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어디서 또 꿈틀거리고 있을지 모르는 너에게 이렇게 정성과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살면서 우리가 마주할 일은 없을 텐데, 단지, 지금껏 단 한번 연이 되었던 사이라서 이렇게라도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너를 처음 마주한 순간 분노와 화는 표현할 수 없는 깊고 진한 감정을 가져다줬지. 마흔 해를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뿐이었는데, 강력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은 무뎌지더라. 얼마 전 네가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일이 있기 전까지는.
넌 더럽고 치사하며, 융통성이 전혀 없는 냉정한 녀석-이 단어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 찬사-이야. 이런 글보다는 욕이 어울리겠지만 점잖게 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이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나쁜 말을 다 던져주고 싶은데, 어휘력이 달리는 게 아쉽다. 아니면 정말 시원하게 욕을 하고 싶지만, 우리 두 딸이 들을 까 봐 아니면 나중에라도 볼까 봐 차마 담지 못한다.
넌 우리를 너무 아프게 했어. 아프고 가난한 사람에게 더 아프고 가난하게 만드는 악마 같은 존재야. 그런 네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도 너무 싫다. 하필 이 가을에 어울리는 빨간 단풍색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여러 손을 거쳐서 변한 건 알고 있어. 내가 본 너는 기존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그때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너를 처음 마주한 순간, 넌 나에게 수치심과 함께 절망감을 전해 줬지. 사실 난 아무렇지 않았어. 옆에 있던 내 친구들도 너를 자주 마주했기 때문이야. 그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게 지금은 더 슬프게 생각되지만, 당시 우리에게 다가온 너의 모습은 유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너를 마주하면 너무 힘들어서 울거나 화를 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처럼 대수롭지 않게 마주하겠지. 어느 상황이라도 슬픈 현실이다.
얼마 전 우리 첫째가 형형색색 색종이로 비행기와 각종 동물을 만들어 줬어. 그때 네가 떠올랐지. 예쁜 색종이. 빨간색 예쁜 색종이는 우리 사랑스러운 딸 손에서 투박하지만 아름답게 피어나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되었어. 비행기와 예쁜 동물은 행복과 기쁨을 건네주더라. 하지만, 너는 비슷하게 태어나서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고, 더러운 숫자와 알아듣기도 어려운 문자로 뒤덮여서 완성되지. 결국, 누군가에게 아픔과 슬픔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잖아. 너도 참 기구한 운명을 산다.
두 달 전 독서 모임 때 '죽은 자의 집 청소_김완'을 읽다가 자주 등장하는 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결국 네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가난과 빈약함을 표현하고 아픔과 슬픔을 배가시키는 몹쓸 짓만 하지. 이렇게 라도 말해서 네가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좋겠지만, 분명 스스로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겠지. 아니면 너를 세상에 나오게 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겠지. 너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라고. 너 덕분에 삶이 정리되고 정돈된다고. 너로 하여금 세상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맞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현실이라는 게 참 더럽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아니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라. 아니 세상에서 없어져라. 만약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너를 갈기갈기 찢어서 불태워 버릴 거다. 다 타고 남은 재는 더러운 물에 녹일 거야. 그다음 정화조도 없는 시골 뒷간을 찾아서 역겨운 퇴비에 뿌려 줄 테다. 그러니 제발 세상에서 사라져라. 우리 모두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가난을 더 아프고 슬프며 가난하게 만들지 마라. 그리고, 제발 힘들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더 이상 죽게 만들지 마라. 이 식빵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