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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Apr 28. 2022

어쩌다 덕질

Deli Spice, 운명적 만남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1998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머리를 띵 맞은 듯했다. 도입부 기타 연주가 나오는 순간 이미 나는 이 노래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그리고 몇 줄 안 되는 가사와 단순한 코드 진행 덕분에 이 노래에 빨려 들어갔다. '이런 노래가 있다니!'

델리스파이스라는 인디 밴드의 노래였다. 노래 한 곡으로 델리스파이스와의 (일방적)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용돈을 모아 델리 스파이스의 테이프를 사서 주변 친구들에게 홍보하기 시작했다. H.O.T와 젝스키스의 시대였다. 너는 H.O.T 팬이냐, 너는 젝스키스 팬이냐 는 친구들한테 델리 스파이스를 권하는 내 목소리는 변방의 북소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 3이 되었고, 기쁠 일이 하나도 없는 고 3에게 기쁜 소식이 생겼다. 바로 델리스파이스 멤버 김민규, 최준호가 밤 10시~12시에 하는 라디오 DJ를 맡게 되었다는 것. KBS(89.1MHz), MBC(91.9MHz), SBS(107.7MHz)만 알던 나는 델리스파이스의 '우리들'(방송 이름)을 듣기 위해 CBS(93.9MHz)를 듣게 된다. 라디오를 들으며 사연을 썼다. 소개될 만한 재미있는 사연으로, 글씨는 최대한 또박또박 예쁘게. 과연 내 사연이 소개가 될까 두근두근하며 방송을 듣는데 내 사연이 소개되었다! 그들이 내 사연을 읽어 준 후 내가 신청한 '챠우챠우'를 틀어주었다. 나는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델리스파이스의 '우리들'에는 많은 락(Rock) 밴드들이 나왔다. 그 덕분에 언니네 이발관, 미선이, 마이 앤트 메리, 롤러코스터, 원더버드 등 많은 밴드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모던락에 자연스레 빠져가던 어느 날, '우리들'에서 첫 공개 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꼭 가야 하는데!' 나는 고 3 신분이었지만 공개방송에 안 가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엄마, 요즘 공부가 잘 안 돼서요. 서울대에 좀 갔다 올게요. 서울대 구경하면 공부할 마음이 생길 거 같아요."

서울대 비스무리한 성적도 아니었던 내가 서울대에 가서 마음을 다잡고 오겠다고 하는 건 너무 심한 무리수였다. 그러나 무리수를 두려면 애매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생뚱맞지만 서울대여야 한다! 그렇게 엄마에게 서울대에 다녀오겠다고 선포하고 나는 혜화역으로 향했다.


공개방송은 대학로 SH클럽에서 열렸다. 그 당시 클럽은 라이브 공연을 하는 소극장 개념이었다. (클럽의 개념이 춤을 추는 장소로 바뀐 건 한참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가수들이 나왔고, 나는 난생처음 접한 라이브 공연에 가슴이 뛰었다. 마지막 공연은 나의 우상 델리스파이스였다. 비록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그들의 실물을 영접하고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음에 감개무량했다.



슬프지만 진실, 저무는 PC통신 시대


2000년 6월, 델리스파이스의 단독 콘서트가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인 연강홀에서 열렸다. 대학생이 된 나는 당당히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 전에 PC 통신 천리안 델리 스파이스 동호회(줄여서 델리동) 정모가 있어서 정모부터 참석하고 델리동 사람들과 같이 콘서트를 봤다.


콘서트가 끝나고 델리동 부시삽(부운영자)은 델리스파이스 멤버들이 다음(Daum) 카페 델리 팬클럽을 챙기느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델리를 지켜온 천리안 델리동을 홀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리안뿐 아니라 하이텔 델리동도 화가 나있다며. 애초에 '델리스파이스'라는 밴드가 하이텔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PC통신 팬클럽 델리동은 밴드의 모태가 된 PC통신에 어떤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 김민규가 1995년 하이텔 모소모(모던록 감상 소모임)에 "U2와 R.E.M 같은 음악을 하려 한다"는 게시물을 남겼고 그 게시물을 본 윤준호가 김민규를 찾아오면서 델리스파이스가 결성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나는 델리동 운영진들이 델리스파이스를 알고 지낸다는 것을 그동안 부러워했는데 이곳에도 세력 다툼(?)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구 세력의 유지나 신흥 세력의 확장 등에 크게 관심 없던 나였지만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다음 카페에 가입하면 배신자가 될 것 같았다.

'다음 카페 델리 팬클럽은 가입하지 않겠어!'

2000년대 초는 PC통신이 저물어 가고 다음 카페가 떠오르는 시대였거늘.


그다음부터 나는 조직(?) 활동은 하지 않고 조용히 개별 덕질을 하였다. 주변 친구들에게 델리에 대해 홍보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는 홍보 활동이었다.) 델리스파이스 공연이란 공연은 다 다니며 열광하였다. 몇 시간의 스탠딩 공연이 전혀 힘들지 않던 시기였다.



Bombom, 진짜 운명적 만남


2001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린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이하 쌈사페)은 저렴한 가격에 많은 락밴드를 만날 수 있는 락의 축제였다. 2003년 이화여대 운동장에서 열린 쌈사페는 단돈 3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3천 원의 가격에 약 6~7시간의 공연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뽕을 뽑는 공연이었다. 델리스파이스는 매년 쌈사페에 출연하는 '무림고수'였다. (인지도와 인기가 있는 밴드는 '무림고수'로, 떠오르는 신예 밴드는 '숨은고수'로 분류되었다.)


공연까지 시간이 좀 남은 상황이라 나는 이대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정문 옆에 있는 던킨 도너츠 앞에서 델리 멤버들을 만났다! 정말 바로 앞에서 딱 마주쳤는데 나는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영광이에요! 너무 좋아해요! 이따 공연 잘 볼게요.' 등 수많은 말을 마음속으로 삼킨 채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았다. '아, 나는 누굴 좋아하면 말을 못 하는구나.'


비록 말을 걸진 못했지만 나는 공연에서 누구보다 더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진짜 운명적 만남도 있었다. 목동 현대백화점 토파즈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연 전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써서 이벤트함에 넣으면 공연 중에 델리스파이스 멤버들이 한 씩 뽑아서 발표하고 대기실에서 그 사람과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를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꽝손 중의 꽝손이다. 가위바위보며 추첨 행사며 되는 게 없다. 대학 수시 원서를 사러 가는 당번을 가위바위보로 정했을 때 내가 걸려서 엄마에게 타박을 받은 적이 있으며, MS Office 프로그램 설명회에서는 웬만한 참석자들에게 다 선물이나 하다못해 책이라도 줬는데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좋은 건 안 걸리고 안 좋은 건 걸려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핸드폰 번호를 적을 때도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보다 내가 광팬이었다.)

"나 추첨 운 진짜 없는 거 알지?"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델리스파이스 기타이자 보컬인 김민규가 내 전화번호를 부르더니 무대에서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호가 울리는 전화를 높이 쳐들었다.

"저예요! 저!!!"


나는 공연이 끝나고 무대 대기실에 가서 김민규 님과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김민규 님이 손수 구운 CD를 받아 왔다. (얼마 전에 정리하다가 그 사진을 찾아냈으나 스모키 화장이 번져 무서운 김민규 님과 그분보다 상태가 더 심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진은 잃어버린 것으로 하겠다.)

2003년 쌈사페 포스터, 2004년 델리스파이스 콘서트 포스터


타임머신, 잊혀진 덕질을 찾아서


1998년부터 이어진 조용한 덕질은 2006년까지 이어졌다. 델리스파이스는 2006년 '봄봄' 앨범을 발표한 후 각자 솔로 활동을 하며 밴드 활동이 흐지부지 되었다. 이에 따라 나의 덕질도 함께 흐지부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입사, 결혼, 출산 등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그 시절을 잊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잊고 있던 덕질을 다시 하는 느낌이다. 대학로부터 홍대, 삼성동, 목동 등 델리스파이스를 찾아다녔던 많은 공연장이 떠오른다. 쩌렁쩌렁한 음악 소리, 몇 시간을 서서 방방 뛰어도 아픈지 몰랐던 다리, 떼창을 하고 소리 지르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공연장에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온 다음 느꼈던 시원한 밤공기는 공연의 여운과 어우러져 감동을 배가시켰다.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들을 다시 들어보니 지금 들어도 명곡이다. 8년 간의 덕질이 이제 봐도 아깝지 않다. 어쩌다 시작된 덕질이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챠우챠우'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 '항상 엔진을 켜둘게'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너와 만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바닷가에 다시 또 찾아와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항상 듣던 스미스를
들으며 저 멀리로 떠나자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둘게

- 델리스파이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 글의 소제목은 델리스파이스 앨범 제목을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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