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Apr 27. 2022

어쩌다 아내

늘봄유정 남편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늘봄유정 작가의 남편입니다. 아내의 글에 여러 번 등장했기에 낯설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지난주, 아내가 그러더군요. 보글보글 매거진에서 함께 글 쓰시는 혜남세아작가님의 아내분이 글을 올렸다고요. 그때 대충 짐작은 했지만 제 차례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네요.


이번 주 보글보글 매거진 제시어가 '어쩌다 OO'인데 앞사람이 던져주는 대로 쓰는 거라 하더군요. 월요일 아침 로운 작가님께서 아내에게 <어쩌다 아내>를 제시하셨고 아내는 종일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젯밤 제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더군요. 일종의 거래 제안이랄까. 글을 써주는 대신 모종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락했습니다. 글이 뭔지, 브런치가 뭔지, 보글보글이 뭔지...

어쩌다 아내는 이렇게 글과 사랑에 빠진 걸까요?



저희는 대학 과커플, 흔히 말하는 CC입니다. CCC(Campus Couple Cutter)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3년 반을 꿋꿋이 버텼지요. 저희는 꽤 달달한 커플이었습니다. 함께 수업 시간표를 맞춘 것은 기본이고 공강 시간에도 늘 붙어 다녔죠. 과방 소파에 누우면 아내는 늘 제 귀를 파줬습니다. 그녀의 화장품 가방에는 항상 귀이개가 준비돼 있었죠. 그녀의 무릎에 누워 귀를 맡기고 있으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처럼 살짝 잠이 들었던 것도 같네요. 당연히 세간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이 빗발쳤죠. 하지만 우리 눈엔 그런 게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퀴벌레 커플이라고 놀려도 마냥 좋았던 시절이었죠.


20대 초, 연애하는 동안 우리에겐 굵직한 고난들이 많았습니다. 제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아내의 아버지가 IMF 때 부도를 맞으셨죠. 이것도 다 아시는 내용이죠? 뿔뿔이 흩어졌던 아내 가족이 한집으로 모일 때 트럭으로 짐을 날라준 사람이 접니다. 그날 어떤 술 취한 놈이 운전하던 차가 우리 차로 돌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는데, 그마저도 추억이 됐네요. 부도 전만 해도 장인어른은 어깨에 힘 빡 들어간, 제법 규모 있는 건설회사 사장이셨죠. 저를 처음 부르신 날, 일식집 룸에 초대해서 잔뜩 술을 먹이신 기억이 납니다. 도급 3위의 건설회사라며 은근한 자랑도 하셨죠. 그러니 그분의 부도는 제게도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부터 가장 힘들었던 시간까지 함께 나누었던 기억이 있어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관계가 아직 괜찮은 가장 큰 이유는 저의 '아내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적극적인 애정표현'덕분이죠.

연애 때부터 결혼 초까지 아내는 저의 애정표현을 참 좋아했습니다. 하나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살살 쓸어내리며 만져주면 스무 살의 그녀는 나른해진다고 말했지요. 지하철에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면 제 품에 폭 안기며 두 팔로 제 허리를 감싸주었죠. 한여름에 땀이 줄줄 흘러도 깍짓손을 풀지 않았습니다. 다한증이 있는 저였지만 참았지요. 그녀가 좋아했거든요. 그녀는 애정표현 정도가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만큼이나 아내도 애정표현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집착이라 느껴질 정도로 제게 앵겼죠. 때로는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어쩌겠습니까. 결혼 전이었는 걸요...

어쩌다 아내는 저에게 그렇게 홀딱 빠졌을까요?

아! 이쯤에서 제 젊었을 때 사진을 하나 올려볼까요?



그랬던 아내가 변한 것은 첫 아이를 낳고부터였습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거죠. 저 역시 한창 바쁜 시절이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회식으로 늦은 귀가가 일상이었고 휴일엔 지친 몸을 이끌고 육아를 도왔습니다. (이 부분은 기억이 엇갈릴 것 같기는 합니다. 아내는 제가 소파와 한 몸이었던 것만 기억하겠죠.)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 몸과 마음은 더 소원해졌습니다. 부부였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맡은 바 일을 하느라 서로를 챙길 여유가 없었죠. 약 7,8년 정도 우리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제 애정표현 에너지는 아이들에게로 쏠렸죠.

어쩌다 아내와 저는 그렇게 됐을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렇게 한참을 살다 보니 회식이 줄고 귀가는 일러지는 나이가 됐습니다. 반면 아내와 아이들은 바쁘더군요.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떨 때는 제 존재가 그들에게 귀찮게 느껴지는 것도 같더군요. 특히 아내가 심했습니다. 연애 때는 그렇게 제게 치대던 사람이 자기 삶 바쁘다고 곁을 내어주질 않더군요. 제 마음은 점점 허전해지고 아내는 날이 갈수록 냉정해졌습니다.


그녀가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지 마!"였지요.

네. 상처받았습니다. 치사했죠. 어쩌다 "안 해!" 라며 토라지기도 했지만, 저란 남자, 포기를 모르죠. 아내 앞에서는 낯도 두꺼워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번을 거부해도 백번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애정표현을 했습니다. 만져주고 안아주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위로가 되었거든요.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내와 살을 대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졌습니다. 젊은 시절 아내 무릎에 누워 귀를 맡겼던 때처럼 나른해지고 온갖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입으로는 귀찮다고 했지만 사실 아내도 싫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귀 파달라고 아내 무릎에 누우면 그녀는  투덜대면서도 귓속을 들여다봅니다. "귀지는 없어. 그런데 늙으니까 귀 입구에 웬 털이 이렇게 자라니?" 하면서 족집게로 정리를 해줍니다. 그럴 때면 제가 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아내가 남편의 스킨십을 싫어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쩌다 아내는 일단 거부부터 하는 걸까요?


제 철칙은 '부부 각방은 절대 안 됨!'입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은 부부에게서 제일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아이들 방을 일찌감치 마련해주었고 두 돌 무렵부터는 따로 재웠습니다. 물론 안방에서 자던 아내가 아이들 뒤척이는 소리에 몇 번이고 튀어가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것은 미안합니다만, 아직도 아내가 제 옆에서 자는 것은 그 시기에도 같은 이불을 덮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그 시기에 각방을 시작한다던데, 저희는 그 고비를 잘 넘긴 거죠.

한 달 반 전쯤, 제가 코로나에 걸린 어머니를 뵙고 왔다는 이유로 큰아들 방에서 자던 아내는 채 2주가 되기도 전에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더군요. 그걸 보면, 그녀도 저 없이 자는 게 쉽지 않은 겁니다. 이미 제게 길들여진 거죠.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제,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 : 나... 목이 아파.

남편 : 뭐? 코로나 아니야?

아내 : 그런가? 그런데 당신, 그 말 하면서 왜 몸이 뒤로 움찔 움직여?

남편 : 내가? 아닌데?

아내 : 맞아! 내가 봤어! 살짝 몸이 뒤로 갔거든?

남편 : 아냐~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아내 : 옮을까 봐 겁나는 거야? 와... 팔베개를 해주네 어쩌네 할 때는 언제고.

남편 : 난 당신이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나이 들거나 뚱뚱하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당신 옆에 있을 거야~ 당신이 코로나 걸렸어도 옆에서 잘 거라고.

아내 :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아프거나 건강하거나'라고 했으면 뒤에 오는 말도 '나이 들거나 젊거나'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로 대조를 이루게 말해야지. 젊거나, 날씬하거나라는 말은 왜 빼? 참나!

남편 : 하하. 내가 그랬나? 어쨌든 난 삶과 죽음을 당신과 함께 할 거야.

아내 : 아 몰라! 기분 나빠졌어. 병원 가서 코로나 확진이면 오늘부터 각방이야!


하...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어쩌다 아내는 저를 멀리하게 된 걸까요.

어쩌다 아내는 저렇게 애정표현을 거부할까요.

어쩌다 아내는... 제 사랑을 알아주지 못할까요.

아닙니다. 분명 아내는 알아요. 제 사랑도 알고 제 애정표현도 좋아하지요.

어쩌다 아내는 저렇게 앙탈을 부리는 걸까요.

그보다도...

어쩌다 아내는 코로나에 걸린 걸까요.


* 본 글은, 전지적 남편 시점으로 쓸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진짜 남편이 쓴 걸로 오해하시는 분이 많으셔서요...


스킨십에 진심인(미친) 남편과 사는 늘봄유정입니다. 아내가 코로나 걸려도 옆에서 잘 거라던 남편은, 집에서도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있습니다. 제 옆엔 오지도 않아요. "당신이 안방에서 잘래, 아들방에서 잘래?"라고 냉정하게 물어봅니다. 친한 친구가 "지금이야! 공식적으로 외박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며 신났습니다.

어쩌다 남편은 저렇게 일관성 없는 애정을 갖게 된 걸까요?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 < 어쩌다 '전문인'이 되었다는 두 친구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 어쩌다 '브런치' >입니다.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 금요일에 발행하시는 차영경 작가님께 드릴 제시어는 < 어쩌다 선물 >입니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브런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