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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26. 2021

어느덧 책방 여행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책방과 도서관을 좋아했다. 종로에 대형문고가 처음 생겼을 때 어린 나이이지만 한 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다녀왔던 것을 보면 제법 좋아했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동대문 헌책방 길을 걷고 다른 날은 인천 배다리를 배회했다. 도서관도 많이 다녔다. 주로 국립이나 시립도서관을 다녔는데, 열람실에서 공부하지 않고, 매번 책이 있는 공간에 가서 분위기를 느끼며 책이 놓인 책장들과 책을 실컷 봤다. 책 냄새도 좋아하다 보니 오랜 시간 머물러도 지루해하지 않고 평온한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데, 읽지 않는 독특한 취향으로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높은 천장과 수북하게 쌓인 책 속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책방의 일부가 되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책방에 들렀다. 여전히 독서량은 형편없었지만, 마주한 책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두 권을 구매했다. 주로 인문학이나 자기 계발서를 선택하여 예쁘게 싸들고 집에 가져와 책상 한편에 쌓았다. 책은 계속 쌓였고, 어떤 책은 읽지도 않은 채 헌책방에 다시 헐값에 팔렸다. 헌책을 팔기 위해서 중고서점에 가면 다시 책방을 구경했다. 하루는 팔러 간 책 보다 새로 사 온 중고서적이 많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책과 친하게 지냈지만, 독서나 글쓰기는 거리를 두었다는 게 더 신기하다.

 몇 해 전부터는 책을 꾸준하게 읽고 얼마 전부터는 글도 쓰며, 몇 주 전부터는 부끄러운 서평도 남긴다. 여전히 책방은 자주 다니며, 이제는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산다. 사실 독립 책방보다 잘 꾸민 대형서점을 좋아한다. 다만, 사람이 적은 시간에 조용하게 책과 마주할 수 있는 책방이 좋다. 그러다 보니 대형서점보다 독립 책방으로 취향이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넓지 않고 책도 적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곳에서 책과 마주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킨다. 책방 분위기를 느끼며 한참을 머물고 싶은데 처음 방문한 책방에 오래 머물 정도로 두꺼운 얼굴이 아니다. 게다가 독립 책방은 규모가 작아서 책방지기와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어색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볍게 둘러보고 한번 더 찾아가게 되면 그날 기분과 책방에 어울리는 책을 찾게 된다. 커피가 좋아 카페를 찾아다니다 보면 시그니처 메뉴나 카페에서 블렌딩 한 원두로 내려준 커피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가끔은 책방지기가 책을 권한다. 손님이 불편할까 봐 직접 말하지 않고 독서평을 예쁘게 써서 붙여놓기도 한다. 이제는 아지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너의 작업실'도 그랬고, 우연히 찾아갔던 '서촌 그 책방'이나 일산에 있는 '이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만난 책은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처음에는 만족하지 않다가도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더 읽고 싶은 책도 많았다. 책방과 어울리는 책을 사서 읽고 책을 통해 생겨난 감정과 생각을 글로 남기며 또다시 새로운 책방을 찾아 떠나는 발길이 많이 설렌다. 아직 여유롭지 못하다 보니 책방을 느끼고 책만 사서 오는데, 이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책방에 들러 책을 읽고 글도 쓰는 온전한 책방 여행을 하고 싶다.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방 여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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