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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pr 25. 2022

어쩌다 "브런치"

휴직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줌마 세상에 뛰어들 때가 되었다. 새벽 6시 출근, 11시 퇴근 생활을 너무 오랫동안 해왔나 보다. 아이를 마중하러 나선 길, 오도카니 구석챙이에 서서 하원 버스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예..."

"같은 유치원에 보내는 지우 엄마예요. 영이 엄마시죠?"

"네... 안녕하세요?"

"가끔 나와계시는 거 봤는데 요즘 매일 나오시네요?"

"네... 휴직... 했거든요."

"그러시구나. 우리 애들 내년이면 같이 초등학교 입학할 텐데 친구 하면 좋겠어요."

"네..."

"그러지 말고, 내일 아이들 등원시키고 저희 집에 오시겠어요? 같이 커피 한 잔 해요."

"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선뜻 다가와 말을 건네는 지우 엄마는 곰살맞은 성격이었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픈 마음에 그러마고 했다.


"거기 앉으세요. 별것 없고, 떡볶이 좀 만들었어요."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벽을 유리 진열장으로 꾸며 마치 백화점 전시관 같았다. 꽃무늬 그릇이 진열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스포트라이트 조명에 비쳐 반짝였다. 뽀얀 대리석 식탁에는 진열장에서 보았던 그릇에 소복이 담긴 떡볶이와 과일이 단정히 놓여있었다. 인터넷 최저가로 대충 고른 그릇에 담아 먹던 우리 집 식탁이 스쳐지나니 문득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하는 식탁이었다.


"너무 예쁘게 차려주셔서 먹어도 되나 싶네요. 잘 먹을게요."

"무슨 말씀을요... 떡볶이밖에 없는걸요. 자주 뵐 것 같아서 차 한잔 함께 하고 싶었어요."

"네... 곧 있으면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이라 휴직을 했는데 동네에 아는 분이 없어서 어색했었거든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지우 엄마를 우리 집에 초대하려니 갖춰진 그릇 하나 없는 우리 집 주방이 떠올랐다. - 집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지우네 집 진열장에 장식된 그릇의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난생처음 알게 된 브랜드였고, 그릇 하나가 그렇게 값나가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집 그릇은 여전히 무늬 없는 백색 도자기 그릇이다. - 선뜻 '다음에 한 번 놀러 오세요.'라고 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다음에 같이 점심 드실래요?"

"그러지 말고, 아이들 보내 놓고 브런치는 어떠세요?"

"브런치요? 좋아요..."

"그럼, 내일 애들 보내고, 9시 반에 봬요."


'브런치? 브런치가 뭐지?' 내색은 안 했지만 브런치가 뭔지 몰랐다.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자는 얘기려니 하고 끄덕였다.


브런치 : 1.(미·비격식) 조반 겸 점심  2. 점심 겸 늦은 아침을 먹다  3. 브런치
브런치(Brunch)란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식사를 말한다. 아침 식사를 뜻하는 브렉퍼스트(Breakfast)와 점심을 의미하는 런치(Lunch)의 합성어로, 아침 겸 점심을 뜻한다. 하루 중 첫 끼라 아침식사처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가벼운 식단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다음 어학사전 / 다음 백과

지우 엄마 함께 간 카페 메뉴판에는 다양한 브런치 세트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브런치는 아침과 점심을 겸해서 어중간한 11시경 먹는 밥이었다. 그런데 지우 엄마가 권한 '브런치'는 커피(차)와 함께 곁들이는 음식 종류였다.



직장인의 하루는 평이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한 평짜리 책상에 앉아 매일 비슷비슷한 업무를 본다. 점심시간 잠깐 짬이 나지만 그 역시도 식사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하는 낙이 전부다. 돈을 벌지만 쓸 시간은 별로 없다. 주말이 찾아와도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웠고, 가끔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도 짧은 순간 누리는 짬에 불과하다.


내가 접한 '브런치' 세상은 휘황찬란했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고, 권하는 음식마다 맛있었다. 이후 내가 회사에서 가장 바쁘게 보냈던 9~12시를 '브런치' 시간으로 보내게 되었다. 매일 만나도 수다가 끊이지 않았고, 결코 질리지 않는 줌마의 삶은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두세 시간 음식과 커피를 나누며 이어지는 수다는 주제가 5분 단위로 바뀌어도 결코 맥락이 틀어지거나 이해 못 할 내용이 없었다. 대여섯 명이 모이게 되면 더 진귀한 현상이 펼쳐진다. 모두 함께 말하고 각각 다른 주제로 말하는데 웃을 때 함께 웃고, 화낼 때 함께 화내며 맞장구를 친다. 분명 주제는 바뀌었고, 다른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 그리 쏙쏙 낄끼빠빠가 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브런치'는 밥이 아니면서 커피와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가벼운 음식으로 정의해야겠다. 여럿이 모이면,


"뭐 먹을까?"

"한식, 일식, 중식, 분식, 브런치 중에 골라!"


어느새 음식의 한 종류로 분류되는 브런치는 다양한 음식이 섞여있어 각각의 맛이 나는 매력적인 메뉴이다.


각각의 맛이 나는 진수성찬을 요즘 매일 배부르게 먹고 있다. 신기한 건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살을 찌우는데 행복하다. 다이어트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되려 더 살을 찌우고 싶다. 매일 따끈하고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쥔장의 친절함으로 보기 좋게 차려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키워드별로 모아주는 '브런치'는 나에게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다.  



샘블러에는 프렌치토스트, 양념갈비, 샐러드, 리코타 치즈, 구운 채소, 프랑크 소시지, 에그 스크램블 등이 어우러져있다. 브런치에도 각종 키워드마다 각각의 맛을 담은 글들이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관심 있는 키워드의 글을 클릭하면 정성이 가득 담긴 이야기가 독자를 맞이한다. 글을 쓸 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자료를 모으는지, 초고를 작성하고 거푸 퇴고를 하며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기에 맛깔스레 차려진 밥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다.


사람마다 생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듯이 글도 살아온 과정과 환경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기에 비슷한 경험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결로 이야기가 꾸려진다. 그래서 글은 언제나 살아있고, 울림을 준다. 마치 다양한 음식으로 버무려진 샘블러처럼 말이다.


어쩌다 '브런치'


4월 마지막 주 "어쩌다 OOO"으로 주제를 잡았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직전 발행자가 다음 주자를 위해 제시어를 던져주기로 했다. 위트와 재치로 글방의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혜남세아 작가가 내게 [어쩌다 '브런치']를 제시어로 주었다. 어버이날 선물이란다. 건필을 외치며 월요일 오전 8시! 이전에 발행하라고 친절하게 마감시간까지 준다. 사실 혜남세아 작가가 내게 던져준 주제는 내가 피하고픈 1순위 주제였다.  


브런치 세계에는 정말 '어쩌다' 들어왔다. 지인의 소개로 '어쩌다' 접했고, 작가 신청 후 '어쩌다' 덜컥 붙었다. 공개된 글을 쓸 때 혹시 주제의 다양성이 사라질까 가족에게도 지인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야금야금 글을 썼다.


글이란 게 참 신기하다. 글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 꾸준히 쓰기 어렵다. 감추고 속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소재의 고갈로 글쓰기를 방해한다. 그래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글을 쓴다. 신기하게도 매일 글쓰기는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글을 씀으로 더 건강해졌고 자신감이 생겼으며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자존감도 높였다. 감사하게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층도 생겼고, 그로 인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높아졌다.

 


'어쩌다' 들어온 '브런치' 세상은, '나'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친구다.

신변잡기를 좋아하는 내게 딱 맞춤옷 같은 곳이다. 세상만사 갖가지 궁금점이 많은 나는 호기심 천국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궁금하면 배우고, 자료를 찾고, 누군가에게 물어서라도 알아야 한다. 신기하게도 브런치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매거진을 10개만 허용하다가 지금은 30개를 허용해준다. 그것도 내 발걸음에 맞춘 듯이 10개가 부족하다 싶을 때 추가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욕심도 많아서 19개의 매거진을 꾸리며 글을 쓴다. 채워나갈 매거진이 아직도 11개나 남아있다. 너무 행복하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브런치'를 알려준다. 마치 브런치 전도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브런치 알아?"

"브런치? 새로 생긴 맛집이 있어?"

"아니, 다음앱을 열면 기사가 뜨잖아. 카테고리를 보면... (어쩌고 저쩌고)"

"그거 어렵지 않아?"

"안 어려워. 내가 도와줄게."


이쯤 되면 브런치 관리자에게 월급을 받아야 될 듯하다. 내가 브런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지만 나를 제일 모르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잘 모르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잘못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게 된다. 나를 채찍질하면 성장할 것 같지만 실상은 자존감, 자긍심이 낮아지고 열등감을 불러와 나를 낮게 여기도록 이끈다. 글을 씀으로 나를 알아가면 나의 장, 단점과 마주 보게 되고, 나의 성향과 선호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글은 일기장에도 매일 쓸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해 보니 공개된 곳, 독자의 반응이 있는 곳에 글을 쓰는 것과 일기장에 쓰는 것은 사뭇 달랐다. 내가 쓴 글을 타인에게 공감받고, 타인이 쓴 글이 내 마음에 와닿는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선물을 안겨준다. 미숙한 글쓰기지만 꾸준히 쓰다 보면 한 걸음씩 성장하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공감과 격려와 지지로 마음이 자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놀라운 선물이 주어지는 곳, 이곳이 내가 접한 어쩌다 '브런치'이다.


* 송유정 작가님께 드릴 제시어는,

[어쩌다 '아내']입니다. 마감 시간은 수요일 오전 9시 55분입니다.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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