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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01. 2021

평범하고 지루해서 좋았다

[도서 리뷰] 스토너_존 윌리엄스 / 한 달 동안 천천히 읽기

 영화 국제시장이 여러 번 떠올랐다. 영화 끝무렵 배우 황정민은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거울로 바라본다. 아버지가 했던 한마디를 계속 바라보며 늙어버린 삶을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스스로 잘 살았는지를 되물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누구에게 물었는지만 조금 달랐을 뿐이다. 영화감독이 소설 스토너를 읽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대부분 일생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던 포레스트 검프도 생각났다. 정 반대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스토너와 비슷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모든 사람의 인생은 결국 다르지 않다는 진리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구한 운명을 살면서 다양한 사건과 사고 속에서 주연으로 살았거나 잡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잔잔하고 낮은 소리처럼 살았어도 결국 태어나서 죽는 게 인생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소설이지만 평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평전은 조금 시끄러운 세상에서 요란하게 살다 간 기록을 남겼다면 스토너는 보통날 동네 뒷산을 산책 다녀와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편안하게 들려주는 것 같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이야기가 묵직하게 전해온다. 그러다 보니 절판되었다가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천천히 유명해진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소설대해서 평범한 이야기라는 수식이 많이 들리지만 나름 희로애락도 있고 위기와 절정도 있다. 옮긴이는 반전이 없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는데,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반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기 좋게 뛰어넘은 게 더 큰 반전이다. 늦게 글을 배우는 내게 다양한 글을 접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글을 잘 아는 사람이 반전이 없다면 그게 맞겠지만, 책과 독자 관계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는 부분이다. 유명한 작가 글을 읽은 유명한 작가의 평가를 보고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소설 스토너 역시 다르게 읽는 소중함도 느끼게 해 준 유익한 소설이었다.


 다른 책과 동시에 읽다 보니 중간에 집중 못한 부분도 있지만, 정해진 시간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숙제처럼 완독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에게 흥미로운 사건과 사고가 없는 이야기는 주목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완독이 쉽지 않았다. 전체 17장으로 되어 있는데, 5장까지는 상당히 지루하게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단단함이 스며들면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고, 조금씩 책으로 끌려갔다. 깊이 집중했을 때는 스토너가 절망에 빠지는 순간을 함께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함께 읽는 사람들은 술술 읽혀서 일찍 완독 했다는 말이 들렸지만 나는 한 장 한 장이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시월 마지막 날 새벽에 완독했고, 잠시 삶을 비쳐봤다. 인생을 일과 가정으로 양분한다면, 스토너의 경우 일에서는 로멕스가 있었고, 가정에서는 이디스가 부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답답할 정도로 감내하면서 는 스토너를 보면서 오히려 상대적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삶 속에도 로멕스와 이디스가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진급이라는 단어가 남아있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계속해서 주변에 맴도는 존재로 어쩌면 이디스와 가깝다. 수천번 이상 지우려고 노력해서 많이 편안하지만, 조금씩 꿈틀거리는 욕망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행히 가정에서 마찰은 없지만, 일과 가정에서 마찰 요소가 되는 정점에는 돈이 있다. 경제적인 부분이 정점에 있다는 게 안타깝지만, 삶의 정점에 있는 현실세계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권력과 욕망보다 돈이 정점에 있는 현실 속에서 조금 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서 삶은 버티고 고통을 감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한번 더 생각하면서 정답을 찾는 삶을 살기 위해 슬프고 기쁜 일에도 무뎌진다. 마치 소설 아몬드에서 윤재가 지녔던 감정표현 불능증을 바라는 것처럼 단단하고 딱딱한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그게 싫다 보니 보편적으로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이 평범함을 추구하지만, 평범하다는 스토너를 보면서 측은함이 드는 이유도 궁금했다. 지루하게 읽었지만 많은 생각이 파생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소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머릿속은 조금 복잡해졌다. 리뷰를 작성하는데, 글도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은 내렸다. 삶 속에서 기대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살다 보면 그냥 살아진다. 감내를 하던지 표출을 하던지 그 상황을 잘 바라보고 충실하게 살면서 '찰나에 진정성 있게' 대하자라는 생각에서 다시 멈췄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의 외적 묘사를 통해서 내면을 생각할 수 있게 풀어주는 표현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날씨와 풍경을 묘사하면서 인물의 감정과 다가올 사건을 예상하게 하는 표현도 좋았으며, 삶 속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일상과 비일상이 적당하게 녹아있었고,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시간에 함께 스며들게 해 준 게 유독 좋았다.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소설 스토너는 평범하고 지루해서 좋았다.





인상 깊은 문장에 대한 생각으로 소설 내용이 일부 포함됨. 총 17장 중 10장까지만 다뤘고 느낌표로 감정을 표현함.



* 스스로 감정과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 기록한 글이기 때문에 아래 부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1이라고 불러야 하나 총 17개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단락은 동네 카페 달임 - 대추차와 식혜가 맛있는 모던한 전통 찻집 - 에서 차분하게 읽었다. 스토너의 배경과 대학 졸업까지 과정을 이야기한다. 잔잔하면서 지루한 전개라 두세 번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꾸역꾸역 읽다 보니 인상 깊은 부분도 몇 군데 있었다.


! p6(하)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

: 연마사가 아니고 사람 이름이 맞았다.


! p11(하) "저기가 대학일세. 자네가 다닐 학교가 바로 저기야."

: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시골 촌뜨기가 상경하거나 새로운 곳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 p15(하) 다른 하나는 모든 학생의 형식적인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 가의였다.

: 영문과 조교수라는 말이 생각난다. 평범하게 접근하면서 근사하게 인연을 끌어낼 것 같다.


!! p18(하) 단어들을 구성하는 소리와 시의 리듬이 한순간이나마 그 자신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깊고 부드러워졌다.

: 슬롯 진정성이 보인다. 학생과 간격이 커서 가르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부족한 스승으로 부정적인 표현으로 접근했지만, 시를 대하는 슬롯 교수의 깊이를 인정하면서 등장인물에 무게감을 실었다. 스토너와 관계를 계속 이어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영화나 드라마, 소설이나 에세이에 시가 등장하는 장면이 좋다. 정말 시인을 꿈꾸지만 그냥 시만 홀로 있을 때보다 다른 장르와 융합되어 표현되는 부분이 좋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


! p23(중) 달빛 속에서 알몸을 드러낸 채 회색을 띤 은빛으로 빛나는 그 순수한 기둥들은 신전이 신을 상징하듯,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 우선 제시 홀 앞에 기둥 다섯 개는 책의 표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중요한 문장이었는데, 놓칠 뻔했다.


! p24(중)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얼마 전 비슷한 기분을 느껴봤고, 이 문장보다 세련된 문장을 접한 적이 있다. 글 모임 드므 작가의 "시간이 나를 통과하는 느낌이다"에서 더 큰 울림이 있었다. 내가 가끔 표절한다.


! p25(중) 제시 홀 앞의 커다란 기둥들을 휘감은 검은 덩굴은 회색 풍경 속에서 진줏빛으로 반짝이는 크리스털로 테두리를 두른 것 같았다.

: 표지 그림과 점점 비슷해진다. 참고로 표지 그림은 창밖에 앙상한 나뭇가지 뒤로 보이는 기동 세 개다. 이럴 때 보면 가끔 나도 관찰을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p34(하) 어머니는 그의 정면에 있었지만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을 꾹 감고 무겁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져 있고, 주먹 쥔 손은 양빰을 누르고 있었다.

: 어머니의 고뇌가 느껴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잘 묘사했다. 첫 단락에서는 중요한 장면인 것 같다.


#2는 대학을 더 다니기로 결정한 다음 스토너가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이 그려진다. 세명의 친구를 만났고, 끈끈한 정보다는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수단으로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지루해서 졸기도 하고 여러 번 읽은 부분도 많았다. 크게 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은 많지 않았다. 집중을 하지 못한 탓이지만 마지막 부분에 서너 줄 정도는 호감을 끌고 미래에 대한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 p37(하) 초서의 <켄터 메리 이야기> 중 한 편을 택해서 작시법을 다룬 논문이었다.

: 문체나 문장에서 오는 울림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문장이다.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날 뛰고 있다. 평생 글쓰기를 하면서 한 작품을 다양하게 연구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벌써부터 기고만장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 p38(중) 우선 문법의 논리성이 느껴졌고, 그것이 스스로 퍼져나가 언어 전반에 스며들어서 인간의 생각을 지탱하게 된 과정을 알 것 같았다.

: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나도 문법의 논리성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그렇게 싫어했는데, 5언 9 품부터 따지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 p55(중) 편지에는 또한 데이브 매스터스가 프랑스로 파견되었으며, 입대한 지 거의 1년 망에 미국의 첫 작전에 참가했다가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 전사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트라우마처럼 머리에 남아있다. 영화에서 접했을 텐데, 전달하는 사람의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전달받는 사람의 슬픔은 잊히지 않는다. 트라우마가 맞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장면을 봤다. 평생 볼 필요 없는 장면과 감정까지.


#3 은 스토너가 학위를 마치고 전쟁은 끝나며,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걷는 핀치와 동행하면서 평생 반려자인 이디를 만나는  과정이 내 입장에서는 지루하게 전개된다. 몸이 피곤했는지 읽다고 졸기도 했고,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기도 했으며, 정말 천천히 읽었다. 그러는 와중에 몇 줄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발견했다.

 

! p60(중) 학생 때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교수로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말이야.

: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이 된다면 내가 배우던 곳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기분은 어떨지. 현실에서 비슷한 부분은 있다. 위관장교 때 근무했던 곳에서 진급 한 다음에 다시 찾아와 근무하는 기분이 비슷한데 특별한 케이스라 공감을 얻기는 힘든 감정이다.


! p60(하) 키가 크고, 깡마르고, 구부정한 (청년) 남자의 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 동일한 문장에 청년이 남자가 되면서 시간의 흐름과 깊이를 더한다. 좋아하는 기술방식이다.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하고 싶다.


! p65(중) 추운 현관홀에서 거실로 들어서자 온기가 훅 끼쳐와서 마치 그를 억지로 밀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 상반된 공기와 기운으로 스토너와 다른 사람과 단체의 이질감을 근사하게 표현했다.


! p66(하) 식당 쪽은 보지 않았지만 가끔 아가씨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을 따스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 관심이 있으며 시선이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녀 사이는 더 오묘하다. 사랑이 오는 감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만.


! p89(하) 이런. 정말 예쁜 아가씨로구나, 그렇지?

: 어른들의 한 마디가 크게 울릴 때가 있다. 가볍게 던지는 말도 많은 생각을 하고 전한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고심하지 않은 말도 세월을 통해서 형성된 통찰력을 통해서 나올 수도 있다. 별개로 예쁘다는 말은 항상 정답이 된다.


! p94(하) 일주일 동안의 신혼여행을 위해 세인트루이스행 기차에 오른 뒤에야 윌리엄 스토너는 이제 식이 끝나고 자신에게 아내가 생겼음을 실감했다.

: 결혼식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다. 배경과 감정은 다르지만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다. 신랑 입장 전에 가슴이 요동쳤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자세하게 생각나는 게 없다. 어쩌다 보니 결혼식이 끝났고,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을 출발하는 차에 앉아 있었다.


! p102(상) 잠시 후 잠든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고 묵직하게 변했다.

: 둘 관계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아픔이 많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5 결혼 후 두 사람의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그려진다. 불행하다고 보기에는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다만, 현시점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디스란 인물에 불편함이 생기면서도 안타까움과 동정이 들기도 한다. 스토너도 측은함도 생기기는 하지만, 답답함도 조금 비친다.


! p107(상) 하지만 손님들이 가고 나면 그 겉치레가 저절로 무너지고 지친 모습이 드러났다.

: 위선자 느낌을 받았지만,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도 이디스와 비슷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녀가 하는 겉치레를 우리는 얼마나 하지 않고 살아갈까?


! p113(중) 그래서 가만히 서서 듣기만 했다. 얼마 뒤 그는 지금껏 이디스가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 내용적인 부분보다.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을 기술하고 그 현실을 통해서 과거로부터 이어오는 새로운 부분을 전해주면서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 p115(중) 그는 얼굴이 점점 수척해지고, 체중이 줄었으며, 어깨도 한층 더 구부정해졌다.

: 슬론을 언급하고 슬론이 연상되는 표현으로 스토너를 묘사했다. 스토너가 슬론을 닮아간다. 결국, 슬론과 스토너,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것 같다.


! p122(상) 그레이스를 출산한 뒤 거의 1년 동안 이디스는 자주 침대 신세를 졌다.

: 출산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어느 행위보다 고귀하다. 출산을 통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고, 출산을 전후로 많은 것이 바뀐다.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이 알아보고 더 생각해야겠다.


! p122(하) 딸에게 그는 아버지라기보다 거의 어머니였다.

: 이 무슨 쌍팔년도 생각을 적어놨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위해서 서로의 특성에 맞게 구분할 수 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 역할을 구분하는 건 옳지 않다. 20세기 초라서 그렇다는 말이 함께 쓰여있어야 할 부분이다. 작가나 옮긴이나 독자나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 p123(하) 오로지 아버지의 손길,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사랑뿐이었다.

: 안타깝기는 하지만, 육아서에 보면 아버지의 손길이 많을수록 아이들 정서나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화로움이 중요하다.  


#6장은 읽기 어려운 환경에서 접했는데, 쉽게 몰입했다. 슬론 교수의 죽음과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이디스와 스토너의 일상적인 갈등은 고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독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는데, 소설이 전개되면서 받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 p135(상) 아주 멀고 먼 과거의 일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있었던 변화들을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반전을 가져오는 문장도 없었는데, 잔잔하게 묵직한 무언가가 내게 다가왔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는 스토너에게 생긴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스토너가 느껴졌다. 크게 집중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는데, 독자로 하여금 그런 느낌을 받게 한다는 건 소설 무게감이 대단한 것 같다.


#7장은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가벼웠던 내 생각을 바꾸고 있다. 스토너를 지루하게 느끼고 있을 즈음에 조금씩 마음속에서 묵직한 기운이 나를 잠식해 간다. 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의 죽음을 통해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니다. 처음부터 전개하던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알지 못하는 이상한 게 느껴진다. 내용에서 오는 것보다 단단한 기운이 모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활자에 보이는 게 아니다. 조금씩 잠식해 오는 작가의 깊은 의미가 내게 빠져드는 순간을 즐기고 있다. 책을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빠져들었는지 뒤늦게 다가서고 있다.


!!! p148(상) 그때서야 그는 너무 놀라서 화들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가 본 시신은 낯선 사람의 것 같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며칠 연속해서 죽음과 관련된 상황이 내게 다가왔고, 별도로 글을 남겼다.


!! p151(하) 그렇게 해서 두 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바쳤던 이 고집스러운 땅의 무의미한 일부가 될 것이다.

: 스토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평범하게 끝난다. 농사를 지으며 땅으로부터 받은 일용한 양식으로 삶을 지탱해 왔고, 하나밖에 없는 자녀도 땅을 위해 공부를 시켰으나 다른 길로 갔다. 모든 것을 감수하고 땅과 함께 계속 살다가 결국 자기 텃밭에서 생을 마감하고 머지않아 아내까지도 땅으로 돌아갔다. 평범한 일생이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8 본격적으로 변하는 이디스와 시들어가는 스토너 모습이 조금씩 그려진다. 둘 갈등은 더욱 커지고 아프게 들린다. 가정을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스토너 모습이 당당하고 신념이 차 있다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화목한 가정에서 멀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173(상) 미소는 거의 짓지 않았지만, 소리 내어 웃는 경우는 많았다.

: 소리 내어 웃는 것보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웃음이 더 진실할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다. 최근 읽은 수어,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이 떠올랐다. 음성언어가 수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작가 생각에 크게 공감했고, 스토너에서도 한 번 더 생각했다.


#9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갈등이 고조된다. 선생과 갈등이 클 수밖에 없는 요인은 결국 학생이다. 스토너는 새롭게 만난 워커와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주변 동료 교수와도 연계되면서 앞으로 발생할 더 큰 사건을 짐작하게 만든다.


!! p191(중) 학생들 모두 자신이 다루는 주제가 훨씬 더 커다란 주제의 핵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 주제를 연구하다 보면 어디에 가닿을지 궁금하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 때 맛볼 수 있는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 교육자나 학생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단단한 교육계획은 장기간 진행해도 지루하지 않고 얻어가는 게 많다. 더군다나 열심히 연구한 주제가 보다 큰 주제의 핵심에 있고 새로운 부분에 닿는 느낌은 마치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를 느끼게 해 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글이 완성되면서 마침표를 찍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난 아직 못해봤지만.


! p205(하) 모든 감정이 빠져나가고, 그저 자신이 아주 나이가 많고 피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뿐이었다.

: 비슷한 경험이 있다. 교수님과 싸우고 F학점을 주겠다는 말에 난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감정 표현만 했다. 워커가 어떤 인물인지 더 지켜봐야겠지만 스토너를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오히려 스토너가 침착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10 스토너와 워커의 갈등이 커지면서 스토너와 로맥스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스토너와 세상의 갈등이 맞을 수도 있다. 이디스와 갈등에 워커의 갈등이 융합된다. 더하여 로맥스까지 스토너의 목을 조여 온다. 스토너에게 다가오는 것은 어두운 기운뿐이다. 하나 빼고.


!! p241(상)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어쩌면 이 대학을 떠나 다른 곳에서 강단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가 이디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마치 그에게 한 대 맞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워커와 갈등으로 스토너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는 이야기를 절정으로 끌고 간다. 분명,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핀치도 해결할 수 없었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디스는 더 큰 못을 스토너 가슴에 박으면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만들어 낸다. 워커나 로맥스의 다른 부분을 보고 싶었으나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스토너가 조금은 유연하게 대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요즘 내 모습과 비슷해서.


#11 스토너에게 아픔이 온다. 묵묵하게 아픔을 받아들이는 게 더 슬프다. 죽음과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현실로 돌아오지만 가시밭길은 그대로이다.

! p247(중) 그 뒤로 20여 년 동안 두 사람은 다시는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 현실에도 비일비재하다.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선을 긋는다. 관계를 개선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게 더 편한데, 현실이 안타깝다.


! p249(하)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 자신의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 번 아웃에서 오는 무기력이다. 뒷 문장은 조금 더 심각해지는 단계로 넘어간다.


!!! p250(하)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웠다.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 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으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차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 마른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 글이 너무 좋았다. 스토너가 죽음으로 가는 길로 느껴졌는데, 몇 번을 읽는 동안 내 자아도 같이 몽롱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있는 게 느껴졌다. 라디에이터 소리가 나기 전까지 스토너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소설의 형연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문체를 느끼고 배웠다. 그대로 필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절대 쓸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필사하면서 표절이라도 하고 싶다. 스토너는 죽고 있었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했다. 눈 밭에서 방황하며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죽음에 다다르자 현실의 울림이 다가왔다. 아쉽게도 울림은 집으로 가는 길에 더 크게 울리면서 스토너와 나를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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