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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25. 2022

죽고 싶은 아이

죽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다.

아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하염없이 슬퍼진다.

하지만, 눈물이 아이를 더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밖으로 꺼낼 수 없다. 덤덤하고 침착하게 아이가 뱉는 슬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아이가 죽고 싶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솔직히 진심으로 공감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죄다 죽을 이유가 될 수 없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죽음을 향하는 계단으로 생각한다. 아이가 계단 끝까지 올라가지 않도록 해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린다.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정답도 없지만 계속 아이 이야기를 들으며 몰두한다. 상담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듣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을 믿기 때문에 아이의 슬픈 이야기 속으로 몰입한다.


진실하게 모든 것을 공감하고 이해하면 좋겠지서로 마주 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 지금 듣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제쳐둔다. 단지, 아이가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껏 죽고 싶은 아이를 여러 번 마주했다. 죽고 싶은 척하는 아이도 있었겠지만 죽고 싶은 아이라고 생각하며 대했다. 아이 마음을 재단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죽고 싶은 척할 정도로 힘들다면 실수로라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죽으면 지금껏 쌓은 게 무너진다.

쌓아온 경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인연이 된 아이 죽음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게 뻔하다.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생애 끝까지 남아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할 것이다. 꿈이나 기억이라는 담기 쉬운 굴레로 묶어서 나타날 것이다. 더군다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은 엄청난 고통으로  조금씩 잠식될 것이다. 그것조차도 누군가는 트라우마라고 쉽게 표현할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단지,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살아내는 게 어렵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각자가 보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에 재단할 수 없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살아만 있으면 뭐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어떻게든 버티기를 바랄 뿐이다. 살다 보면 웃을 날이 오고 웃다 보면 행복해지는데, 죽고 싶은 아이에게는 행복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포기하지 못하도록 손을 내민다.

수없이 죽고 싶었지만 버텼고 웃다 보니까 행복해져서 이제는 행복에 겨워 죽을 수 없는 삶이 되어버린 수많은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금 느끼는 고통은 죽음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고 행복을 찾나침반이라고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잘 들리지 않겠지만.


* 늘 아프다던 아이가 무사히 제 곁을 떠나서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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