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Feb 19. 2022

(낙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보글보글 글놀이 2월 세 번째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지금부터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성격유형 또는 심리상태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와~~ 재미있겠다!"


이 시간만 되면 긴장된다. 매번 작품을 공개하고 질문을 통해서 학생들과 성격 유형을 알아보는데, 제법 반응은 괜찮다. 한두 명은 전혀 맞지 않는다며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제기하지만 대체로 즐거워한다.


하지만, 작품에 스며든 내 추억을 이렇게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즐기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애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이 더 이상 슬픔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며 잠식되어 있는 슬픔을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슬픔과 관련된 공간과 시간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웃음과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어차피,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어서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던 드브로브니크의 그림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로 했다.


"모든 질문은 두 가지 답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림을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어디입니까?"

"1번 담벼락과 밑에 놓인 의자, 2번 문 밖 바다와 산"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1번 또는 2번을 선택한다. 가끔 갈매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평소 우울하거나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나마 의자의 체크무늬라고 말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결국, 웃어넘기고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며 정중하게 다시 안내한 다음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간다.


"두 번째 질문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색깔입니다."

"1번 푸른색, 2번 갈색"



두 번째 질문까지 하고 나면 학생들은 웅성거린다. 본인이 생각한 숫자를 기억하라고 공지하면 수첩이나 노트에 11 또는 22 형태로 끄적이며 잘 따라온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작품은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1번 연출한 그림이다. 2번 찰나를 기억하여 그린 그림이다."


세 번째 질문이 나가면 점점 멍한 표정이 보인다.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잘 따라오면서 숫자를 말하기도 한다. 112라고 하거나 221이라면서 서로 비교하기 시작한다.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품 배경지는?"

"1번 서양, 2번 동양"


마지막 질문을 마치면 학생들은 1111, 1211, 2122 등 다양한 결과를 머릿속에 넣거나 노트에 끄적인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결과가 어떤 유형인지 알려달라고 아우성친다.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다. 외향형이나 내향형 또는 각자 수집기능과 판단능력이 다름에도 본인이 속한 유형에 대해서 찾아보고 자신의 모습을 맞춰보는 건 한결같다.


시카고대학 A. 조엘 교수가 201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MBTI 결과는 간단한 그림 하나와 네 가지 질문을 통해서 90% 이상 일치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했다. 실제로 동일한 연구를 국내 대학교에서도 진행했는데, 대학생 1,200명을 표본으로 실시한 결과 일치율이 87.8%라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를 보였다.


사실, 강의에 활용하는 질문은 MBTI 결과 값과 동일하지만 순서만 조금 바꿨을 뿐이다. 논문에는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양분할 수 있는 소재가 포함된 그림에다 몇 개의 질문을 조금만 고민해서 만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강의 중에는 교육 목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먼저 알려주고 즐겁게 자신의 테스트 결과를 맞춰보도록 설명한다.


첫 번째 질문은 지향 방향과 에너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섬이 가까운 곳에 있는 벽과 의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우, 실제 그림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25% 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배경에 집중하는 성향을 분석하면 적극적이며 외향형(E)이라는 평가를 도출할 수 있다. 반대로 담벼락을 선택한 경우에는 내향형(I)에 해당된다. 임상실험 결과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95% 이상 일치율을 보였다. 만약 본인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인터넷상 떠도는 MBTI를 적용했거나 5%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 질문은 정보수집에 대한 인식 기능(N, S) 문제이며, 세 번째는 이행 양식과 생활양식(J, P)에 대한 질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판단 기능(T, F)에 대한 문제이다. 가장 일치율이 높은 질문은 세 번째 질문인데, 무려 98% 이상 일치율을 보였다. 특히, 여성의 경우 98%가 1번 서양으로 답변했다. 혹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으로 답변했다면, 자신의 성 정체성을 한번 돌아봐야 한다.


네 가지 질문을 통해서 도출된 16가지 유형은 유명인과 직업으로도 구분하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한다. 우선 1111의 경우 역대 미국 대통령과 유명한 정치인들이 해당되는 정치가형으로 완벽함보다는 자신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여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1121의 경우 빌 게이츠와 앨런 머스크가 해당되는 사업가형으로 탁월한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신의도 얻는 특별한 유형이다. 좋은 결과만 있는 게 아니다. 1121과 비슷한 1112의 경우 사기꾼형으로 사업가형과 비슷하지만 범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1221의 경우 국내는 이국종 교수나 석해균 선장, 외국에서는 콜린 파월과 오바마 대통령이 해당되는 전문직형이다. 주로 의사나 군인, 조종사나 스튜어디스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16가지 유형중 비율이 가장 적은 유현은 2111로 0.02%(오천명 중 한 명)인데, 에디슨과 하루키 같은 천재형이다. 국내에서는 희박하여 십만 명에 한 명 정도 있는데, 주변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2111 만큼이나 희소한 2121형은 천 명 중 한 명 정도 있는데, 피카소와 조정래 작가 그리고 가수 정지찬이 해당된다. 예술가 형으로 그림과 글, 글씨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형이다.


이렇게 몇 개 유형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대부분은 자신의 유형에 대해서도 알려달라고 난리가 난다. 그럴 때는 가볍게 수업 종료를 알리고 궁금한 내용은 인별 그램이나 얼마 전에 새로 시작한 브*치에 관련 글을 올렸으니 댓글을 달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그날은 *런치 조회수가 세 자리까지 올라가는 기쁨을 누린다. 학생들은 브런*에 찾아와 가입하고 내 계정을 구독한 다음 댓글을 단다. 나 역시 친절하게 답글을 달면서 올라가는 구독자수와 라이킷 그리고 댓글에 만족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가끔 학술자료를 기초로 재미까지 더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처를 의심하거나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업이 끝날 즈음 가벼운 놀이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만든 것인데, 죽자고 달려드는 경우이다. 자신은 N인데, S라고 나왔다든가 ENTS인데, ISFP로 거꾸로 나왔다면서 어이없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당신은 17번째 유형입니다'라고 친절하게 답변한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 새로운 관점에서 다가갔지만, 이상하게 그림을 볼 때마다 웃음보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잘 모르는 어떤 것이 움찔한다. 하지만, 숫자 영어로 조합된 자신의 유형을 맞춰보면서 웃고 떠드는 학생들을 보면 다시 편안해진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허공에 외치다가 완성한 그림이 슬프게 다가오다가도 다른 영향을 받아 즐겁게 변다. 그러다가 다시 슬퍼지고 웃는 것을 반복하는데,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 게 아니고 그냥 우리 삶은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복잡한 연결고리로 얽히고설킨다. 결국 자신이 상황과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다르기 때문에 결국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함께 즐기다면 조금 더 쉽게 살아낼 수 있다.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이 심리테스트 결과, 마지막 자리 하나만이라도 일치하는 사람이 있면, 기분좋게 친구를 맺고 즐기기만 해도 아쉬운 삶이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과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함께 하기를 바란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행복을 만들기 위한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잠시 헤어지거나 서로 떨어져 있게 되면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 말과 글로 표현한다.


아내와 나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수목원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담았다.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자작나무를 정해서 이름까지 붙여줬다. 잘 자라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가끔 수목원에 들러 산책도 하고 넓은 정원에서 함께 뛰어놀며, 아이들과 나무 사진을 찍고 추억을 쌓고 있다.



평소와 같이 수목원에 들러 산책하다가 정원 한편에서 작은 별관 한 채를 발견했다. 별관은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반원 형태 출입문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건물 내부가 궁금해 다가갔다. 별관은 작은 미술관이었고, 수목원 방문객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평소 미술 작품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는데, 실내에는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하고 있었다. 작품 제목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였고 반가운 얼굴의 작가 사진과 함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미연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의 추억을 떠올리며 오랜 시간 놓았던 붓을 들었습니다. 오 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배우를 그리워하며 여행 중 미래를 약속하면서 함께 바라보던 그리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까 소중한 사람을 그림에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구슬처럼 빛나는 그녀의 모습을 드브로브니크 전통문양인 체스형 의자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쇠기러기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아픈 몸을 이끌고 함께 여행하면서 지칠 때마다 의자에 앉았는데,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바르고 곧은 자세였습니다. 여배우로서 당당함과 온화한 표정이 제 기억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때 기억을 되새기면서 작은 미술관에 그림을 전시하였고, 미술관 정원에는 그녀와 함께 걷던 돌담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글보글 단톡방에서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방영한 꽃보다 누나에서 드브로브니크의 성벽을 걷던 배우 이미연 님과 고 김자옥 님이 생각났고, 자주 들르던 벽초지 수목원 돌담이 겹쳐졌습니다. 각자 이야기를 한편씩 썼고,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과 나눴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다 보니 좋은 평을 받지 못해서 다시 한편을 작성했습니다.


성격유형검사를 그림으로 일치시킬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썼, 글벗들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한 결과 가볍게 웃어 넘기기 좋아서 세편 글을 어떻게 엮을지 고민하다가 오늘 글을 작성했습니다.



작품 전시회에 다녀온 이야기와 중년 남성(MBTI 교수)과 배우(그림 작가)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편씩 썼는데, 글이 길어져서 번외 편으로 추후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전 글 : 1221(전문가형) 작가의 글입니다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언제든지 제안하기를 눌러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의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