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May 04. 2020

첫사랑 첫남자 첫남편

세상에 별놈 없다.

공유? 정우성? 이병헌? 현빈? 강동원? 원빈?

살아보면 그놈이 다 그놈이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따라서 그저 지금 살고 있는 사람과 별일 없는 한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다. 사실, 약간은 억울하고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나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오로지 한 남자만 알고 살았다. 동네 아줌마들마저 불쌍하게 쳐다볼 정도... 다들 구체적인 진도는 얘기 안 하지만 현재의 남편이 그녀들에게 첫 상대가 아니었음을 은근한 자랑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서 난 루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저 탈출을 위해 다른 사랑을 꿈꿀 정도의 특별한 남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살아보면 별거 없다.


빠른 77년생이었던 내가 스무 살이 된 대학 2학년 때, 남편은 갓 제대한 복학생이자 같은 과 선배였다. 앳되고 선한 얼굴에 마른 몸, 부티가 줄줄 흐르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교양이 넘쳤다. 당시 최고 인기 배우였던 '배용준'을 닮았다는 소문에 그를 흠모하는 여자 후배들도 여럿이었다.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영예의 자리에 올라 3년 반의 연애기간을 거쳐 스물네 살에 결혼을 했다. 그녀들 사이에서 난 위너였다.

요즘 말로는 '썸 탄다'라고 표현하는 은밀한 감정의 교류를 서너 달 체험하고 여름농활 때 부녀회장님의 "잘 어울린다. 둘이 사귀어~"라는 말씀을 신호탄 삼아 연애를 시작했다. 사귀자 하고도 손잡는데 50일, 첫 키스에 100일이 걸렸다. 한 단계 한 단계가 조심스럽고 낯설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남들 하는 연애를 우리도 다를 것 없이, '아니야, 우리의 사랑은 특별해'라고 여기며 차근차근 밟아야 할 단계는 모두 밟아갔다. 당시에는 나만, 우리만 특별하고 소중한, 세상 어디에도 없을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만큼 애틋한 사랑도 없고 우리만큼 특별한 만남도 없다고.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들 싸우는 이유로 남들 싸우는 횟수만큼 싸웠고, 남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에서 남들만큼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이제는 밤마다 헤어지기 싫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이것저것 다 해서 결혼밖에는 할 게 없다.'라고 느꼈을 때, 결혼을 했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함께 머리 맞대고 키우고, 때로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기도 하고 아이의 교육 때문에 싸우기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우리 가족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화목하고 잘난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역시 돌이켜보면 별다를 게 있었나 싶다. 아내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속 끓이고 싸우고 그러다가 단념하던 세월이었고 남편 입장에서 보면,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가는 아내의 바가지를 피해가거나 받아치면서 버텨낸 세월이었을 거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다양한 소재들이 현실에서도 툭툭 튀어나오면서 <부부의 세계>나 <사랑과 전쟁>도 몇 편 찍었고 급기야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나 나올법한 에피소드들도 챙겼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처럼,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들과 엇비슷한 크기의 행복을 갖고 산듯싶다. 가족이 함께 앉아 식사를 하거나 아이들이 재잘거리거나 남편과 손잡고 길을 걷는 순간들에서 행복을 만끽했다. 내게만 닥친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이제와 생각해보면 평범했다. 묵묵히 견뎌냈기에 영원히 불행한 가정은 피할 수 있었다.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더 행복하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까? 지금은 불행한가? 이 질문들에 답을 하다 보면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내가 나인 이상 크게 다른 삶을 기대할 수는 없다. 순간순간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을 뽑아내는 것은 상대의 외모도 재력도 말재주도 아니다.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다. 그렇다면 누구를 만나도 그놈이 그놈일 수밖에 없는 거다.


따라서 난 지금 사는 남편과 끝까지 갈 생각이다. 내 인생의 모든 처음을 선물한 남자와...


(참! 배용준을 닮았다던 20대의 남자는 30대, 40대를 지나가며 점점 윤다훈에서 배기성으로 닮은꼴이 변해갔다. ㅋㅋㅋ )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을 함께 해주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