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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16. 2022

"부부는 선택이지만, 자식은 신의 선물이다."

보글보글 5월 3주 "가족"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교탁에 선 선생님께서 아이들 이름을 호명하셨다. 성적표를 받아 든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어깨가 땅끝까지 쳐진 아이들 뒤로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음... 수학이... 인 서울은 좀 어렵겠는데?"


생각했다. '수학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써먹지도 못하는 수학을 왜 모두가 잘해야 하는 거야!'라고...


"학교 앞 24시간 독서실 등록을 했다고? 잘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야."

"왜 이렇게 수학 성적이 안 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죽었다 생각하고 수학만 파보려고요."


독서실에서 먹고 자며 학교에 다녔다. 너무 힘들었다.

드디어 수능시험일!

앗!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분명 알람을 다섯 번이나 맞춰두었는데 어떻게 못 들을 수가 있지? 망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느낌,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

아 이런... 꿈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고3 딸이 있어서일까? 갑자기 웬 고3이 된 꿈?

꿈에서도 이놈의 수학은 나의 발목을 잡았다. 단지 꿈이었을 뿐인데 왜 이리 생생한지, 깨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앵글이도 이런 기분일까?


고3 수험생이 있는 집!

들뜬 기색도, 긴장감도 없다. 앵글이가 그러길 원했다.


"엄마, 내가 잘 해낼 거라고, 좋은 대학에 갈 거라고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걱정스레 봐주는 것이 되레 맘이 편할 것 같아."


개똥철학 같은 앵글이의 당찬 요구였다. 우리는 그래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조금 무심하게, 초등 4학년 동글이를 대하듯 최대한 긴장감 없는 오늘을 살아간다. 가족으로 우리가 생의 첫 관문을 넘는 앵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다.


올 들어 앵글이의 성적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의고사가 두 번 지나갔고, 중간고사도 마쳐졌다. 가채점을 하며 과목별 점수를 (잘 본 것만) 흘리듯 읊어대는 아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무심히 들어준다.


"그 점수면 몇 등급이야? 잘 본 거니? 다른 친구들은 어땠어? 불 시험이야? 물 시험이야?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몇 등급 이어야 해?"


라고 묻고 싶은 걸 꾹 눌러 참는다. 어쩌면 궁금해하는 엄마보다 앵글이 마음이 더 조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에게서 성적표가 배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알은체하지 않는다. 만족할만한 점수가 나왔다면 말하지 않아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도 성적표 얘기는 한 마디도 없다. 슬쩍 물었다.


"모의고사 성적표는 안 주시니?"

"나왔는데?"

"그래?"

"지난주에 나왔어. 엄마, 궁금해? 보여줘?"

"아니? 괜찮아."

"그럴 줄 알았어. 수학만 좀 더 하면 될 것 같아."

"그래?"

"응. 이번 달에는 수학만 파보려고."


아이와 오가는 대화에서 민감한 질문은 피해 본다. '수학 외의 과목은 나름 만족스러운가 보구나.' 생각하며, 원하는 점수에 못 미쳐도 기운이 생생한 앵글이가 차라리 낫다 싶다. '더 열심히 하면 된다'며 계획을 세우는 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의연하게 보내는 나날 가운 고3이 된 '내'가 꿈속을 헤맨다. 꽤 자주 꿈에 시험장 장면이 보인다. 앵글이의 수험생활을 바라보며 내가 더 불안한가 보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아이가 넘을 첫 관문이 수월했으면 하는 엄마 마음의 반전인가 보다.


"부부는 자발적 선택으로 관계를 맺지만,
자식은 선택할 수 없는 신의 선물이다."


• 가족(家族)
1.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
2. 동일한 가족 관계 등록부 내에 있는 친족
3. 같은 조직체에 속하여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고객(顧客)
1. 상점, 식당, 은행 따위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
2. 단골로 오는 손님

출처 : 다음 어학사전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양갈래에서 50:50의 길에 놓이기도 하고, 여러 갈래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워도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한 선택 중 가장 어렵고, 신중해야 할 선택은 '결혼'이고, '부부'가 된 후 우리가 선택한 '부모'의 길에는 엄청난 책임이 뒤따릅니다.  


여러분은 선택한 그 책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사회 속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친절하고, 성실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열심을 다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학교 안에서, 직장 내에서, 친구 관계와 가족 안에서 우리는 일인 다역을 하며 살아갑니다. 신기한 것은 역할이 바뀔 때마다 관계 내에서의 위치, 태도와 말씨가 달라집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만 달라져도 나의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맞춤옷을 갈아입듯 바뀌어집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중인격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상황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때에 따라 적절하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되도록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어쩌면 '사회 속 나의 위치와 모습'으로 성공 여부를 가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나'는 가정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1960~1970년대에 태어난 수많은 '나'는 소통하는 부모보다 권위적인 부모에게서 자란 '내'가 더 많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하지 말라는 것이 하라는 것보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명예를 높이지는 못하더라도 부모의 얼굴에 먹칠하는 자식이 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가족 여행도 스물이 넘어서야 해 보았고, 그 흔한 가족 외식도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난 뒤 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잘 되라는 의미로 채찍질을 하기도 합니다. '남'이었으면 좋은 표현으로, 좋은 말씨로 했을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시가 돋치고,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그러고는 '가족'이기 때문에 아픈 말도 해주는 거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서 대상이 '타인'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독한 말로 책망을 했을까요? 어쩌면 같은 뜻의 말을 좋은 말로 바꾸고, 상냥한 표정과 말씨로 조심스럽게 조언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감 없이 독한 말을 뱉을까요?

그리고 왜 '상처'를 주고도 당당할까요?

왜 자신이 준 상처로 아파하는 '가족'에게 아픈 말을 한 것도 다 사랑이었다고 합리화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맺어가는 많은 관계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타인'은 한 번 보고 말 사람도 있고, 속해 있는 조직에서 벗어날 때까지만 맺을 사람도 있습니다. 그중 오랫동안 함께하거나,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 속 '타인'은 이익에 의해 서로 주고받는 상승작용이 있을 때 관계가 유지됩니다.


가족은 어떤가요?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때로는 그것이 '폭력'이어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타인'은 안 보고도 살 수 있지만 '가족'은 인연을 끊기 어렵고, 설사 안 보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내내 불편합니다. 마음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양심을 건드리고, 도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밥을 먹어도 얹힌 듯 꽉 막히고, 잠을 자려해도 어수선한 생각들로 뒤척이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자 숙제인 '가족'이라는 이름입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갈 '가족'은
'VVIP 고객'입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만나는 고객, 어떤가요?

고마운 고객도 있지만 진상 고객도 있습니다. 자주 찾는 단골 고객은 인심을 베풀기도 하지만 어떤 고객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까탈을 부리며 업장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고객을 응대하게 될까요? 고마운 고객에게 친절을 베풀기는 쉽지만, 진상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고객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인데도 말이죠.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에게는 어떠한가요?

사랑으로 맺어진 결실이며 '신이 주신 선물'로 받은 '자식'에게는 어떻게 대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에게는 체면을 차리고 그들이 행한 말도 안 되는 강짜에도 화를 누르고 웃는 낯으로 고운 말씨를 건네면서, '나'의 '가족'으로 평생을 함께 할 아내, 남편, 자식에게는 서슴없이 내 감정대로 '독한 말', '거침없는 행동', '비교와 비난'을 쏟아냅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해서,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랑의 약속으로 맺어집니다. '자식'은 어떤가요?

우리에게 찾아온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달리기 1등을 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신의 선물'이 '자식'입니다. '자식'은 본인의 선택으로 부모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의 불친절, 비난, 폭력에 더 큰 절망을 할 수 있습니다.


홀로 설 수 없는 나이에 부모가 '폭력'을 일삼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고, 살기 위해 매달립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떠나가게 되겠죠.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내몬 것은 부모이고 가족입니다. 참으로 모순적인 것은 부모가 힘이 빠지면 떠나보낸 '자식'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자식'은 부모라는 언덕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습니다. 홀로서기가 가능합니다. 어쩌면 '부모'가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이 더 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낳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하고 외면해놓고서 상처받고 도망친 '자식'에게 기대려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자식'이 태어났을 때부터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고 품을 팔아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귀하게, 아낌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말이죠.


또래보다 조금 늦은 결혼과 출산을 하였고, 많은 가정을 마주하는 직업 덕분에 20대 초반부터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보고 살아야 하는 '나'의 '가족'에게는 '타인'에게 보다 더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객으로 만나 스쳐갈 인연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데, '나'와 50~70년을 함께 할 배우자, 자식에게는 더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 가족은 VVIP 고객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마음, 욕심, 생각에 맞지 않아도 '가족'이 상처입지 않도록 곱게, 소중하게 대하자.'라는 마음으로 '6초 참기'를 연습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이어도 '6초'를 참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고 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누그려 트릴 수 있게 됩니다. 동네 친구들은


"언니, 그러다 몸에서 사리나와."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22년을 살아보니 참 좋습니다. 가정은 늘 평화롭고, 엄마의 태도 하나 변했을 뿐인데, 남편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고운 말을 쓰고 가족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식탁에 모두 모여 함께 욕을 해주고 편들어줍니다.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거나 힘내라고 응원해줍니다.


'나' 한 사람이 '가족'을 VVIP 고객으로 귀히 여겼더니 '가족' 모두가 서로를 VVIP 고객으로 귀히 여깁니다.


한번 스치고 말 사람에게 보낼 친절은 거두어도 좋지만,

평생을 함께 할 가족에게는 거듭 보내야 할 친절도 아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대문사진 : 4세 동글이의 그림 "병원 다녀오는 길"

- 병원에서는 무서워서 먹구름에 비가 내리고, 엄마가 있는 집은 해님이 반짝~♡


사리(舍利) :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난다고 여겨지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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