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경 May 20. 2022

'세계 기억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방법

개인의 기록을 남겨 전달하는 일


싸이월드가 드디어  사진첩을 열어주었습니다. 부러진 과거 신경회로가 갑자기 연결되었습니다. 필요하면 어딘가 원본이 있을  같은 사진들이라 복구되지 못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완전히 기억 속에 사라졌던 사진들과 연결된 글을  그날은 아무것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 속에 잠시 잊었던 과거의 모습과 여전해 보이는 나의 시선,  아래 조악한 낙서 같은 메모를 읽는 것으로 하루종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준비도 없이 떠난 과거 시간 여행은 현재 시간을 순식간에 잡아먹어버리고 말았지요.


2002년 사진들도 있었으니 거의 20년이 된 기록을 한순간에 접했습니다. 마치 20년 전의 내가 옆에 앉아 인별등의 sns에 새로운 글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분명 직접 썼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글인데도 불구하고 저와 분리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월의 시간차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글들이 20년 차이가 난다니, 영원히 바래지 않는 공간에 쓴 글과 사진이 갑자기 이상해 보였습니다. 오래된 사진첩 속 사진은 시간이 가면 누레지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온라인에 박제된 과거는 글도 사진도 요즘 디자인의 옷을 갈아입고 있어 신기하리만치 새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건 현재에서 과거 글을 읽고 있는 저 뿐이었습니다.


나이 들기 전에는 10년이면 정말 강산이 변하는 줄 알았습니다. 20년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길어 보였습니다. 먼 미래는 상상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20년 후의 내가 과거의 나를 친구처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이상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저게 나였던가' 내가 나를 못 믿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습니다. 깊어 보이는 고민에 나는 여기 너무 잘 와있다고 그저 신나게 계속 그렇게 살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 순간 내 말이 다른 차원에 있는 나의 과거에 정말 가닿아 주길 바라며 말했습니다. 영화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상상을 저는 온라인에서 복구된 사진과 글을 통해 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과거의 엄마도 만났습니다.


'집필하는 박여사' 2006



여러 가지로 분류된 폴더 속 사진을 뒤적거리는데 생기 발랄한 엄마의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습니다. 친한 언니, 회사 선배들만큼 어렸던 때였다는 것을 계산하고 또 놀랐습니다. 사진 찍을 당시 기억에 저는 엄마가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느꼈는데 말입니다. 아니었어요. 엄마는 젊었습니다. 아주 젊었네요.


엄마는 당신 글씨체가 안 이쁘다고 늘 이면지에 예쁜 글씨를 연습하곤 하셨습니다. 캘리그래피를 좋아하는 저와 이상하게도 닮아있습니다. 게다가 사진에 ‘집필하는 박 여사’라고 제목을 붙여두고 에세이를 쓰고 있는 엄마라고 써 둔 부분은 '오오~' 하며 전율이 일었습니다. 왠지 엄마에게 저와 엄마의 미래 모습을 그려둔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한 언니같이 느껴지는 엄마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주름이 조금은 더 많아진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그래도 제가 할 일이 어렴풋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동안의 여행 추억을 드문드문 남겨두어 지금 회상할 수 있듯이, 특별히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소소한 엄마와의 시간을 여행 기록처럼 정리해 남겨두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부탁드렸습니다. 엄마의 생각과 삶을 글로 남겨달라고, 저를 위해서라도 엄마의 이야기들을 써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드렸습니다.


갑자기 나이 드신 엄마에게 웬 무리한 부탁이냐고요? 저는 어릴 적 엄마가 회사에 가고 없을 때 엄마를 기다리며 장롱 아래 서랍 속 구석에 보자기로 싸여있던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꺼내보며 자랐습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한글을 또래보다 일찍 깨친 이유는 엄마의 일기가 읽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벗어 놓은 옷자락을 한 손에 안아 코에 갖다 대고, 엄마의 향기에 파묻혀서 내용의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일기장을 꺼내 읽었습니다. 읽고 울다 몰래 조용히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혼을 냈을 때도, 놀아줄 사람이 없을 때도 꺼내보면 위안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없을 때도 엄마의 글로 저는 엄마와 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현실의 고민에 빠져있던 페이지도 보았지만, 사랑을 쏟아내던 글을 읽고 또 읽었던 것 같습니다. 계속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엄마였지만 자식에 다한 사랑은 진실했기에 저는 셀프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고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알아서 채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기 때부터 글로 알고 자랐습니다. 글은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글이란 것을 저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의 글로 배웠으니까요. 인생의 고난도 상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도 엄마의 글에 담긴 사랑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의 정신적인 집이 되어주었던 엄마의 일기를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육아에 힘들었던 즈음, 엄마의 일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엄마는 어느 날, 일기 속 기록되어 있던 힘든 세월 속의 자신을 돌아보다 더 이상 아픈 과거를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후 다 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손때 묻은 엄마의 역사책들이 다 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제 과거의 조각을 잃어버린 듯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상처와 고민들이 지금의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삶의 피로와 고통이 담겼을 테지만 분명 지혜로 변해 읽혔을 소중한 책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고민하던 내가 나와 비슷한 상황의 엄마의 글을 읽는 순간, 기분은 어떨까요? 나와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글로 연결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엄마의 시간을 기록해 달라 부탁드렸지만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다 저는 제 과거의 기록을 떠올렸습니다. 저에게도 딸이 있기 때문이지요. 4학년 때부터는 제가 기록했던 일기장들이 남겨져있기에 4학년인 딸과 엄마의 4학년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가장 값진 학교숙제로 남은 일기, 솔직한 11살의 기록


딸이 제 일기장을 신나게 보고 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쓴 글을 읽듯이 재미있게 읽으며 맞춤법을 지적하고 유치한 표현들을 마음껏 놀리고 있었습니다. 일기장 속에서 엄마는 또래 친구가 되어있었습니다. 딸은 어떤 마음으로 엄마의 일기장을 읽고 있었을까요? 아마 어른이 쓴 고민 가득한 일기가 아니라 11살 순수한 자신과 똑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친근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 일기장을 4학년이 되는 딸아이에게 보여주는 날이 오게 될 것을요. 어린 나와 동갑내기 딸이 만나 글로 연결되는 시간은 너무 기뻤습니다. 어린 나를 내 딸이 이해해 주고 공감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만남을 위해 37년간 기다린 일기장, 그리고 그 이후 중, 고등학생 시절까지 계속되는 저의 일기들이 줄 서있습니다. 또 작년에 출간된 저의 책과 지금 이 순간에 남기는 글들은 아마 딸이 다 읽지 못하더라도 삶의 어느 순간에 엄마와 연결하고 싶을 때 끈이 되어줄 소중한 기록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으로 자신을 깨닫고 내면으로 이어진 끈이 가족으로 이어집니다. 또 외부로 나온 글을 통해 옆으로 위로 아래로 연결의 끈과 이해의 끈이 이어져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고대 인도 신화 속에 나오는 그물에 달린 채 서로를 비추는 구슬인 '인드라망'처럼 나와 가족과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역사를 쓰고 계시나요? 하찮게 여겨지는 자신의 역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개인의 기록은 모여 세계의 기록이 됩니다. 평론가 타치바나 타카시는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세계 기억 네트워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인류는 동시대를 구성하는 많은 기억 네트워크로 존재하는데, 한 인간이 죽음으로 그가 가진 뇌 속의 기억이 사라지지만, 그 하나의 소멸이 생길 때마다 세계 기억 네트워크의 콘텐츠가 변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는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자신을 위해서라고 했지요. 그리고 가족이나 자손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거창하게 '자기 역사'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알아볼 수 있는 글 몇 줄이 모이면 가족의 기억이 연결되어 만드는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의미 있는 이야기들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역사를 쓰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관계를 알고 세상 속에서의 성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라고 말하며 고대 에블라 문명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기록들을 잃은 것에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은 탄식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근원을 수많은 별과 행성을 통해 헤아려보지만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마음속 희망과 절망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은 얼마나 헤아려 보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든 삶 속에 잠시라도 꽃피웠던 행복과 사랑도 슬픔 속에서 깨달았던 작은 지혜도 소중히 기록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또 남겨둔 글로 마음을 서로에게 전하는 시간이 거창한 지식의 탐구보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르지만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 엄마와 딸. 소소한 글로 조금씩 만들어 둘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의 역사 타임머신이 됩니다. 우리 가족이 언제나 탈 수 있는 타임머신을 오늘도 하나 남겨둡니다. 의도치 않게 사라져 버려 복구를 위해 애태우는 일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백업도 필수입니다.

그러면 세계의 기억 네트워크에 연결된 여러분의 타임머신을 만나는 날, 반갑게 인사하겠습니다.

미리 안녕히 계시길..




보글보글 글놀이
5월 3주
가정의 달 특집
"가족"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 <어마마마, 정녕 아들을 버리시나이까>

*매거진의 이전 글, 해룬 작가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의 <이번 생에 전역하기는 글렀지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가족. 굴레인가 울타리인가 아니면...>

*매거진의 이전 글, 청산 작가님의 <엄마가 우는 건 괜찮았는데>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부부는 선택이지만, 자식은 신의 선물이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생에 전역하기는 글렀지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