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웬 May 19. 2022

어마마마, 정녕 아들을 버리시나이까

아내는 점점 '가족'이 되고 있으나 나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토요일이었다. 지난달 하순, 아버지 생신을 맞아 본가에 가려했으나 하필 그 무렵 일하는 근무자들이 돌아가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찾아뵙지 못했던 것을 그날에야 겨우 시간을 내서 다녀올 수 있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간간히 짬을 내 다녀오긴 했으나 잠시 얼굴만 보고 내려올 뿐, 집합 금지와 인원수 제한에 묶여 식사 대접 한 번 제대로 못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터에 제한이 완화된 후 외식 한 번 하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5월의 첫째 날이었다.     


그날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적해 있는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첫 번째 과제는 변변치 못한 밥벌이를 하는 막내아들이 돈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특히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외식을 거부하시는 아버지가 문제였다. 어떻게든 아버지께서 만족하실 수 있게 메뉴 선정에서부터 이동 거리, 쾌적한 식사 환경 등등을 모두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했다.


두 번째는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와의 동행에 상당히 비협조적인 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이후 외식이나 외출보다는 바닥 일체형 몸이 되어 늦잠과 폰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딸을 어떻게든 움직이도록 하는 게 지상 최대의 숙제였다.


마지막 세 번째 과제는 도대체 어떤 메뉴를 선정할 것인가였다. 머리통을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각기 입맛이 다른 우리 가족 세명에 더더욱 입맛이 다른 부모님까지 포함이니 메뉴 선정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버이날을 맞아 모시는 자리이니 부모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되면 분명 딸아이 입이 툭 튀어나올 것이고 그렇다고 아이 입에 맞추자니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자리만 지킬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렇지만 '나 아르웬, 절대 포기를 모르는 남자' 아니던가. 선택의 폭이 광범위할 때엔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떠올렸다. 닭은 어머니와 내가 못 먹으니 빼고, 회는 아내와 딸 때문에 삭제, 여기는 기본 반찬이 부실해서 제외, 저기는 이동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패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나마 가족 모두 크게 이의가 없을 듯한 생선구이 집, 게다가 사이드 메뉴에는 두부구이와 해물 부추전, 그리고 딸아이가 환장하는 제육볶음이 있으니 조합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미미쌈밥 홈페이지 사진 캡처  우리 가족이 먹었던 특 생선구이 정식(좌)과 제육쌈밥 정식(우)


그날부터 가상의 밥상을 두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이들에겐 밥 한 끼 먹는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준비하는 내겐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외식만 하면 "나는 너거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더라."라고 찬물을 끼얹는 아버지와 "비싸기만 했지 먹을 거 없더라."는 말이 입에 붙은 아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대놓고 단식 투쟁에 들어가는 딸까지 포함해서 3인의 입맛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고 있는 나였기에 어떻게든 평균 이상의 호평을 얻어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합이 생선구이 정식 3인분과 쌈밥 정식 2인분, 그리고 기본 반찬이 예상보다 밑도는 경우를 대비한 두부구이 하나였다. 다행스럽게도 생선구이 정식에는 부모님과 아내가 좋아하는 시래깃국이 나왔고 쌈밥 정식에는 딸아이가 잘 먹는 된장찌개가 기본으로 제공된다고 하니 최소한 혹평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드디어 D-데이, 주도면밀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평생 새벽에 출근하신 게 몸에 밴 아버지께선 늘 정오가 되기 전에 무조건 점심식사를 하시는 분이다. 11시 20분 본가에 도착함과 동시에 식당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고 미리 상차림을 부탁했다. 내비게이션상 도착 예정 시각은 11시 35분, 가는 도중에 생길 교통 흐름의 변수를 고려해 11시 45분쯤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고 정확히 11시 41분에 도착했다. 군사작전을 펼친다 하더라도 이보다 완벽할 순 없을 정도로 치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집밥 마니아이신 아버지께서도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이제 경치 좋은 카페에서 차나 한 잔 하고 돌아오는 화룡점정만이 남았을 뿐,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흐름을 깬 것은 역시 아버지셨다. 표면적으로는 아들이 돈 쓰는 게 싫다는 것이었지만 집에 가서 TV를 보고 싶어 하시는 게 분명했다. 눈알이 빠지게 검색을 했던 앞산순환로 인근의 수많은 카페 목록들이 일시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미션 수행은 거기까지였다.


완벽한 마무리를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방해(?)를 예상하고 미리 챙겨 온 파우치형 커피를 한 잔씩 타서 부모님께 드렸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께선 커피도 내팽개치시고 분주히 움직이셨다. 잊어버리기 전에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시려는 게 분명했다. 고춧가루, 김치, 참기름 등등 갈 때마다 챙겨주시는 것들 외에 그날은 아내에게 현금이 든 봉투까지 들이미셨다.  


한사코 거절하는 (듯한 연기를 펼치는) 아내 앞에 슬쩍 끼어들었다.

"저한테 주실 건 없나요? 안 받겠다는 사람 말고 차라리 그걸 저한테 주시지요."

"시끄럽다. 저리 안 가나?"

예상은 했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대답에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뒷전이고 며느리만 챙기는 어머니를 보며 묘한 질투심이 발동했지만 그 돈의 의미를 잘 알기에 애써 담담한 척했다. 거기에는 귀한 손녀를 잘 키워준 대견함, 부족한 아들과 별 탈 없이 살아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며느리에 대한 애잔함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햇수로 20년,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내는 법적인 가족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가족으로 우리 집안에 녹아들었다. 흔한 고부갈등 한 번 없이 살기까지 어머니도, 아내도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들이 있었음을 잘 안다. 중간에 끼어 티 나지 않게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 나도 2등 공신쯤은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혈연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가족이지만 이렇듯 노력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내 죽고 나믄 쟈(저 아이) 편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노. 쟈가 찾아갈 친정이 있길 하나 힘이 되어줄 친정엄마가 있길 하나. 누가 뭐래도 쟈는 그냥 내 딸처럼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내가 챙길끼다."


그 마음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요즘도 매일 퇴근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가끔은 그 정성의 단 1%만이라도 내게 쏟아 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아내를 볼 때마다 고맙고 대견하다. 어느새 우리 집에서 주연으로 우뚝 선 아내, 비록 순위권에서 밀려나 '가족'이 아닌 '가축(?)'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지만 나는 그런 아내를 위해 언제든 조연 역할을 자처할 생각이다.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메인 사진 출처 : 미미 쌈밥 홈페이지 메뉴 사진 캡처




매거진의 이전글 날 버리고 가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