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Jun 27. 2021

유월의 늦은 어느 날

I0234_ep.32 12345 유 789101112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부터 햇빛이 가득하다.

건넛마을 10층까지 햇살이 내려왔다. 해가 빠르기 때문에 보통은 15층 정도 높이에 반사되는 태양빛을 받았는데, 일요일이라 조금 게으름 피웠더니 내 눈에는 해가 중천이다. 늦은 유월이다.




허기가 진다. 아내가 구워 온 깡빠뉴를 한입 배어 물고 무슨 생각을 할지 멍하니 앉아서 키보드 자판을 누르고 있다. 책상에 앉기 전에는 보편성과 객관성, 일상과 다른 오늘, 어머니 중 하나를 다루려고 했는데, 멍청해 있는 시간 동안 생각이 달라진다. 

유월이 끝나가나 보다.


깜빠뉴 아님 깡빠뉴




일상에서 몇 가지 신기한 것을 생각해 본다. 징크스 같은 것을 말한다. 우연히 인과관계가 형성된 것 같은 생각드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나징크스라고 말하며 살아간다. 본래 의미는 불운, 불길한 징후를 뜻한다.


나의 경우 몇 가지 징크스 같은 이상하고 신기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특정 제품의 샴푸만 나에게 맞는다는 거다. 그 제품을 제외한 다른 샴푸를 사용하면 머리가 가렵고 비듬이 생긴다. 다시 하루 이틀만 써도 멀쩡해진다. 위약효과인가? 징크스인가? 아님 정말 나한테 딱 맞는 샴푸인가? 매번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징크스처럼 내 삶에서 공존한다.

스포츠를 관람할 때도 징크스가 하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수 경기를 시청하면 잘하다가도 어김없이 진다.

방금 전에도 류현진이 궁금해서 문자중계를 살펴봤더니 잘 던지다가 4실점 했다.

그냥 안 보고 결과를 듣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내 글러브는 어딜 간거지?


흔하진 않지만 아침에 안경이 깨지거나 떨어지면 좋지 않은 일이 겹쳐서 오기도 했다. 살면서 몇 번 없었던 슬픈 일에는 이 징크스가 있었다.

지금 당장 머리가 가려우니까 내 의식의 흐름이 징크스로 간다. 참 세이스럽다




다른 하나는 늦은 유월에 찾아오는 무력감이다. 1년 중 3월까지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면, 4월부터 느슨해진다. 5월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하지만, 유월이 되면 이상하리 만큼 매너리즘과 싸우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부터는 새롭게 시작한 운동으로 잘 보냈고 올해 많은 생산적인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유월이 반등의 시기가 된 것 같.




학창 시절 유월말은 기말고사로 바쁘게 보냈다. 장마가 시작되어 우중충한 날씨는 속되고 과목별로 시험을 치르느라 스트레스 최고조 올라가 보니 연말보다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칠월로 넘어가 되면 한 단락 마무리되는 느낌도 받고, 방학에 대한 기대감이 커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를 마친 후에도 비슷. 유월은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보니 어수선하고 정신없다. 장마야 비슷하고, 일은 더 복잡해졌다. 사업별로 전반기 성과를 종합하고 후반기를 예측하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튼, 쾌하지 않은 시기다. 

특히, 늦은 유월은 그렇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유월  업무를 빠르게 마무리한 다음,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일본에 자주 다녀왔다.

봄, 여름 한창 시즌에 비해 경비도 저렴하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으며 장마가 우리보다 거나 늦게 시작해서 날짜 잘 맞추면 정말 괜찮았다.

특히, 홋카이도나 오키나와 같은 지역은 기가 적당해서 날씨와 경비 측면에서 상당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아오이이케

휴대폰에 저장된 여행사진을 보니 주로 월과 12월 초에 많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여행의 좋은 추억날씨에 많이 영향받았고 한적한 곳에서 차분하게 지냈던 순간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로 결정됐다.

 

광수가 놀던 곳


여행지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기에 집중해서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래도 부족함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고,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히려 충실하게 대해기도 한다.

장소마다 다르지만 나에게 행복한 여행은 늦은 유월인 것 같다.


유치했지만 좋았던 유월




그런 유월의 마지막을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신다. 어김없이 어제 전화하셔서 함께 식사하자고 제의하셨다. 어머니에게 얼마 전에 봤으니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리기에는 손발이 오글거리고 효심도 부족하다. 이럴 때  SNS라도 잘하시면 간접적으로 표현을 하거늘 마음만 보내면서 당신 생신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때 뵙는 걸로 하기로 했다.


유월의 어느날


평소와 다르지 않은 유월이 끝나기 3일 전 가려운 머리를 긁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차분한 공간에 가서 2021년 후반기 소소한 목표를 정리해야겠다. 당장 7월부터 꾸준히 해야 할 것과 버릴 것 그리고 새롭게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야겠다.

무엇보다 곧 있을  02들의 공격을 어떻게 피할지부터 고민해야겠다. 곧 몰려올 텐데.



12345유789101112


매거진의 이전글 24_두번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