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an 03. 2021

부부의 스킨십은 필수인가...

백한 번째 시시콜콜


* 이번 시시콜콜 주제는 19금입니다. 부부관계와 부부의 스킨십에 관심 있으신 분들 외에, 야시시한 이야기에 알레르기가 있으시거나 불편하신 분은 읽지 말아 주세요. 또는 수위가 낮아 실망스러우실 것 같은 분도 읽지 말아 주세요.


"하지 말라고!"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대화 중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다. 내 입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튀어나오는 이 말은 남편의 스킨십에서 비롯됐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부부간의 스킨십에 왜 그리 몸서리치느냐고. 복에 겨워 그런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토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질에 관한 문제다.


< 아내 측 >

두산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스킨십'이란 '피부와 피부의 접촉에 의한 감정의 교류'를 말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몸의 비비적거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샘솟아야 한다는 말이리라. 접촉이 먼저인지 사랑의 감정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스킨십이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해 준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적당함을 넘어서면 독이 되기 마련. 이제는 독이 되어버린 남편의 스킨십에 대해 반대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남편의 스킨십은 일방적이다.

'교류'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킨십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이 기본이다. 상호 간에 '통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남편의 그것은 맥락도 없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다. 시간과 장소는 가리지 않겠는가 반문하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시간과 장소 불문이다. 특히 아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설거지를 하든 책을 읽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즉, 상대가 스킨십을 원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은 일절 없다. 오히려 자기만족에 가깝다.

둘째, 남편의 스킨십에서는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의 스킨십에서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저 손이 심심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습관적이고 병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라 특정 부위만을 집중 공략해 통증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가끔 고민한다. 반려견을 입양할까? 반려견을 입양한다면 남편의 스킨십이 아내에 대한 애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손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될 것이다.

셋째, 스킨십이 없어도 충분하다.

남편은 스킨십만이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준다고 하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원하는 명품백을 시원스럽게 사주지 못한다거나 생활비를 양껏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스킨십 하나로 상쇄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아내들이 원하는 것은 명품백이나 넘치는 생활비가 아니요 과도한 스킨십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눈빛 , 세심하게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게다가 남편은 이미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며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인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말했다.

"남편은 격렬한 형태의 에로티시즘을 바라고 있지만 아내는 단순히 손을 잡는다거나 입맞춤을 기다린다. 권태기의 여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애정 어린 사이인 부부. 그럴수록 상대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함을 강조하며 아내 측 주장을 마무리한다.


< 남편 측 >

누구나 꿈꾸는 부부의 아침 풍경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고 기분 좋은 바람이 커튼을 흔들 때 잠에서 깬 아내를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는 남편의 모습이 그것이다. 잠에서 깬 아내가 산발된 머리와 눈곱으로 부스스할지라도, "잘 잤어?"라고 말할 때 지독한 입냄새가 나더라도 말이다. 전날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더라도 스킨십 하나로 관계를 덮고 있던 살얼음이 녹기 마련이다. 이렇게 스킨십은 부부관계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년 넘게 스킨십을 나눈 아내의 스킨십 거부가 온당치 못한 것임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주장하고자 한다.


첫째, 스킨십은 효과적인 애정표현 수단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줄 알지만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못할 때 남편이 느끼는 박탈감은 크다. 그때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은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등의 비언어적 소통수단을 햅틱 행동이라고 일컫는다. 다양한 실험을 근거로 햅틱 행동 같은 비언어적 수단이 친밀도를 높이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아내를 만족시키는 다양한 장치들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가 좋은 것이 스킨십인 것이다.

둘째, 아내도 좋아했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스킨십을 좋아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한동안 뜸해지기는 했지만 이후로는 반복되는 남편의 스킨십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싫었다면 벌써 각방을 쓰지 않았겠는가. 싫다고 하면서도 남편과 한 이불을 덮는다는 것, 거부의사를 밝히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 등이 그 근거다. 게다가 한동안 스킨십에 소홀하면 어색해하는 것도 아내다. 오히려 아내가 남편의 스킨십을 좋아한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셋째, 이미 습관이 돼버렸다.

다소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해온 행동이라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버렸다.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심심하며 급기야 우울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남편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아내의 무조건적인 거부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민법 826조에서는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며 부부간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상대방이 가진 어려움을 좌시하지 말고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스킨십의 부재로 남편의 정서에 심각한 불안이 초래된다면 일정 부분 협조해야 한다.


심리학자인 사이토 이사무는 "스킨십은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라고 했다.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중 스킨십만 한 것이 없음을 주장한다.



귀찮고 성가신 게 분명한데, 또 이게 관성이 되어서 남편이 며칠 토라져 손절하면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스킨십 싫어하는 아내가 어디 있냐며 지인들에게 물어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건 싫은 거라는 아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수년째다. 이런 뻔한 대화를 듣는 아들들은 그저 씩 웃으며 남일이라는 듯 지나가버린다. 간혹, 부모의 이런 관계가 아이들의 부부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우려되기도 한다. 싫다는 아내의 의사표현이 앙탈을 부리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하게 되는 등등의...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부부간의 스킨십은 필수다.>


* 혹시, 부부 관계가 너~ 무 좋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셨나요? 여느 부부처럼 살고 있답니다. ㅎㅎ

때로는 열렬하게, 때로는 치열하게요~


* 대안 마련이 시급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지침처럼 9시 이후만 허용한다던가 안방에서는 되지만 부엌에서는 안된다는 식의 지침이라도 마련해야할까봐요...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콜콜 디베이트 유랑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