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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28. 2021

반사이익

I0234_ep.33 우선 잘 받는 것부터




원인을 찾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일찍 일어난다.

유독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날은 걱정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간 휴식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 이른 새벽부터 눈을 다. 새벽 3시. 

당연히 안과 창밖이 모두 어둡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고 건넛마을 불빛은 한두 개만 켜져 있다.

불을 켜고 자거나 걱정거리가 있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아직 하늘의 구름이  보이진 않는다. 흐린데, 잘 모르겠다. 자세히 들어보니 빗소리도 들린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한 호흡에 들어오지는 않고 배만 고프다.

 

오늘 글 보다 이번 달 마무리 글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고 틀을 잡았다. 즐거움이 더한다. 집중하다 보니 건넛마을 불빛이 몇 개 더 켜진다. 다행히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서 내 팔과 볼에 닿고 폐 속 깊이 들어온다.

잠을 깬 지 한 시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몽롱한 상태다. 나쁘진 않다. 불편한 기분으로 일어나도 멍청하게 있다 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휴일이 멍청하게 있다가 다시 자버려도 괜찮은데, 오늘은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난 이틀을 쉬었고 곧 출근해야 한다. 오늘의 멍청한 기분이다.




어제는 생일이라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유독 축하 연락이 많이 왔다. 부끄럽다. 덕분에 아침부터 감사 표현을 계속했다. 성격상 먼저 감사나 축하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라 상대방으로부터 축하나 감사를 받으면 다시 되돌려 주는 방법을 채택했다. 몇 해 전부터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고, 영감을 받아 감사 표현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누군가 좋은 말이나 감사 표현을 하면, 잘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예전에 후배가 감사의 표현으로 작은 선물을 고, 제자들이 둘째 출산 기념으로 작은 선물을 보냈는데, 둘 다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당시에는 '김영란 법'이라는 방어막을 가지고 받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생각했다. 나름의 소신도 있었으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정성 들여 준비했는데,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 돌려보내는 것이 맞는지? 위법을 한 것도 아닌데, 마치 '김영란 법'을 어긴 것처럼 몰아가는 건 아닌지? 오히려 로 인해 상대방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만든 것은 아닌지? 라며 고민했고, 결론을 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솔직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받고, 받은 만큼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우선, 내 감사에 대한 감사를 하거나 내 감사의 표현을 당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 경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경조사를 잘 못 챙겨서 나중에 서로 마음이 쓰이는 경우가 있을까 걱정되어 미리 축하나 감사를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대부분 이해를 한다.


여하튼, 선물 받으면 기분이 나쁠 수가 없기 때문에 한껏 감사해하고 돌려줄 때도 정성껏 글을 써서 함께 보낸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조용한 공간에 앉아서 후반기 목표를 세우려 했는데, 감사 돌려주기 퍼포먼스를 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다. 아내가 옆에서 초스피드로 1권의 책을 순삭 하면서 (나 같으면 3주 읽을 분량을 2시간 만에 읽어버림)

"돈 쓰고 있는데, 좋아하네! 좋아? 좋으면 됐어"라고, 격려를 해 줬다.

아내의 격려를 받고 내 행동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작은 선물을 통해서 정성 가득한 대화가 오고 갔고 반사이익으로 서로에게 긍정 에너지를 심어줬다. 




불편한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도 차분하게 앉아서 하루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졌다. 

창밖 세상도 밝아졌고 새소리도 세이만큼 시끄러운 것을 보니 오늘도 시끌벅적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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