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내겐 어딜 가더라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두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블로그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영이(가명)이고 다른 한 친구는 기타 카페에서 알게 된 기타 강사 겸 가수인 수야(가명)이다. 비록 온라인을 통해 맺은 습자지처럼 얄팍한 우정이긴 해도 같은 나이에 서로 통하는 점도 많아서 꽤 친하게 지냈던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두 친구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영이는 경남 사천에서 유치원 교사로 근무했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연이어 아들을 낳아 길렀기에 인생에 있어서 나보다는 몇 걸음 앞선 선배 같은 존재였다. 아들의 독립과 함께 찾아온 여유 시간 활용을 위해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영이는 내가 올린 사진들이 맘에 든다며 내 블로그에 인사를 남긴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지역에서 나름 알려진 사진 블로거였던 나는 온오프를 통해 그녀에게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가르쳐 주기도 했으나 때마침 찾아온 블로그의 쇠락과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이후 영이를 다시 만난 곳은 우연히 열어 본 인스타그램의 사진 한 장에서였다. 어딘가 눈에 익은 아이디와 사진 속 얼굴은 분명 오래전 기억 속 그녀였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카메라 작동법을 몰라 그저 셔터 누르기에 급급하던 초보자 영이는 그 사이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되어 있었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13,000명이 넘는 팔로워를 둔, 흔히 말하는 '인싸'가 된 영이의 모습을 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틈나는 대로 그 공간을 드나들며 그동안 올린 사진들을 시간순으로 하나하나 역추적을 해보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발전하는 사진 실력과 그에 따른 좋아요와 댓글 숫자의 증가, 지난 10여 년간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영이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사진가 활동과 병행하여 몇 년 전부터는 지역 홍보 서포터스로 활동을 했고 작년 연말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천시장으로부터 표창장과 함께 감사패까지 받았다고 한다. 멈출 줄 모르는 그 친구의 열정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원동력이 된 것이 분명했다.
전업주부였던 수야는 온라인 기타 카페에서 알게 된 친구이다. 지금도 나는 수야가 카페에 가입했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도저히 악기라고 봐줄 수 없는 장난감 같은 인테리어용 분홍색 기타를 본인의 기타라고 소개하는 사진을 올렸을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유령회원이 되거나 탈퇴를 하리라 예상했었다.
그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명분 아래 십수 년간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수야는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을 했고 주어진 과제도 항상 1등으로 제출하곤 했다. 그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뒤늦게 취업을 한 회사에서 기타 동아리를 결성하고 강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활동을 바탕 삼아 현재는 자그마한 기타 교습소를 오픈하기까지 이르렀다.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를 때 가장 행복하다는 수야는 지금도 주말이면 수성못이나 김광석 거리에 기타와 앰프를 들고나가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지역의 통기타 모임 정기 공연에도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 코드가 뭔지, 어떤 주법으로 쳐야 할지 전혀 모르던 친구가 불과 10년 만에 현재 수준까지 이를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적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역대급 반전을 보여준 수야는 이제 활동 영역을 유튜브까지 넓혀 라이브 공연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녀의 무한질주가 언제, 어느 영역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될 정도다.
두 사람을 보며 처음 만났던 순간을 되돌아보았다. 분명 시작점에서는 내가 그녀들보다 월등한 수준이었다. 이후 나는 스스로 만족하고 내려놓거나 중도에 포기를 했다. 부끄러운 핑계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생활신조를 안분지족으로 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늘 일정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멈추고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곤 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건드리는 모습이 어떤 이에겐 다재다능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조금만 관심 깊게 지켜보는 이에겐 얼마 가지 않아 밑천이 드러났다.
나는 쉬지 말아야 할 때 쉬었고 멈추지 말아야 할 때 멈췄으나 두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그 두 사람과 나의 차이였고 결국 그들은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룬 반면 나는 항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끈기와 성실함을 가진 그들이 한편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들은 나를 넘어 이제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두 친구에게 지금의 그 위치까지 올 것을 알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두 친구의 대답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크고 거창한 목표를 두지 않았다는 점, 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 실수나 실패가 있어도 크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는 점이 그것이다.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달리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결과와는 달리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라는 위치에서 때로는 가족들의 시선이 부담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힌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넘어서며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필요 이상으로 바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남들이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따라 하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실망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분들도 많이 본다. 나처럼 뭐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멈추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멀리 있어 언제 내 곁에 올지 알 수 없는 결과만 바라보지 말고 매 순간 꾸준하게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대 이상의 선물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
어쩌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까지 왔다는 두 사람은 내게 더 늦기 전에 관심 있는 분야나 하고 싶은 것들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나갈 것을 조언했다.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날이 있을 거라는 덕담도 건넸다. 그녀들은 기회란 항상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나는 그 두 친구가 자랑스럽다.
두 사람은 나를 넘어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도달했다.
내겐 '어쩌다 전문인'이 된 두 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