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선물
보글보글 글놀이 4월4주
어쩌다 선물
아이에게 생일 선물을 받게 될 때 엄마로서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부모로부터 작게라도 선물을 받아왔던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그 작은 손톱으로 꼼지락 엄마의 생일을 준비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저 감사한 일이다. 딸은 선물을 할 때 오래 고민하는 편이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생일 몇 개월 전이라도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예 미술 선생님과 동생 선물을 만들기로 정하고 기획에 들어갈 때도 있었다.
작년 봄, 딸이 한 땀 한 땀 몰래 바느질을 했던 일이 생각난다. 언제나 누나는 뭘 만들까 궁금한 남동생이 방을 불쑥 쳐들어오니 늘 경계태세로 바늘을 들었다. 학원 구석에 작업 중이던 선물을 숨겨두고 선생님과 다른 그림을 그리는 척 007 작전을 한다. 절대 비밀로 하다 어쩌다 들키기도 한 것 같지만 결국 6월 동생 생일이 다가왔을 때 “짜잔~ “하고 놀라게 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는 딸이다. 어찌 보면 자기 좋아하는 선물을 만드느라 혼자 좋은 선물일 수도 있다. 드디어 몇 달이 걸려 동생 이름이 알록달록 수놓아진 방석을 완성해 선물로 주면 동생은 감동이… 전혀 없다. 장난감이 제일 좋은 아직 어린 남자아이라서 그럴까? 수공예 작품의 가치를 몰라본다.
딸이 8살 무렵에 선물해 주었던 엄마 생일 카드도 기억이 난다. 거기엔 코팅이 된 작은 풀들이 붙여져 있었다.
“to 엄마
올해 처음 뽑은 잡초예요.
힘껏 자라나는 식물처럼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자라는 매화꽃처럼
배려하고 사랑해요.”
봄부터 뽑아둔 작은 풀들을 책 사이에 꾹 눌러두었다가 하나하나 꺼내 들여다보며 그중 제일 예쁜 것을 골라 여름의 엄마 생일에 선물해 주었다. 봄마다 며칠간은 잡초와 씨름하는 엄마 곁에서 놀던 아이는 작은 풀들의 아름다움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엄마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래 생각한 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잡초뽑기 (그럴 리가?)를 떠올렸나 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아이답게 생각해 다시 전해준 마음은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자주 보고 싶어 부엌 벽에 전시해두느라 잡초의 색도 색지도 많이 바랬다. 하지만 사라져 버렸을 그날의 아주 작은 잡초라도 아이 손에서 내 마음으로 와서 아름다운 선물로 남았다.
선물을 오래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은 사실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이의 순수한 사랑에 비하면 우리들이 흔하게 구입하는 물건으로 얼마나 진실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안타까워진다. 톡으로 대화하다가 쉽게 보낼 수 있는 선물은 코로나 시대에 안부와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주소를 몰라도 선물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의 선물을 전하고 받는 경우가 오히려 더 적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클릭 몇 번으로 너무 쉽게 선물이 보내지니 비뚤한 리본 하나 내 서투른 손길을 전할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정이 담긴 투박함은 점점 세련된 제품에 밀려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선물하면 일본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일본 승무원들의 신입 훈련담당 교관을 했을 때였다. 한 기수가 끝나고 그들이 수료한 후 비행을 하기 시작하면 나도 비행으로 복귀했다. 승무원들은 스케줄이 다 달라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회사에 ‘메일박스’라고 하는 A4 용지 사이즈의 작은 서류 서랍이 있는데 회사 전달물을 받는 용도지만 우체통처럼 승무원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료한 승무원들은 훈련원 때의 함께 했던 추억이 그립다는 메시지와 함께 가끔 내 메일박스에 작은 일본 과자를 넣어놓곤 했다. 처음에는 작고 신기한 사이즈의 그 달달한 과자들에 너무 황홀해했었다. 그런데 여러 차수를 진행하다 보니 나와 인연을 맺고 수료한 훈련생의 인원수가 점점 늘어났다. 늘 작은 과자들이 메일박스에 들어있어서 반쯤 열려있던 내 서랍은 가끔 거의 터져나갈 정도로 꽉꽉 들어차 있기도 했었다. 내 위아래 사번의 동기들은 자기 서랍이 안 열리니 가끔 자기가 훔쳐 먹겠다고 농담했지만 부러워하기도 했고 사실 여러모로 불편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그즈음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정말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죽을 것 같았다. 이 빚잔치를 어떻게 감당할지 허덕거렸다. 되갚아야 할 과자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매번 그들의 메일박스에 보답 과자를 넣었는데 이게 한 번에 안 끝나는 것이었다. 내가 보답하면 나중에 더 큰 게 들어가 있었고 무한 반복되는 과자 배달부가 된 느낌이었다. 비행을 가면 현지의 슈퍼마켓을 들러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메일박스에 기계처럼 넣기 바빴다. 편지는 처음엔 신경 쓰다가 나중에는 하나하나 적을 수가 없어 이름만 적었다. 사실은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일본어나 영어로 작문하기 귀찮아서 성의도 없이 땡큐라고만 적은 허접한 보답이었다. 괴로웠다. 보답을 안 하는 게 나은 성의 없는 선물을 서랍에다 넣고서야 빚잔치가 끝나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지역마다 특산품이 넘치는 작은 먹을거리와 선물의 왕국이 일본이라는 점이었다. 또 포장 예술이 신의 경지에 이른 나라다. 그런 선물에 상응하는 예쁜 한국 과자를 십여 년 전에는 잘 찾을 수가 없어 애를 먹었다.
힘들었던 나는 급기야 입을 싹 닦기로 했다. 최악의 수를 썼다. 모른척하기 작전을 폈다. 말로 퉁치고 넘겨버리거나 이제 선물 배틀 그만하자고 사정했다. 다음에 밥 사 준다고 감사함를 허공으로 띄웠다. 가끔은 받은 것도 기억 못 해서 고맙다고 말조차 미처 전하지 못했던 후배들도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점점 아무것도 넣지 않게 되었다. 조금 살 것 같았다. 그 이후 휑한 내 메일 박스를 보다 가끔 뭔가 들어찬 다른 서랍의 따뜻한 메시지가 살짝 부러운 날이 올 정도로 선물은 드물어졌다. 내쪽에서 끝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훈련원 때의 추억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때의 후배들을 내가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그와 다르게 선물 주고받기는 상당히 피곤했다. 일본 사람들은 받은 것을 꼭 갚는 문화였기에 나도 갚았지만, 1대 다수였던 점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 조금 아쉬웠다. 천천히 한 명씩 친해지는 것도 좋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과자 무한 교환 선물이 멈춘 후에는 신기하게 우리의 관계가 정리되었다. 정말 진하게 마음을 나누었었던 일본 후배들만 남았다. 물론 지금도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못 갚아주고 있다. 하지만 달고 단 일본 과자들만큼 달콤한 '정'이라며 손에 스윽 쥐어주는 투박한 초코파이 같이, 섬세하지는 않지만 오래가는 마음을 sns로 가끔씩 나누곤 한다. 한국식 정에 익숙해진 그들도 이제 나를 이해해 준다. 받자마자 꼭 되갚아야 하는 일본 문화는 좀 깍쟁이스럽다. 너무 빨리 갚아버리면 가끔은 민망하다. 선물의 여운 좀 마음에 담고 있다 되돌려 주시지 할 때도 있다. 나라마다 다른 선물 문화지만 과하지만 않으면 선물은 감사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삶에 기쁜 추억으로 남는다. 단지 감당할 수만 있다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최근 물질이 아닌 '온전한' 마음의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사실 내가 선물인지 전혀 모른 날이었다. <어쩌다 선물> 주제의 보글보글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어쩌다 큰 선물을 받고도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푸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글쓰기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동네 책방 <너의 작업실>에서 매일 글쓰기를 한 지 7개월째인데, 글로 만나는 글방 멤버들이 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시간 이어 가슴이 설렜다. 더군다나 책방의 탱사장님이 강력 추천하는 <온전히 나답게>의 한수희작가님의 시간이라 무조건 신청했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모두의 글을 보내면 작가님의 생각을 나누어 주실 예정이라 했다. 사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육아하는 동안 에세이 분야는 거의 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10년 전 비행하면서는 여유롭게 에세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분야와 실용서 외에 잘 사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작가님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심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쓴 후 제출했다.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무신경하고 대충 하는 버릇이 나와서 그랬는지 퇴고 시간이 브런치의 10분의 1도 안된 상태로 보낸 글을 작가님이 좋은 피드백을 했을 리 없었다. 각자 직접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발음이 꼬이고 앞뒷말이 안 맞아 당황했다. 게다가 독박 육아가 기본이라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양해를 구하고 참석했다. 모두 사정이 있을 텐데 나만 애 둘을 뒤에다 앉혀놓고 워크숍에 참여한 것이라 신경이 쓰여 정신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무리해서 거길 왜 갔을까 자책도 했다. 그래도 책방 사장님의 사려 깊은 아이들 케어로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워크샵 현장에서 작가님의 책중 두 권을 구입하고 그중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에는 사인과 함께 ‘씩씩하게 용기를 갖고’라고 써 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워크숍을 다녀온 다음날 서서히 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부족하지만 최근 책을 하나 쓴 저자로서 글에 지적을 받고 나니 속이 상했던 것이었다. 문장을 다듬지 못했던 것은 명백히 나였는데도 그걸 알려주는 작가님이 야속했던 것이었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셨는데 왜 용기가 사라지지?’
괜히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이 먹고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지적받고 싶지 않아 하는 에고(ego)가 마구 스스로 보호하려는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주말 제외 매일 글을 써오던 내 활력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며 괜히 워크숍 탓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가방 속에 접혀있던 종이를 천천히 펼쳐 들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작가님이 내 글을 읽고 남겨주신 밑줄 중에는 연필로 그려진 작은 하트들이 있었다. 좋은 부분도 줄이 그어져 있었고. ‘정리 안된 문장’ ‘ 너무 길어 나누면 좋겠어요’ 하는 코멘트도 있었지만 ’이 부분이 가장 명확하고 좋습니다’ 도 물론 있었다. 그날은 내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진한 연필 하트가 뭔가 발랄하게 웃고 있는 작가님처럼 경쾌하게 느껴져 다시 보니 기분이 참 좋아지는 것이었다.
특히 빈 여백에는 “영경님께~”로 시작하는 편지 같은 글이 꽉 메워져 있었는데 왜 지적한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다시 보니 애정이 담긴 조언이었다. 나처럼 메일박스에 이름 하나 달랑 쓰고 땡큐만 쓰는 무신경한 사람은 정말 반성해야 할 달디단 조언과 격려의 선물이었다.
초고를 대충 써두고는 칭찬만 받기를 바라던 내 에고를 바라보고 부끄러웠다. 날것의 그 글이 나의 에고와 같았다. 에고는 다치기 싫다며 좋은 충고에도 변명하고 오히려 억울해했다. 퇴고를 회피하던 나는 진짜 발가벗은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변화하려면 깨어져야 하고 변화를 좋아하고 성장하고 싶다던 나였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작가님이 내 에고를 무너뜨리려 선물처럼 나타나셨던 귀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테두리를 부숴버리라고 옆에서 자극해주는 지원사격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많은 글을 읽고 참석자 모두에게 애정 담긴 편지를 써주셨던 수고가 감사했다. 글방에 공유된 다른 분들의 피드백들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방에는 활력이 돌았다. 모두들 자신의 부끄러운 초고를 드러내 보여 왔지만 우리끼리의 평가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족한 면과 좋은 점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려 하는 중이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이 드러나는 것에도 마치 받았던 선물을 자랑하듯 작가의 편지를 공유하며 자신의 치부를 보이지만 신기하게 모두들 더 글을 쓰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해주고 있다.
워크숍이 끝난 후 어쩌다 선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말이다. 딱딱한 허물을 함께 걷어주려 진심으로 글을 읽고 쓴소리 해주신 한수희 작가님을 책 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비행기 공포증이 심하신 작가님 옆에서 안심하실 수 있게 좋은 이야기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날 나도 모르게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해드린 것을 만회하고 싶다. 즐거운 비행 에피소드 안전한 에피소드를 알려드리고 싶어 기억나는 일화를 모아 글을 더 써볼 용기를 내고 있다
글을 쓰는 자체만으로 즐거웠는데, 이젠 글을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글 잘 쓰는 작가님의 피드백 선물도 받고 나니 그녀의 책이 너무 궁금해 읽어보는 중인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선물은 책인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생긴다는 것은 그쪽은 몰라도 나는 큰 인연의 선물을 받는것과 다름 없다.
그러고 보니 책이라는 물질적인 선물도 참 좋은 것이네.. 싶다.
*금요일 오늘 발행이 조금 늦어 밤이 되었습니다.
제가 매거진 다음 작가님께 주제를 제시해 드려야 하는데 혜남세아 작가님께 시간을 적게 드리고 최대한 퇴고를 못하게 만드는 작전 아닌 교묘한 작전으로 글쓰기 난관을 넘어가실 수 있도록 미션을 본의 아니게 드리게 되었네요. 파이팅^^
제가 드릴 주제어는 <어쩌다 여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 유정 작가님의 <어쩌다 아내>
*매거진의 이전 글, 반가운 보리 작가님의 <어쩌다 맞춘 거 가지고!>
*매거진의 이전 글, JOO작가님의 <어쩌다 덕질>입니다.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