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부르는 나에게 엄마와 아빠를 생각나게 했다. 평소 독서를 하다가 시선이 머무르는 부분이 시적 표현임을 알게 된 요즘 시집에 손이 간다. 유명한 시를 느끼는 것도 좋지만 우연히 만나서 큰 울림과 깊은 생각을 받으면 기쁨이 배가 된다. 아드헤 시인 작품은 잔잔하며 깊은 생각을 만든다.
여름이 막 시작할 즈음 글벗 소개로 화성에 있는 책방 다락을 방문했다.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서 책방에 들어가 책을 처음 마주하기 전까지 잘못 온 것 같아 여러 번 확인했다. 책장에 가득한 책을 발견하자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고, 책방을 둘러보며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책은 '자음과 모음과 마음들'이었다. 글쓰기에 한참 빠져있는데 글자에 정성과 의미를 부여한 시를 보고 반가웠다. 절반 정도를 읽고 나니 시인이 궁금했다. 작가 소개를 보니까 다른 시집도 있었다. 제목이 82.7이었는데, 책방에도 있어서 포장된 책을 바로 구입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를 읽고 싶을 때마다 천천히 다가갔다. 구입한 지 두 달이 지나서 다 읽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게 행복했다. 시집 제목이자 마지막에 수록된 시 82.7은 대한민국 기대수명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큰 딸은 74년이나 남았고, 아내는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짧은 기간만큼 남았다. 아내와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몇 년 더 외로운 시간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쓰린다. 더 아픈 건 어머니는 이제 13년 남았고, 아버지에게 남은 새해는 한자리로 접어들었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키워주며 나를 돌아보게 한다. 슬프기만 하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덜 할 텐데, 책장에 넣어두고 바람이 차가워지거나 어둑한 한밤중에 꺼내어 읽고 싶은 걸 보니 다른 감정도 여럿 전해준 것 같다. 소중한 사람이 82.7에서 멈추지 않고 점 하나를 뺀 세월만큼 함께 한다면 좋겠지만, 더 짧은 게 현실이다. 우연히 만난 작품 덕분에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