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좋아하는 풍광과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 비슷하게 겹친다. 아내는 빛이 좋은 날 나뭇잎 사이로 사각사각 나뉜 햇살을 좋아하고 나는 잔잔한 호수에 반사된 빛이 산란되어 내 눈을 흐리멍덩하게 하는 순간이 좋다. 예쁜 말로 윤슬이라고 한다. 다른 상황이지만 왠지 소리와 냄새, 빛의 세기도 비슷할것 같다.
이렇게 다른 듯 같은 아내와 10년 넘게 살면서 함께 살았던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꾸준하게 사이가 좋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내와 나는 두 달에 한두 번 비밀 여행을 한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모르게 진행했는데, 이제는 공개하고 보다 계획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두 딸들이 알게 되는 시기에도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육아에 찌들어 계신 어르신들께 큰 죄를 짓는 심정이며 부모 잘 못 만난 딸들 한테도 많이 미안했지만 이 작은 이벤트가 반복되면서 가족의 행복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둘 사이의 행복이 조금 다른 행복으로 바뀐 것 같았다. 사는 게 다 비슷하겠지만, 아이들을 다 키우고 결혼할 때 정도 되어 부부의 시간을 만들기에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쉽고, 당장 지금 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많은 손실을 감수하고도 강행한다. 지금까지는 매번 더 큰 행복을 만났기 때문에 늘 후회 없이 놀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인 것에 항상 감사한다. 자식 잘 못 만난 부모님께는 용돈을 더 드리고 있으나, 늘 죄송하다.
결혼 이후 4년 만에 첫째가 생겼는데, 그전까지는 정말 많이 놀러 다녔다. 주로 한적한 호텔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식사도 하면서 휴양을 했다. 초기에는 호캉스가 지금처럼 일반적이진 않았다.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에 유명한 호텔은 다 가봤다. 요즘 비밀여행도 비슷하다. 가끔 지방으로도 가지만, 주로 서울 인근 호텔에 많이 머문다. 조금 달라진 것은 운동량이 늘었고 저녁때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술도 한잔하며, 아내와 사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좋게 말하면 우리 삶의 정책 대화다. 부모님들과 자녀에 대한 내용, 가족의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 지난 추억들과 앞으로의 여행 계획 등을 가볍게 주고받으면서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듬는 시간이 된다.
함께 살았다면 일상에서 주로 하는 대화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다 보니 비밀여행 간 함께하는 대화에 대해서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느 인플루언서의 호텔 소개 글을 보고 아직 많이 못가 보셨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요즘은 편한 곳에 가서 차분한 휴양을 하지만 예전에는 각종 시설과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알아보고 시간을 내어 하나씩 다 해봤다. 성격상 어쩔 수 없다.
일본 대형 료칸에 가면 그 성향이 고스란히 나온다. 보통 4~5개 정도의 온천을 보유하고 있는데, 1박을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돌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하루에 목욕을 다섯 번 한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못 가보는 아쉬움을 달래고, 천천히 한두 가지를 즐기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으나 가끔 시간을 재면서 움직이는 나를 볼 때마다 조금 반성한다. 여행 다닐 때 아내는 분단위로 계획을 세웠던 적도 있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다.
가끔 주변에서 추천해 달라고 한다. 조심스럽다. 우리는 좋았는데, 우리말만 듣고 갔다가 실망할 경우 난처하기 때문에 좋았던 소소한 장소들을 잘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돈을 적게 내고 좋은 서비스를 받았을 때가 좋긴 했는데, 2년 전쯤 장충동의 유명한 호텔을 20만 원에 조식과 수영장까지 포함해서 다녀온 적이 있었고, 비슷한 가격대에 라운지까지 이용하여 첫날 저녁과 다음 날 아침을 하면서 운동과 사우나까지 즐기고 온 호텔들을 추천해 준다.
시기와 호텔 정책이 맞아야 가능한 상황들이라 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결국 돈을 많이 쓰면 좋다. 어쩔 수 없다.
하여튼, 비밀여행이든 공개여행이건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환경에서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기에 앞으로도 꾸준하게 놀러 다녀야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