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떡순, 삼겹살, 치킨. 우리나라에서 음식점을 하려면 이 세종목이 답이라는 남편. 다양한 외식 메뉴가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주 많이 먹는 음식은 저들이고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중 치킨이 정답이란다.
"치킨 브랜드가 그렇게 많은데 또 치킨집? 사람들이 먹을까?"
나의 이런 의문은 내 치킨 습관만 봐도 부질없다. 선호하는 브랜드는 있지만 매번 거기만 주문하는 것은 아니요, 브랜드마다 먹고 싶은 메뉴가 하나씩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치킨은 언제나 옳다.'는 대국민적 믿음이 있는 나라에서 치킨집은 자영업의 꽃임이 분명하다.
10년 전 남편과 나는 호기롭게 치킨집을 시작했다. 대단한 동기?랄것은 없었다. 수입자동차 영업직이었던 남편은 늘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했고, 나는 남편이 주말에도 일하는 게 불만이었다. 좀 더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인 동기는 나의 의부증이었다. 사람 만나는 게 남편의 일인데 그걸 힘들어하는 아내를 두었으니 남편도 죽을 맛이었다. 결국 아내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4시간 아내와 붙어있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내발등을 찍었다 싶다. 남편을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마주하는 일이 밖에 나간 남편을 걱정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인 것을 일찍 알았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길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치킨이었을까? 하고많은 메뉴 중에?
일반적으로 퇴직자들이 치킨집을 여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전문적인 기술 없이도 조리할 수 있기 때문. 배달하는 영세한 치킨집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때마침 뜨고 있던 카페형 치킨 브랜드를 지인이 하고 있었고, 왠지 뽀대 나는 치킨집 사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치킨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치킨을 얼마나 먹었던지 "그러다가 닭대가리에 닭살 돋은 아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남편의 우려까지 들었을 정도. 특히 그 브랜드의 치킨 메뉴가 맘에 들었다. 담백한 전기구이, 기본에 충실한 후라이드, KFC 할아버지도 감탄할 크리스피... 덕분에 치킨집 3년 동안 거의 매일 치킨을 원 없이 먹었다.
치밀한 준비 없이 시작해서였을까? 악착같은 마음가짐이 없어서였을까?
3년간의 치킨장사는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가게를 오가는 길에는 늘 눈물바람이었다. 계산이나 하는 뽀대나는 카페형 치킨집 사장이라도 인력난에 허덕이면 치킨을 튀겨야 했다. 양 팔뚝은 기름이 튀어 수포로 뒤덮였고 손가락마다 지독한 습진에 시달렸다. 하루 종일 붙어있는 남편과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기도 했다. 매주 로또를 사는 습관이 이때 생겼다. '로또만 돼봐라. 딱 반 갈라서 나눠갖고 이혼해야지.'라고 굳은 결심을 다지곤 했다.
하루빨리 가게를 처분하는 그날만을 기약하는 사장. 유독 우리 집 치킨 맛이 좋았고 단골도 많았으며 장사도 잘되는 가게였지만, 장사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참 불행한 사장이었다. 그렇게 3년 만에 가게를 적당한 가격에 넘기고 나서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유일하게 서운한 것은 맛있는 치킨을 자주 먹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매일 영업이 끝나고 남편과 새벽 2시에 먹던 치킨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오로지 그것만 아쉬웠다.
어린이 날이었던 어제... 이제는 더 이상 어린이날을 챙기지 않는 아들들의 10년 전 어린이 날이 생각나 잠시 센티해졌다. 남들 쉬는 날 쉬지 못하는 일이 자영업이다. 10년 전 어린이날도 특별한 이벤트를 선물하지 못한 채 함께 가게에 나와 문을 열었었다. 8살, 11살이었던 아이들은 포장용 소스통에 소스를 채우고 마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가게밖에 놓인 벤치에 앉아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면 교대할 엄마의 퇴근시간을 함께 기다렸다. 그게 그렇게 마음 아프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챙겨줄 어린이가 없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서 가장 배운 것이 많은 시기로 기억되기도 한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며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부부란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깨지는 관계라는 것.
힘든 부모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내적으로 성장한다는 것.
다시는 남편과 같은 일터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치킨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요즘 자연스레 남편과 후일을 도모하곤 한다.
"3년 후에 치킨집 하면 잘할 것 같은데 그치? 작은 아이까지 고등학교 졸업하면 챙겨줄 애들도 없으니 온전히 장사에만 집중할 수 있고, 40이 넘으니 웬만한 손님은 다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아. 가게 경영 노하우도 잘 알 것 같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떠오르고."라고 맘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고는 얼른 다시 뱉은 말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당신하고 같이 뭘 하겠다는 건 아니야! 난 엄연히 디베이트 코치라고!"
사실은, 이제는 남편과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