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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Nov 16. 2022

귀족의 밥, 평민의 국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각을 하고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당당히 들어온다는 것은 아내가 점심상을 제대로 차려놓고 왔음을 뜻한다.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면 그런 미묘한 변화까지 잡아내느냐 반문하시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아니다. 아내가 지각하는 경우는 늦잠 자서 제 때 일어나지 못했을 때와 가뭄에 콩 나듯 점심상을 미리 차려놓고 나오는 단 두 가지 경우밖에 없음을 알기에 가능한 일일 뿐이다.


늦잠을 잤을 때는 뭔가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에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들어오는 반면 비교적 생생한 얼굴로 나타났으니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온 게 100%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싸놓고 나왔다고 했다. 김밥이라고 해봤자 속재료를 거의 넣지 않은 무늬만 김밥일 뿐이지만 출근 준비하기도 바쁜 시간에 그렇게라도 차려놓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시간이 없어 미처 국을 끓여놓지 못하고 나와서 미안하다며 즉석국이라도 가져가라는 아내에게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말하고 가게를 나섰다. 늦은 가을비가 내린 후 부쩍 추워진 날씨 탓인지 오가는 사람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도 한산한 거리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식탁 위 작은 접시에 담긴 김밥이 나를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다.


서둘러 주방으로 향해 무슨 국을 끓여놓을까 고민하던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싱크대 선반 위에 굴러다니는 라면 스프였다. 얼마 전 먹은 부대찌개나 떡볶이에 라면사리로 쓰이기 위해 면이 차출된 이후 용도를 찾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방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 내가 아니고서야 이 집에서 너를 거둘 사람이 누가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물을 끓이고 스프를 넣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 라면 국물 특유의 향이 내 귀와 코를 어지럽히자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저녁상에 올릴 국을 끓여 놓겠다는 최초의 다짐은 사라지고 머릿속 시계는 어느새 1984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로 거슬러 올라가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초중고 내리 12년을 다니는 동안 보온 도시락이란 것을 써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써보긴 했는데 흔히 진공 보온 도시락으로 대표되는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양질의 제품을 쓰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겠다. 비주얼은 분명 보온 도시락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점심시간에 열어 보면 온기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실온 또는 보냉 도시락에 가까운 제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가난 때문이었다.


가정 형편상 비싼 제품을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양철 도시락에 밥을 담아 보낼 수는 없으니 어머니께선 궁여지책으로 시장에서 싸구려 제품을 사는 선택을 하셨다. 그마저도 위에 형님 두 분은 구경도 못해본 것이었고 집이 어렵다는 걸 뻔히 알기에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몇 마디 말로 보온 기능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거나 꾸역꾸역 참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진 게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능면에서 볼 때 이미 불량품에 가까웠던 보온 도시락의 잠금장치가 자주 사용하면서 점점 헐거워지다가 그날 등굣길에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풀리자 길바닥 여기저기에 반찬통과 수저, 밥그릇이 따로 굴러다녔고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걸 주우러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싸구려 제품을 산 어머니 탓이란 생각에 그날 오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간 쌓였던 분노와 불만을 모조리 쏟아내는 한편 다시 그런 거 살 생각이면 차라리 양철 도시락에 담는 게 낫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 말씀 없이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도시락을 들고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씻으셨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선 가방에 도시락을 넣으시며 내 손에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어 주셨다. 라면 한 그릇에 250원, 국물만 했을 땐 100원이란 내 말을 기억하신 어머니께선 불편하겠지만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라면 국물과 함께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덧붙여 내년 겨울엔 좋은 보온 도시락을 사줄 테니 1년만 참으라는 말씀도 하셨다.


못 이기는 척 100원을 쥐고 학교에 갔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를 잘 알기에 나 하나 편하자고 라면 국물 하나 사는 데 차마 그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결국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방학할 때까지 어머니께서 주신 돈을 쓰지 않고 모아서 새 학기가 시작하는 이듬해 봄에 학용품을 사는 데 보태고 말았다.



그 당시 식당에서 팔던 국물을 재연하기 위해 다른 재료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팔팔 끓는 라면 국물을 그릇에 옮겨 담고 아내가 싸준 김밥을 먹으려는데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놀고 있는 라면 스프가 있길래 국물 삼아 먹고 있다는 내 말에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불현듯 신혼 시절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빠는 주면 주는 대로 아무 말 않고 먹어줘서 그게 너무 좋아. 우리 형부 같았으면 난리가 나도 몇 번은 났을 텐데."


그때 내가 그렇게 답을 했었다.

"워낙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서 그래.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거고, 없으면 그에 맞게 없이 살면 되는 거지. 반찬 투정? 우리 집에서 그런 거 하면 엄니한테 맞아 죽었어."


그나저나 싸구려 보온 도시락을 집어던진 그날 내 어머니께선 왜 그리 고분고분 내 말을 듣기만 하셨을까? 평소 같았으면 몽둥이찜질을 당해도 열댓 번은 더 당했을 만큼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참 의문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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