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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Feb 08. 2022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영화 한 편을 봤다. 밤새도록 보고 싶은 마음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설치하면서 신규가입까지 했다. 영화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알지 못했고 주연 배우조차 몰랐다. 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었다. 단지, 글 방 내 댓글에 달린 '윤희에게도 다시 봐야겠고요'란 한 줄 때문에 무작정 영화를 보고 말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영화가 주는 함의나 감독의 깊은 뜻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뿐만 아니다. 내 인생은 대부분의 것들을 그렇게 대하며 살았다. 책을 읽어도 행간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즐겨 듣는 노래 가사도 모른다. 수천 곡 노래도 수백 편 영화도 수십 편 소설까지 표면상으로 다가오는 것만 나에게 스며들었다. 정말 그렇게 살았다.



영화를 보고 싶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 배경지 때문이었. 그곳에 대한 매력에 빠져 십여 년을 지냈다. 눈과 기차 그리고 운하까지 억 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세상을 마주할 때면 눈은 저절로 감기고 심장 두근거다. 영화에서 준이 윤희를 에서 만나는 것 처럼 아니면 마지막 윤희 추신처럼 윤희가 준을 꿈꾸 듯이.



영화는 어두운 화면에 기차소리로 시작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소리만 듣고 차가운 바다를 보면서 달리던 기차가 떠올랐다. 이어서 나오는 음악과 영상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눈앞에 그려졌다. 행선지까지 정확하게 맞췄는데, 가끔 비슷한 경험을 한다. 감정이 고조되어 정점에 도달하면 기적같은 능력이 발현되고 그 상황에서 함께하는 사람 또는 매개체에 몰입하게 된다. 사랑이나 직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중간에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란 대사가 여러 번 나온다.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인데, 그곳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칠 때가 되면 그칠 텐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면서 계속 읇조린다. 우리가 번 내뱉는 말과 겹치는, 힘든 일이 언제쯤 끝나려나, 저 사람과 복잡한 관계는 언제쯤 풀어지려나, 우리 아이들은 언제 크려나, 난 언제쯤 어른이 되려나 같은 말이다.



영화가 전해주는 의미도 깊게 새겼다. 몰입하니까 대사뿐만 아니라 배우 표정과 작은 행동까지 영화 마니아가 된 것처럼 집중했고, 건네는 메시지도 잘 받았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조금 있었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준과 윤희 관계에 대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윤희가 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예전 같았으면 좋아했을 장면이다. 밋밋하게 끝나는 것보다 명확하게 결론 짓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냥 표현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줬으면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에서도 겹치는 장면이 있었다. 준에게 다른 여성 한 명이 하려는 말을 끊고 자신 생각을 말하지 말라는 장면이었는데, 묘하게 겹쳤다.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더 표현할 수 있는 말도 안되는 연출이 보고 싶었다.



마지막에 추신을 통해서 한번 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차라리 앞부분 설명을 잠식시키고 추신만 전해줬으면 보다 크게 울렸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문외한이 두세 달에 영화 한 편 보면서 던지는 허전한 생각일 뿐이다.



여백이 많은 영화로 더 큰 울림을 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앞으로 글을 쓸 때 비슷하게 다루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을 글에 포함하지 않고 독자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조용한 일본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지금껏 내 삶에서 러브레터, 해피해피 브래드, 해피해피 와이너리,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처럼 잊을때즈음 그곳을 떠오르게 만드는 존재가 준히 등장했.



이번에는 주변에 아는 사람 한 명 정도 있을법한 평범한 이름 윤희가 되어 우리영화로 나타났. 눈과 사랑 그리고 여백과 숨김건네며 그만 머뭇거리다가오도록 손짓한다.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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