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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6. 2021

착한 네 살 어리광(狂) 극복기

극복보다는 순응

 네 살 둘째는 미운 네 살 정도는 가볍게 무시한다. 스스로 '착한  살'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훈육과 교육은 순간 극복하면 되는 것으로 치부하며, 이제는 반말과 폭력까지 일삼는다. 가끔 언니를 때리는 지경이라 방에 생각하는 의자를 만들어서 타이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영락없는 말썽꾸러기와 장난꾸러기이며, 개구쟁이가 되었다.




매일 밤 춤판이 벌어진다


 말이 많은 둘째는 할머니와 같이 자는데, 잠들기 전 30분은 노인을 농락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할머니 물 가져다줘, 할머니 등 긁어줘"

"할머니 왜 안자? 할머니 놀아요!"

 

 이제는 재방에 재재방을 넘어서 일상이 되어버린 대사로 할머니 역시 가볍게 무시한다. 그러다 두려운 음성이 건넛방에서 내게 전해진다.


"할머니 아빠방 가서 잘래!"

오랜만에 할머니가 대답한다. "아빠 피곤한데..."


 걱정을 하시는데, 말끝이 조금 이상하다. 잠시 뒤 검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영화에서 보면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오는데, 우리 집 검은 그림자는 밤 열 시가 넘었어도 날아다닌다. 매번 아래층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아빠! 나 여기서 잘래요!"


 싫다. 분명 잔다는 명분 아래 날 괴롭히다가 졸리면 무시하고 할머니한테 갈 것이 뻔하다. 초장에 승부를 해야 한다.


"늦었으니까 그냥 들어가서 주무세요!" 실수다. 허점을 보였다.

"아빠는 왜 나한테 주무세요라고 해요?"

"주무세요는 어른들한테 하는 건데요!"

"아빠" "아빠 왜 대답을 안 해요?"


 얼마 전 비슷한 말로 나를 헷갈리게 했던 MBTI 설문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이런 상황이 되면 무시할 수밖에 없다.


"저리 가!"

"왜 저리 가라고 해요? 나쁜 말 아니에요?"


 그렇게 십여분이 지나 열 시를 훌쩍 넘어간다. 그래도 부녀의 사랑은 존재하니, 타협을 시작한다.


"아빠가 비행기 태워줄게 한 번만 타고 가자"

"꺄~~~ 비행기 출발"


 두세 번 태워주고 돌아가라고 타이른다. 그때부터는 한 번만 공격이 시작된다.


"한 번만, 한 번만"


 그렇게 한 번만이 열 번을 넘어 스무 번 정도 되면 계획했던 퇴고와 독서는 뒤로 한 채 육신만 보존하자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래도 웃고 있는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정말 바보 같다. 가짜 웃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영락없는 진짜 웃음이다.




몸에 그림을 그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


 휴일에 처음으로 둘째만 데리고 놀러 나갔다. 예상대로 둘째는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준다. 연출 능력은 타고난 아이다. 큰 딸은 어려서부터 얌전했기에 세상과 마찰 요소가 전혀 없었는데, 둘째는 우리가 평온하게 살고 있는 세상을 싫어한다. 극적 요소를 보태주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가게의 화분을 넘어뜨리고 전혀 모르는 이상한 아줌마와 살짝 부딪쳐서 욕을 먹은 적도 있다. 덕분에 몇 년 만에 한바탕 했지만. 여하간, 늘 시끄럽고 산만하며 말과 행동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지켜보고 있으면 과거의 내 모든 죄가 떠오른다. 분명, 지금 상황은 과거부터 내가 잘못한 모든 일들이 저 아이를 통해서 나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도하며 참회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꿈을 꾸고 있다. 현실일 수 없다. 그것도 아니면, 순자의 말이 맞던지 셋 중 하나는 확실하다. 난 순자에 한 표를 던지겠다.




 그러다가도 코만 한번 훌쩍이면, 집안 식구들이 난리가 난다. 더 열 받는 건 그걸 아는지 일부러 훌쩍거린다. 그렇게 쁘지만 못돼 먹은 둘째 의 노예 같은 삶을 어른 네 명이 잘 버티며 살아간다. 다섯 살이 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웃으며 잘 지내지만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글을 쓰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다시 검은 그림자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그래도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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