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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18. 2021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때 다가오는 그리움

프롤로그

 이른 아침 공기가 제법 차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면 다가오는 그리움이 여럿 있다. 따뜻한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락국수와 한입 베어 물면 따뜻한 기운이 눈과 입속으로 전해지는 호빵도 생각난다. 하지만, 공기가 점점 더 차갑게 느껴질수록 어둑한 산속 노천온천이 아련해진다.


카이 하코네




 실오라기 하나 치지 않은 채 수건 하나만 들고 차가운 공기를 온몸에 맞으며 온천탕 앞에 선다. 한 발을 살짝 들어서 발가락 끄트머리로 뜨거운 온천물 온도를 확인한다. 들어가도 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면 몸을 온천에 맡기기 위한 의식을 진행한다. 발부터 시작해서 무릎과 배꼽을 지나 가슴과 어깨까지 몸에 물이 닿는 연속되는 느린 입수 과정을 통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깊은 단전에서 올라오는 감탄사로 표현되지만 기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 잠시 시간이 멈추고 마음이 안정되면서 물밖에 나와있는 머리를 통해 오감이 작동한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수면 위 물안개 뒤로 수묵화 같은 산과 바다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별빛과 달빛이 좋은 날에는 보다 많은 것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몸이 온천에서 유영하는 동안 세상은 너그러워지기 때문에 눈도 여유롭게 많은 것을 담는다. 흐르는 물소리 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까지 들린다. 미세한 온천 향을 느끼기 위해 두 손을 모아 한 움큼 물을 쥐어 코 끝에 가져오면, 따뜻한 기운과 자연을 머금은 물 향기가 코로 깊숙이 들어와 폐까지 정화시킨다.


지금껏 다녀온 다양한 온천


 한동안 몸을 온천에 맡긴 채 물과 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제법 모든 게 데워지면 물 밖으로 나온다. 추운 날에도 따뜻해진 몸과 마음 덕분에 싸늘했던 공기는 시원한 바람으로 바뀐다. 옷을 입지 않으면 부끄러워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좋은 기운을 오래 할 수 없다. 아쉽지만, 조금 더 시원한 바람을 몸에 전해준 다음 바위에 걸터앉아 몸에 남아있던 습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여러 번 반복을 하면서 몸은 오래 달리기를 할 때보다도 축 처지는 기운을 느낀다. 힘든 게 아니고 나른함과 노곤함이 몰려오는 기분 좋은 무거운 몸이 되어 잠이 몰려온다. 온천 옆에 놓인 편안한 침대형 의자에 눕고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덮어 따뜻한 체온을 유지한다.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북해도(노보리베츠, 아오이이케, 대설산)




 물속에 들어가는 행위는 태어나기 전부터 좋아했다. 엄마 뱃속 따뜻한 양수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다가 세상에 나오면서 물과 이별을 한다. 피부에 닿아야 할 물이 공기로 바뀌는 순간 안타까움과 놀라움은 울음을 통해서 세상에 알린다. 상실감이 더 커지기 전 엄마 품에 안기면 열 달간 느꼈던 기운을 다시 찾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며 편안해진다. 아이들이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두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로 물이 어색해지면서 낯선 기운과 이질감에 점점 멀리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살다가 지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스스로 감내할 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몸을 물에 맡기게 된다. 그렇게 정처 없이 고향을 찾아서 떠났던 수많은 온천 여행 추억을 책으로 남기고 싶다.


아와지섬 스모토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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