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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8. 2021

네 살 둘째 사투리 고치기

잃어 부린 빼빼로 머그지 마세요

"아빠, 어제 아빠가 사준 빼빼로 잃어 부렀어!"

"잃어 부러? 자! 따라 해 봐 잃어 버려!"

"잃어 부러"

"아니, 잃어 버려라고. 천천히 따라 해 봐. 안 그러면 아빠가 빼빼로 찾아서 다 먹어버린다"

"아빠 머그지 마요!"

"머그지는 또 뭐다냐?"


 할머니가 숨겨놓은 빼빼로를 찾으러 집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다가 나에게 다가온 둘째와 주고받은 대화이다. 둘째는 표준어와 사투리를 조금씩 섞어서 말하고 나는 교정 반 놀림 반으로 응수한다. 표준어는 한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로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하여 여러 사람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우리 집 둘째는 수도권인 양주에서 태어나 분당을 거쳐 고양에서 살고 있다. 정확하게 수도권에서만 4년째 살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서 단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지만, 사투리와 어른 말투를 자주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스며들었다.





 둘째는 태어날 때 혀 밑에 입과 혀를 연결하는 설소대가 붙어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제거 수술을 하는 게 좋다고 권유하여 백일도 안된 아이를 수술대에 올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설소대가 그대로 붙어 있게 되면 혀 짧은 소리가 나와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에 과감하게 결정했다.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발음과 억양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부모가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다른 것은 못해주더라도 사춘기가 올 때 즈음 억양과 발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나 역시 가끔 사투리가 섞여서 나온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며 주로 수도권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말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해야 하지만, 약간의 인천 사투리와 충청도 출신 아버지 영향을 받아 느린 말투에 부드러울 유를 가끔 섞어서 말한다. 게다가 최근 8년째 함께 동거하는 남도 장인과 장모 영향도 받았고, 두 분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내와 함께 살았으며, 두 분 사랑의 결실은 아닌데 키우딸도 영향을 다. 오히려, 아내는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전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사투리를 하지 않지만 어려서 사투리를 많이 던 사람들처럼 부모나 고향 친구와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특히, 아이들이나 나 때문에 열 받아서 흥분하면 사투리가 마구마구 나온다. 광주에 1년 살아 본 첫째는 어린이집 다닐 때 사투리가 섞여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줄어들더니 현재는 국립국어원에서 말하는 표준어에 가깝게 사용한다.


 사실 나는 사투리를 좋아한다. 사투리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말에 억양과 운율을 넣어 말에 생기를 준다. 말이 살아있는 듯 정신없이 거칠게 다가올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사뿐사뿐 공기를 타고 춤을 추며 내 귀속으들어온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데시벨이 조금 높은 말과 장소 구분 없이 거칠고 쉼 없이 빠르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인상을 찌푸리고 즉시 귀를 덮는다. 그건 사투리나 표준어 문제는 아닌 듯하다.




 시를 창조하는 행위는 평이한 문장을 다르게 써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거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다듬는다고 배웠다. 이 말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국립국어원에서 말하는 시답지 않은 표준어보다 사투리가 시에 가깝기 때문에 시적(poetic)이라고 할 수 있다. 시답다는 말이다. 결국, 점잖게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평소 시를 읊는 것과 같다는 결론에 닿았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연히 책에서 발견하고 기뻐했다. 요즘 들어 우연이 많이 겹치는데, 어쩌면 글쓰기도 내 운명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몇 달간 책상 한편에 밀어 넣었다가 맞춤법 공부를 위해 다시 꺼낸 책, 김정선 작가의 '끝내주는 맞춤법 쓰는 사람을 위한 반복의 힘'에서 '사투리는 그래도 그 나름 음악성을 갖고 있지만 표준어는 높낮이랄 게 거의 없다'는 부분을 읽고 밑줄을 그었다. 삼십 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하면서 글에 대한 전문성을 구비한 작가 글에서 내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천만 명 중 많은 사람이 고개 정도는 끄덕일 것 같다.


* 세영 2,773일, 세이 1,29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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