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읽는 장소는 대부분 서점이다. 느리게 읽다 보니 책과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한다.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곳에 머물지만 가방 속에서 나오지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나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정이 들지만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기분일 때도 있다. 그러다 다 읽을 때 즈음 항상 아쉬움이 커진다. 같이 여행하면서 느꼈던 소중한 감정을 기록하고 싶었고, 책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서 생각이 멈췄다. 그런 연유로 독서 리뷰를 시작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나에게 들려준 소중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끄적이며, 내가 느낀 감정이 활자로 적히는 것에 큰 만족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는 게 아니라 함께한 추억을 되새기고 영원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이다. 단지, 온전하게 남기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볼 때 추억을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수어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은 가을이 시작할 즈음 망원동 책방 씀에서 처음 만났다. 책방 한편에 책을 전시하 듯 올려놓고 알록달록한 감상평 메모를 붙여놨다. 아무튼 시리즈와 비슷해 보이고 수화를 수어라고 부르는 게 신기해서 호기심에 표지를 넘겼다. 읽어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책은 매번 비슷하다. 그 느낌이 왔다. 프롤로그를 자세하게 읽을 필요도 없이 책방에서 함께 나올 대상을 쉽게 결정했다.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절반 정도 읽고 한두 챕터씩 천천히 보다가 테라로사 본점에서 완독 했다. 많은 부분 공감했지만, 크게 깨닫고 영감도 얻었다. 그렇다고 비거니즘을 지향하거나 농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누군가 그런 일을 왜 하는지와 필요성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살면서 알아야 할 작은 가치관도 여럿 만났다. CODA를 접했고, 음성언어가 수어보다 우월하지 않음을 알았다. 스스로 일어나는 게 무엇이지와 나만 알고 있는 소중함까지 배웠다. 깊고 다양한 생각을 만드는 글이 좋은데, 수어는 나와 함께 생각의 숲을 여행한 동반자였다.
* CODA(Children Of Deaf Adults) :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농인과 청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