쯤 이태원 한 꽃 카페에서 꽃을 처음 구독하면서 세상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모기업에서 구독 플랫폼을 새롭게 론칭한다는 말에 우리 삶 속에 구독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상황도 한몫을 했다. 요즘 내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브런치에도 구독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구독에 대한 내 생각도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사실, 구독은 취향이다. 궁금하고 보고 싶어서 누르는데,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다음에 찾기 어려워서 쉽게 찾기 위해 누를 수도 있고, 누르는 것조차 귀찮아서 마음에 드는 계정을 누르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구독은 관심의 표현이다.작은 손가락 동작 하나에서 전해지는 소소한 행복의 결정체인데, 희열과 분노를 동반할 수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의 구독으로 환희를 느끼는가 하면 신뢰하고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의 구독해지 또는 팔로우 취소로 분노나 아픔을 격을 수도 있다. 친구나 가족에게 '나 삐졌습니다'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연인 간에 이별을 통보하는 역할을 할 때도 있다. 구독 버튼 하나 누르는데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구독은 신분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구독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관심과 신뢰가 높다는 징표로 활용하다 보니 상업성과 활용성이 뛰어나 자연스럽게 계층을 구분하게 된다. 브런치 계정 중에는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글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고, 구독자는 없는데, 꾸준하게 좋은 글을 써서 감동을 주시는 작가분도 있다. 심지어는 구독자를 전부 지운 작가분도 봤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한 작가분은 구독자는 한 자릿수이다. 하지만, 글이 너무 좋아서 매일 찾아가 읽고 감동한다. 다른 사람들이 구독하지 않고 혼자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마도 곧 구독자가 많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좋은 글과 작가는 절대 숨을 수 없다. 결국 독자가 다 찾아낸다.
구독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니다. 구독자가 몇 명이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곧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한다. 다만, 구독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좋아하는 글 쓰기에 전념해야겠다. 나를 구독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나에게 보내준 관심과 정성을 보답하고 응원하는 뜻으로 내 작은 손가락 동작을 하기로 했다. 글과 사진, 그림 그리고 생각이 내 취향과 다르더라도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고 싶다. 취향은 변하기 때문에 소통의 기회를 열어 놓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 구독은 소통이라는 지점에서 생각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