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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Dec 29. 2021

모든 순간의 안녕들

휴식 주의자의 반란

휴가와 퇴근 이후 삶이 좋다. 하루의 끝자락으로 달려갈 때 즈음이나 휴가를 출발하기 하루 전에는 좋은 감정만 가득하다. 반대로 출근하거나 휴가가 끝나는 시기가 되면 심장이 조여 오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결국, 일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퇴근 이후 삶과 휴가를 지향하는 명백한 휴식 주의자이다.


매번 어떻게 휴가를 보낼지 고민한다. 휴가를 위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마무리한다. 휴가가 다가올수록 엄청난 집중력이 생기고 휴가 직전에는 평소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 이상 능력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여가를 즐기며 답답하고 찌든 일을 훌훌 털어 버리는 내 뒷모습을 누군가 지켜보면 아름답게 비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힘든 시절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가를 마치거나 웃으며 출근하고 싶었다. 휴가가 끝나가는 대부분의 날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을 때도 있었다. 목을 조여 오는 고통이 수반되고 한 발자국 내딛기도 버거웠다. 마치 혹한 날씨에 달리기를 위해 문을 열고 운동장으로 나갈 때와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나와 마찬가지로 휴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가끔은 비겁해지기도 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남에게 배려하는 것보다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앞에다 놓는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 이기심을 볼 때면 험담하고 속엣말을 만들어 서로에게 아픔과 고통을 남긴다.


함께 하는 사람들 하소연을 들으면 대부분이 휴식과 결부되어 다. 게다가, 다른 사람 휴식을 바라볼 감정은 부드럽지 않았다. 다른 사람 휴식은  휴식을 조금씩 갉아먹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감정이 생겨났다. 


휴가와 퇴근이 나를 계속 끌어들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삶을 일과 휴식으로 나눈다면 휴가와 퇴근은 휴식이 된다. 대부분 일이 힘들면 휴가에서 얻는 행복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동의하지만, 휴식을 위해 살다 보면 오히려 일에서 찾는 행복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심지어는 휴식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고통이라는 각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삶에서 일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생각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잘못하다가는 워크홀릭이 될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휴식의 노예가 되어 소중한 시간을 좀 먹는 모습도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휴식과 같은 행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을 늘이거나 가치 있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 속에서 행복을 찾아 휴식과 일의 틈을 조금 줄이는 것이다. 마치 일상을 휴가처럼 보내는 것이다. 직업관을 새롭게 형성하거나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곧추세우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삶의 모든 순간이 안녕하기를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연말 결산 회의 때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제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 초고를 작성하여 직접 읽었습니다. 어려운 말이 많다면서 시큰둥해서 열심히 다듬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배경은 평소 동료들과 상담할 때 모든 주제가 '휴가'로 향한 것과 저 역시 휴가에 치중한 삶을 산다느껴서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전에도 없는 '휴식 주의자의 반란'으로 제목을 정하고, 마지막 문장 역시 '일과 휴식,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로 썼습니다. 퇴고 과정에서 너의 작업실 탱님이 '모든 순간의 안녕이네요'란 댓글을 남겼고 영감을 받아 제목과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분명, 의도하지 않았는데, 제 글 가치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준이 낮고 형편없는 글이지만 친구들과 글을 함께 나누다 보니 글 쓰는 의미를 새롭게 찾았습니다. 고민했습니다. 책 홍보용으로 썼다고 비난받을 수 있지만, 진실이기 때문에 스스로 당당합니다. 만약 누군가 비난해도 정성을 다해 쓴 글이 우연히 친구 책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면 작은 아픔 따위는 간지러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책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제 책장에는 다른 책 스무 권이 먼저 앉아있고, 전 글을 느리게 읽기 때문이죠. 제 돈으로 열 권 구매했고, 아홉 권은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제 친구가 출간했고 글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이 글을 쓰고 나서 떠오른 게 조금 미안하지만 제 생각과 제목이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김옥경 작가가 쓰고 김지원 작가가 그렸습니다.


무엇보다 제 필명 혜남세아 글씨를 그려준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 김수정 작가까지 세명이 모여서 종이와 나무 출판사를 통해 지난주에 출간한 책입니다. 당연히 꼼꼼히 읽어보고 정성을 다해 서평 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배우는 중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글은 삶과 다르지 않다. 진실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가야 한다.'



* 초고 : '21. 12. 26, 07:22 / 발행 : '21. 12. 29.

* 표지 사진 : 나현정 (각자의 삶, 2022년 달력 1월 중)

* 같은 제목으로 이어쓰기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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