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Sep 23. 2021

초등학생 딸 경제관념 키우기

추석 명절 수입은 부모에게 환수조치

"아야, 오늘 느그 딸이 남자 친구하고 2만 원이나 쓰고 왔다"

"2만 원? 돈이 어디서 났지? 무슨 일 이래!"


 가족 단톡방에 장모님으로부터 전달된 메시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늘 모니터링만 하던 나도 몇 마디 적으려다가 꾹 참고 딸에게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원죄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회식한 날 저녁 기분 좋다며 초등학교 2학년 큰 딸에게 용돈을 줬고, 그 돈을 지갑에 잘 넣어 다니다가 새로 사귄 남자 친구와 데이트하면서 반나절만에 다 써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스로 돈을 다 썼다고 할머니에게 사실 그대로 전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상의를 했다. 몇 개월 전 만원을 쥐어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친구 몇 명을 데리고 문구점으로 가서 친구에게 파빗과 잡동사니를 사주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느라 정작 자신은 스피너 하나만 들고 귀가했다. 돈을 쓴 것이 문제가 아니고, 두 상황 모두 자신이 사용한 돈의 정확한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점과 친구와 자신이 지불한 금액 차이가 큰다는 게 문제이다. 드디어, 경제관념을 교육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사실, 지난번 일이 있었을 때 후속조치로 용돈기입장을 샀다. 반성하는 뜻으로 작성하도록 시켰는데, 괴발개발 작성했고, 교육한다고 다시 불러서 기입 요령까지 설명해주며 함께 작성한 기억이 있다. 아쉽지만 두세 달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내가 확인을 안 했다. 지난달 지나가는 말로 잘 쓰는지 물어봤는데, 답변을 안 하길래 돈 쓸 일이 없어서 안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평소 훈육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하자라는 생각을 하는데, 당시에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꼭 해야 할 일'이 되었다.


 큰 딸은 덩치에 비해 마음이 여리다. 그러다 보니 매번 자기 몸집 반만 한 네 살 둘째한테 시달리고, 울면서 이르기 바쁘다. 친구들과 관계도 가끔 틀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관심받기 위해서 물질적인 부분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오히려 속상하다. 하지만, 그런 성향은 부모로부터 보고 배웠을 텐데, 우리의 어떤 모습이 첫째 딸에게 스며들었을지 생각해 봤다.


 아내와 나는 욜로족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에 충실하자는 명분 아래 의식과 여가생활에 너그러운 편이다. 주변에서 재테크 안 하냐고 많이 묻기도 한다. 개똥철학 중 하나로 '돈은 써야 들어온다'를 주창하면서 과거 우리 재산이었던 흔적들만 곳곳에 남겨 놓았다. 정확하게 따지면 수억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다. 그런 부모 밑에서 보고 자랐으니 아이만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수익이 없는 아이가 잘못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자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관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돈의 소중함을 인식시키기로 했다. 정당한 일을 통해서 벌어들인 돈의 가치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청소, 동생 돌보기, 쓰레기 버리기 등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적은 돈을 벌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주말에 화폐박물관을 견학하거나 어린이 경제 관련 책을 함께 읽어야겠다.


 다음은, 부모인 우리가 자녀들에게 비치는 무절제한 모습을 삼가기로 했다. 우리도 가치관을 바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돈을 가볍게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더하여 할머니가 자주 하는 '아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야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딸이 체득하고 우리도 학습되어 정말 절약하는 습관이 집안에 스며들면 좋겠지만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용돈기입장을 꼼꼼하게 쓰면서, 자신의 경제활동을 기록시켜야겠다. 딸이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확인을 잘해서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살펴야겠다. 용돈기입장은 내 책상 서랍에 두고 돈을 쓰게 되면 기입장을 작성하고 서명해주기로 했다. 몇 달 정도만 같이하면, 좋은 습관으로 변할 것을 확신한다.


 더하여, 이번 명절에 눈이 침침한 노인들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획득한 불로소득은 경제관념이 정립되기 전까지 관리자가 명확한 엄마에게 환수 조치했다. 지난 일에 대한 후속조치이면서 삶의 진리이다.




 평소 성실한 성향과 거짓 없이 착실한 큰 딸이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2~3년 뒤에 경제관념을 심어주어야 할 핵폭탄을 달고 사는 둘째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아마도 시장 경제를 모조리 바꿔버릴 수도 있다. 그 아이는 퇴근하는 나를 보며 매일 똑같이 말한다.


 "아빠, 뭐 사 왔어요? 오늘 유튜브에서 콩순이 장난감 봤는데, 사줘요."

 "사주라고~~~ 사주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위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