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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08. 2021

시골 첫째와 도시 둘째의 생존방법

자존감 높은 첫째와 막무가내 둘째

"아빠, 내 고향 시골 맞지?


딸이 내게 물어 온다. 드디어 내가 놀리는 걸 알아차렸나 보다.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는데, 이상한 기운이 든다

 

"맞다며, 양주 시골이라며, 난 시골이 정말 좋아~~!"


 뭐지. 시골이 정말 좋아로 끝났다. 큰 딸은 고향이 시골임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고향이 시골이라 말했는데, 그게 좋다 연신 고향이 시골이라  말하고 다닌다. 큰 딸 웃음 코드쉬운 듯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똥, 방귀, 쉬야처럼 생리현상을 말하거나 의성어 의태어를 과하게 사용할 경우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영어나 한글을 섞는 아재 개그나 유치한 수수께끼에 빠져있다. 하지만 가끔 '시골'처럼 부정을 뜻하는 단어를 던졌는데,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시골이 부정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고 나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은가 보다. 한 번은 "우리 큰딸은 머리가 커서 좋겠다"라고 장난 삼아 던진 말에 '크다'란 장점만 듣고 좋아하기도 한다. 의도해서 반응하는 게 아니고 자존감이 높아서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좋은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이런 능력은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





 첫째는 사전에 쓰여있는 시골의 정의처럼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로 전방에서 근무하던 때이다. 주로 성남이나 고양에서 살았지만, 태어나서 1년 가까이 신산리에서 눈을 뜨고 뒤집었다. 둘째 고향 양주지만 조금 다르다. 여기저기 이사 다니다가 양주로 다시 갔을 때 둘째가 태어났는데, 양주시 덕정동이다. 행정구역상 같은 양주시이지만 큰 딸은 리장님께 인사를 올렸고, 둘째는 동장님과 같은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군인 자녀끼리 고향이 같 경우도 흔하지 않다. 1~2년 단위로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동료 중에는 세 자녀가 강원도, 대전, 부산인 경우도 있다. 그나마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정착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결국, 우리처럼 엄마나 아빠가 기러기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슬퍼지려고 한다.


"아빠 나 눈 크게 떴어. 예쁘지?"


 슬픈 생각이 들 도시에서 태어 난 둘째 '눈 크게 뜨기 기술'을 생각하면 된다. 둘째 딸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면 예쁘다고 얼마 전 알려줬다. 나를 볼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자랑한다. 수려한 외모에 비해 눈이 조금 아쉬워 크게 뜨면 좋을 것 같아서 놀리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귀찮아질 정도로 크게 뜨고 다니며, 나에게 같은 말만 반복한다.


"아빠 나 눈 크게 떴어. 예쁘지?


대답을 해도 계속 물어본다. 누가 생각나지만 지면에 활자로 담으면 기록이 남는다. 아무튼, 첫째는 자라면서 날 미워할 테고, 둘째는 크면 나한테 고마워할게 확실하다. 언젠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 말 조심 딸 조심.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다. 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고상한 한문을 가져다 쓰거나 어려운 문장을 만들려고 한다. 불편하다. 그냥 큰딸은 이렇고, 둘째는 저렇고를 대수롭지 않게 쓰는 게 좋다. 처음에 전개를 하다가 중간에 고조시키고 결정적인 한방을 던진 다음에 훈훈한 마무리를 하지 않고 가볍게 여러 생각을 던지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틀을 잡으려고 하니까 각색되는 느낌을 받다. 허구는 아니지만 포장되는 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오랜만에 의식의 흐름대로 주저리고 있다. 많은 상념 속에서 활자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골라 두서없이 던져도 그게 내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설 '아몬드'에서 불편한 부분을 접했다. PJ놀란이라는 살인자가 살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에세이로 쓴 것이 화제가 되었다는 에서 평소 생각이 잠시 틀어졌다. '담벼락 낙서도 소중한 기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아무거나 쓴 기록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에 조금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그 글은 목적도 있었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자신의 회고를 통해서 삶을 돌아보는 의미까지도 더한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그러다 수첩 언제 적었는지도 모르는 '가치 있는 기록을 하자'란 문구를 발견하고 모든 게 글은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삼초 정도만. 다음장을 넘기니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기록하면 남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라고 또 열심히 써놨다. 아직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면서 문장도 길게 늘여 봤다. 좀 더 가볍게 글에 다가서고 싶을 뿐이다.




 최근 이것저것 쓰고 싶은  너무 많다. 여행, 아이들, 음식, 읽은 책 그리고 내 가치관의 변화를 계속 생각하고 연필로 끄적인다. 글감 노트는 하루에 여러 장이 채워진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노트를 꺼내 생각나는 문장을 적고 있다. 단단히 미쳤다. 단문과 소재는 넘쳐나고 정신없이 활자로 변한다. 시 같지도 않은 문장을 마구 발설하면서 혼자서 시를 쓴 것처럼 뿌듯해한다. 정신없이 던져보고 그 안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세런디피티처럼 우연하게 글이 완성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멍청하다. 뚜렷한 목적이 없이 쓴 글은 가치가 없기에 다시 고민한다. 그냥 일기를 쓴다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마도 다른 사람이 보는 글을 기 때문이며 습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다. 많은 생각과 계속되는 글쓰기, 꾸준한 독서를 이어가고 있으니 시간이 빠르게 나를 통과하여 글을 살찌게 해 줄 것을 기대한다. 어차피 참고 버티는 것은 세월이 잘 알려줬다.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는 핑계가 떠오른다.


* 세영 2,783일 세이 1,3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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