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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Apr 30. 2022

어쩌다 여탕까지 갔을까?

보글보글 4월 마지막 주 글놀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시험 전날까지 늘어졌다가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과제는 제출 직전까지 버티다 허겁지겁 수정하여 마무리했다. 하지만, 벼락치기 달인이 글쓰기를 시작한 다음 완전히 달라졌다. 마감이 임박했을 때 극도로 긴장하고 몰입하기 때문에 초능력이 발휘되어서 투자 시간 대비 최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삶의 기조를 버렸다.


미리 쓰고 다듬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보니 이번 주제 '어쩌다 ooo'을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는  불편했다. 결국,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잔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우선 들이대자.


지금껏 살면서도 주제 파악을 잘 못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보글보글 매거진 첫 글부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홍역을 앓았다. 스스로 기준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나 글과 함께 오래 지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족했었다. 그 후로도 자주 주제에서 벗어난 글을 썼다. 어쩌면 의식해서 더 벗어났을 수도 있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진정성 있게 글을 대하면 더 큰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글의 목적과 방향을 담는 게 주제인데, 주제를 찾지 못한 자가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상황에서 내뱉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쓴 다음 퇴고를 통해서 글을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주제 없이 글을 쓰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쓰고 싶은 글을 미리 써놓고 주제가 선정되면 상관관계나 연결고리를 찾아서 이어주는 방법이다. 매끄럽지 않을 경우 글이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아니면, 어떤 주제가 나오더라도 포괄하여 담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인데, 아쉽지만 글을 쓴 지 채 일 년도 안된 수준에서 그런 글이 나올 리 없다.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000'에 대해 가능성 높은 주제를 유추하고 주제 선정 작가에게 내가 원하는 주제를 선정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쉽지 않고, 일치하지 않았을 때 대안도 강구해야 한다. 최근 보글보글 매거진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누군가는 불편하게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글이 너무 재미 위주로 향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보글보글 매거진 소개 글에 '재미있게 글을 쓰고 편안하게 글을 쓰며 꾸준히 글 쓰는 모임'이라는 문구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을 판단하자.


우선 주제 선정은 금요일 늦은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껏 금요일 게시글은 대부분 다른 날보다 늦은 시간에 발행했다. 조회수나 댓글 또는 라잇 킷 같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기 글을 쓰고 완성한 느낌이 들면 과감하게 발행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다가 주제를 받고 시간에 쫓기듯 작성해야 하는 점이 미안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작성하거나 나에게 양해를 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정모 때 미리 다 썼다고 거짓말했다.


본인이 다룬 주제가 어쩌다 선물이기 때문에 관련된 주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선물은 분명 가족과 연관된 이야기일 텐데, 거기서부터 연결되는 이야기는 사람이 중심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배려를 하겠다는 생각에 내 직업과 관련된 주제를 선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다 군대, 어쩌다 군인처럼 쓰기 쉬운 주제를 건네줄 수도 있다.


정모 때 이야기했던 어쩌다 '구인광고'를 택할 수 있다. 배려심이 깊어서 아마도 구인광고를 한다고 할 것 같은데, 사실 미리 쓴 글이 있어서 별로 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실제로 차영경 작가께서 글이 늦어지는데 나를 배려해서 '구인광고'를 하겠다고 제의했다. 난 잘 돌려서 다른 것을 생각하도록 권유했다.)



글을 통해서 사람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담은 글을 발행했다. 선전포고 같은 글이다. 토요일에 발행하는 글 주제를 선정하는 작가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조금씩 영향을 주겠다는 메시지를 포함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주제를 선정하는 작가님에게 간접 접근 전략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둘만의 눈치 싸움이다. 질 확률이 백 퍼센트에 가깝지만,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았고 충분히 즐거웠다.  



어쩌다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주제는 나름 고심했지만 분석보다는 직관으로 정했다. 거짓말이다. 진솔한 에세이를 쓰는 사람에게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이끌어 내야 했다. 쉽지 않은 주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려지지 않았다. 주제를 던져놓고 하나씩 접근하기로 했다. 함께 글을 쓰는 공간에서 거짓말이 연상될 수 있는 글을 주입하기로 했다.


정모 때도 미리 다 썼다고 말한 다음 끝날 때쯤에 거짓말이라며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아이들과 전쟁하느라 거짓말이라는 말을 못 했다. 어쩌다 거짓말을 했다.  


글방 친구 중에 사진 한 장을 보고 거짓말하는 글을 연재하는 분이 있다. 같이 거짓말하자고 댓글을 쓰면서 차영경 작가님에게 거짓말을 조금씩 새겼다.



각인시키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 글 발행 전일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노래를 게재하였다. 과하게 접근하면 역효과가 있을까 봐 경연대회 커버한 곡으로 링크를 걸었는데 다행히 글을 읽고 답글까지 달았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몇 번 더 주입했다. 조금 다른 단어로 접근했다. 주작이나 거짓말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글과 댓글을 여기저기 뿌렸다. 잘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흔적을 남겼다.



다 틀렸다. 어쩌다 여탕이었다.


역시 배려심이 깊었다. 최근에 '남탕에 들어갔다'는 글을 발행했고, 내가 여탕에 산다는 것을 잘 알기에 쉽게 쓸 수 있도록 주제를 건네줬다. 게다가 일하는 곳은 완전 남탕이고, 일이 없는 공간은 전부 여탕이기에 다양한 소재를 연상해서 풀어내기 좋은 주제를 선물했다.


괜찮다. 늘 결과는 비슷했다. 반반 확률이라도 맞추기 힘든 세상인데, 복잡한 상황과 다양한 변수 속에서 수만 가지 단어 중에 '거짓말'을 선정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것저것 확인해서 분석하고 권위 있는 기법을 사용하여 판단한 다음 도출한 예측과 전망이라고 해도 맞출 확률은 높아질 리 만무하다. 그래도 혼자 삽질한 이유는 글에 빠져서 즐기는 게 좋기 때문이다.


1퍼센트도 안 되는 확률로 한 주간 즐겁게 보냈다. 절대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만 열심히 구입하는 로또처럼 당첨을 기대하는 과정이 좋다. 과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행복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지난한 과정이다. 글을 쓰고 다듬고 다시 생각하고 또 바꾸고 여러 번 수정하면서 글에 푹 빠져 지냈다. 오랜만에 제대로 글밭에서 뒹굴었다.


사실 틀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생각하거나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면 성취감은 있으나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틀리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았고 실제로 유쾌한 기분만 남았다. 조금 난처한 상황이 되어야 주변에서도 더 좋아하고 서로 즐거울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자꾸 틀리고 헷갈려야 감정의 변곡을 통해서 흥이 고 다시 하고 싶은 동력도 생겨난다. 부딪치고 틀어져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싶었다.


주제를 선정해 준 작가와 오랜 시간 글을 나눴다. 육 개월 이상 매일 엄청난 양의 글을 주고받았다. 글 속에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녹였고 때로는 웃음과 눈물도 스며있었다. 글 한편이 될 만큼 장문을 써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른다. 여탕과 거짓말의 간극이 증거이다. 하지만, 주제가 여탕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자연스럽게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글벗 덕분에 틀려도 어긋나도 그리고 실패를 해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한 것이다.



여탕보다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정말 멋진 글을 쓰며 오랜 시간 글과 함께한 작가글의 의미를 찾아 여기저기 물어보며 돌아다닌다. 누군가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꾸준하게 글로 소리친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다. 단지, 즐길 뿐이다. 글에  의미를 담지 못하는 게 잘못인지 모르겠다. 소명의식이나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문학적으로도 많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글이 좋아졌고 글을 서로 잇기만 해도 만족한다. 글이 글을 잇고 결국 사람까지 이어주구인광고를 생각할 만큼 쓸쓸했던 내 빈 잔이 글로 채워졌다.


각자의 삶을 살지만 삶과 삶을 이어주는 글에서 행복을 느꼈가끔은 힘들고 아플 때 치유까지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글을 나누기도 이렇게 즐거운데, 주제가 맞지 않는다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결국, 거짓말과 여탕을 억지로 엮을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지, '여탕에 갔다는 거짓말'같은 제목을 쓰고 실제로 다녀왔던 증거 사진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기 때문이다.


직접 다녀 온 여탕 기록




덧+) 어쩌다 선택한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모두에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줬다. 어쩌다 맞춘 상황이 되었다 더 좋았겠지만 혼자서 삽질하는 동안  큰 선물을 받았다.




* 이전 글 : 어쩌다 여탕까지 보내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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