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May 21. 2022

수요 가족회를 소개합니다

정기적으로 방송했던 수요 미식회나 일요 음악회는 누구나 잘 아는 프로그램이다. 같은 요일 동일한 시간에 주제와 콘셉트를 바꾸며 꾸준히 진행하면서 유명해졌다. 티브이 프로그램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도 매주 수요일 저녁에 수요 가족회를 한다.


가족모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각자 한 주 동안 살아낸 무용담과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조금씩 다른 환경에서 살다 보니까 시답잖은 주제라도 깊고 다양한 생각이 오고 간다. 가족이지만 맺고 끊는 것도 확실하다. 시간을 정해놓고 불필요한 시간은 최소화한다. 의미 없는 회의는 두의 시간을 좀 먹는다라고 주창하는 첫째는 모든 게 확실한 사람이다.


최근 일 년 동안 우리 가족은 만난 적도 거의 없다. 그나마 멋쟁이 둘째는 가까운데 살다 보니까 최근 육 개월 동안 두 번 정도 데, 다른 가족들은 전혀 만날 수 없었다. 본인들끼리도 거의 못 봤는데, 최근 첫째하고 둘째는 둘이서 만나 함께 글씨를 썼다며 단톡방에 자랑한 기억이 있다. 평균 가족 수 보다 조금 많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가족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서 가끔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가족일 뿐이다.


하지만, 특별한 게  한 가지 있다. 모두 같은 취미를 가졌다. 작년부터 내가 글을 쓰면서 가족들과 조금씩 소통하게 되었고 이제는 각자 쓴 글을 읽고 응원까지 한다. 글 수준이야 전혀 비교할 순 없지만 장 보러 나가는 가족뒤꿈치 보면서 따라갈 정도는 된다.


지난주 가족 모임에서는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생각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의견까지 주고받았다. 어차피 가족이란 주제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글감을 얻기 위해서 회의 때 의도적으로 질문했는데,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가족에 대해서 이행시를 지어보자고 했다. 둘째가 조금 늦게 합류해서 첫째와 셋째가 먼저 대답했는데, 첫째는 '가고 싶다 족발집'이라며 야식을 부르는 주문을 외웠다. 모두를 배고프게 만들었고 야식이 절실한 시간적절한 고통을 선물했다. 복수를 위해서 '가진돈이 없어요. 족발 사드릴 돈밖에'라고 하니까 막내를 아끼는 마음에 흡족해한다.


둘이 주고받는 게 눈꼴사나운지 똑 부러지는 셋째가 '가만히 기다립니다.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야겠네요'라며 우리 티키타카가 지루하다비아냥댄다. 센스는 있지만 여전히 재미는 없다. 다들 글은 재미있는데, 앞으로 이행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허겁지겁 들어온 둘째에게 이행시를 던졌더니 '가자 가자 놀러 가자, 족보도 없고 지도도 없는 곳으로'라는 괴상망측한 말을 하면서 혼자 웃는다. 다짐한다. 다시는 가족과 이행시를 짓지 않겠다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쓰면서 가족같이 느껴지는 사람 한 명만 대답하라고 물었다. 한참 고민하더니 강신옥, 삶의 촉수라고 답변한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답변해서 조금 놀랐다. 오히려 역으로 질문이 들어와서 당황하며 가족은 좋으니까라고 얼버무렸다. 눈치 빠른 둘째는 자기도 좋으니 좋다며 글감 찾는 것 같다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놓고 묻기 시작했다. 지금 가족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질문했지만, 질문은 관심도 없고 무인도가 어떻다거나 심리테스트 만드는 것 같다며 자기들 이야기만 한다. 결국 글쓰기 영감은 하나도 얻지 못하고 실컷 수다만 떨었다. 목적 없이 즐겁게 수다 떨다 보니까 한 시간을 넘긴지도 몰랐다. 카리스마 첫째가 시간 지났다는 사인을 보내고 아쉽게 마무리한다. 평소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가족회의 모습이었다.


결혼식 때도 못 갔매형조차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지금까지 첫째 누나와 셋째 누나는 본 적도 없다. 독특한 가족 관계이지만 매주 수요일 꾸준하게 가족회의를 하는데, 항상 시끌벅적하고 화목하다. 다음 주부터는 잠시 안식을 보내는 큰 형님 대신해서 둘째 형이 바쁜 편의점 일을 마치고 수시로 참석하기로 했다.


가족, 소중하고귀한 단어라서 함부로 범위를 설정할 수 없지만 동네 전신주에 붙어있는 구인광고에도 쉽게 쓰는 문구이다. 둘째 형과 서열 정리를 못해서 둘째인지 셋째인지 헷갈리는 장훈 형님께서 굴레와 울타리에서처럼 가족같이 일할 분이라는 문구가 진정으로 어울리는 공간, 그곳은 아마도 보글보글이지 않을까?




함께 가족같이 글 쓸 분을 모십니다.

우리는 보글보글 가족입니다.




이번 주(5.16~21): '가족',

다음 주(5.23~28):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 이전 글 : 둘째가 어제 늦게 올린 글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