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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11. 2021

학업 때문에 조금 불편한 육아일기

첫째 딸 학업 전담은 누가 해야 할까?

 육아일기는 가벼운 내용을 다루고 싶다. 글 쓰는 목적이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자녀를 키우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빠가 쓴 글을 읽어보면 좋 것 같아 방향을 잡고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무거운 내용을 남겨서 아이가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온전한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듬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승화시킨다면 조금 불편한 내용도 다룰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한주에 한번 정도 육아일기를 쓰기 위해서 서랍장에 몇 개 써 놓았는데,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여러 개를 묶어서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게 좋다는 생각에 조금씩 사건과 추억을 모은다. 소소한 것이 모이고 결정체가 완성될 즈음 담백한 글이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요즘 큰 딸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이해는 되지만 안타까운 일이 지속된다. 어젯밤에는 아내와 조금 불편한 문자를 주고받다가 그만 자고 다음날 이야기 하자며, 서로의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아내는 잠을 잘 못 이뤘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부녀는 잠에서는 신계에 올라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풀 취침을 했고, 난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깨어 어제 일을 회고하고 이렇게 글로 생각과 감정을 풀어본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함께 있어야 해결되는 일이 많은데


 하루 이틀 지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게 될 경우 서로 감정 소모로 인해서 누군가는 상처 받을 수도 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당장 어제오늘은 심각한 느낌이 들었고, 관계자들만 불편한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아빠는 매일 늦은 저녁에 집에 오고, 엄마는 주말에 돌아오기 때문에 육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담한다. 단지, 아빠는 하루 한두 시간 말동무나 우발상황 발생 시 예비대 역할을 하고 엄마는 먼 거리에서 가능한 일 위주로 원격 육아를 한다. 비율로 따지면 할머니 60%, 엄마 25%, 할아버지 10%, 자매 상호 간 4%, 아빠 1% 정도인 것 같다. 모든 일은 할머니와 엄마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할아버지도 학업과 필요시 인솔 등에서 높은 비율로 노력과 정성을 다한다.


 첫째 딸 학업분야에 대해서는 엄마와 할아버지가 주로 담당하고 할머니가 받쳐주는 형태이다. 아빠는 뭘 하는지 모르겠고, 둘째 딸은 마이너스이다. 그런 학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근본적으로는 할아버지와 큰딸의 마찰이다. 학업에 진심인 할아버지의 철저한 스케줄 관리와 성실하지만 투덜거림과 아직 어린 8살 큰딸 사이에서 발생한 '숙제 다하기'가 마찰 요소였다. 문제는 본질에서 벋어나 원격에서 고생하면서 육아를 보좌하는 아내에게도 전달되었고, 사랑하는 남편의 위상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할머니의 진심이 표출되면서 작은 화살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 깊이 박힐 만한 화살은 없었다. 날아가는 화살은 무디고 연사를 할 화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딘 화살은 상대방에게 한두 번 닿았다가 떨어져서 따끔 거리는 정도이다. 더 아프기 전에 엄마 손 아빠 손으로 쓰다듬어 주기만 해도 된다.


 현실적으로 큰 딸은 말을 조심해야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금 더 사랑하는 마음을 8살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해야 하며, 엄마는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멀리서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감내해주면 된다.


 문제는 아빠와 둘째 딸이다. 아빠는 새로운 자리에서 정착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혼자 밥을 먹고 차도 마신다. 그 시간 중 일부를 첫째 딸 학업에 할당하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된다. 평일에 한두 시간 집중해서 첫째 딸 학업에 신경 쓰면 되지만,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꼭 해야 해'라는 가치관이 문제이다. 아이가 싫어하면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학원이나 숙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 미래에 무감각한 인간형'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초등학교 때는 놀았으면 좋겠다. 만들기와 요리를 좋아하는 첫째 성향에 따라 질릴 때까지 만들기와 요리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게 아쉽지만, 모두가 바라는 뒤처지지 않는 아이를 유지하려면 아빠가 더 노력해야 한다.


같이 안 놀다가도 공부만 하면 놀자고 하는 가증스러움


 사실, 아빠는 문제가 안된다. 조금 내려놓으면 되는데, 해결 안 되는 아이가 하나 있다. 둘째 세이 세이 유세이이다. 우선 언니가 공부하면 방해하기가 취미이고, 제 잘난 맛에 늦은 시간까지 활개 치고 다닌다. 그걸 뒷바라지하다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정신과 육체는 화성으로 가고 스트레스로 남게 되지만 둘째에게 표출되지 않는다.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 때문에 못된 짓을 해도 결국 웃는다. 귀엽고 이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가증스러운 둘째 매력은 첫째를 불편하게 한다. 나도 불편하지만 웃고 있다. 게다가, 언니라서 동생보다 감내해야 하고 스스로 보기에도 이쁘고 똑똑한 둘째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첫째가 나름 자존감이 강해서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을 거다. 확실하다. 얼마 전부터 둘째가 못생겼다고 말한다. 참 주관적이다. 더하여 멍청해 보이는 아빠만 자기편이라는 현실도 속상할 수 있다. 크게 공감한다.


 둘째에 대한 대응 방책은 없다. 시간만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계속 무시하고 첫째 학업에 아빠가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정리해야겠다. 앞으로는 글방과 브런치에 댓글을 조금 줄이고 큰 딸 영어 노트에 첨삭하는 빨간펜 선생님으로 등판해야겠다. 멍청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줘야겠다. 그러고 보니 아빠만 불편한 육아일기가 됐다.


언니 전시회 다녀오고 벽에다 낙서한 둘째(분명 혼나는 걸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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