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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18. 2022

브런치에 숨은 하이드를 찾아서

혜세박사와 이음절


(혜세박사 이야기 들었어요? 바비가 로애에게 물었다. 그럼요! 저도 그 이야기 듣자마자 확인하려고 카톡을 보냈는데, 읽씹이랍니다. 차단당한 것 같아요. 로애가 바비에게 대답했다.)



동남아 열대기후의 우기처럼 세차게 비가 내리는 유월의 어느 날 로애는 일산 밤리단 길 카페에 앉아 창에 비친 바비 얼굴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한다. 최근 브런치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브런치 운영진은 사건 당사자를 강제 탈퇴시켰고 관련 인원까지 경고했으며, 함께 글을 나누작가들은 줄줄이 탈퇴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관련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댓글에는 법적 조치를 취한다거나 서로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함께 글을 나누며 즐기던 글 놀이는 험악한 보*드* 이나 홍보용 네*버 *로그처럼 변질되고 말았다.


사건은 한 달 전 보글보글 매거진 지킬과 하이드 주제로 작성한 혜세박사 글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신이 브런치에 숨겨놓고 활동한 부캐를 간접적으로 소개하자 평소부터 그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던 인원들이 추적에 나섰다. 본인이 이실직고하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부캐에 대한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추적하던 인원들은 분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관련 사실을 퍼 날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궁금증은 증폭했다. 결국, 성실한 작가 두 명에 의해서 부캐를 찾을 수 있었고, 부캐가 발행한 글에 호기심 어린 댓글을 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진실을 밝히라며 따졌다. 그 후로 브런치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혜세박사는 평소 반듯한 이미지로 보였고, 육아일기나 다짐 글처럼 선한 글 위주로 발행했으며 가끔 사는 이야기를 투박하게 풀어냈다. 라이킷과 댓글을 통해서 많은 글벗을 쌓았던지라 전혀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활동한 부캐 존재는 많은 이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그의 비행에 일침을 놓은 것은 아니나 부캐를 찾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작가는 아는웬과 시르니였다. 최초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시르니의 뛰어난 문학성 덕분이다. 평소 혜세박사 글에 대한 좋은 감정으로 글을 꼼꼼하게 읽던 터라 작가 특유의 글투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혜세박사의 부캐가 발행 글에 댓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다른 작가들까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비난 글


by 이음절                                         JUN 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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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비난해. 그리고 조롱해. 메롱!
(중략)
OOO아 정신 차려!

좋아요 195        공유 엄청 많이        댓글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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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54)

시르니_작가님의 날카로운 지적은 좋은데, 다른 누군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입니다. 그런데, 혜세박사작가님과 문체가 비슷하네요.
이음절_@시르니 좋은 날 보내숑
혜남세아_필명이 신기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이음절_@혜남세아 어쯔라구요
부르소마소_좋은 글을 써주세요.
비난은
더 큰 비난을 부릅니다.
부디
좋은 생각과 글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음절_@부르소마소 뭥미
탈퇴한 사용자_정신 차리세요
이음절_@탈퇴한 사용자 땡큐~바이


편의점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 하며 세상 물정을 모두 꿰차고 아는웬은 남다른 촉으로 시끄러워지기 전부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기 때문에 굳이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둘에 의해서 알려진 혜세박사의 부캐 작가명은 이음절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부캐명이 이상했지만 거지 같은 문체와 어이없는 대응에 필명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브런치 작가들은 정확하게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이음절은 육 개월 정도 활동하면서 엄청난 구독자를 모았다. 자극적인 내용과 거친 문체는 늘 이슈가 되었고 멍청한 브런치 알고리즘에 의해서 브런치 추천 글에도 여러 번 뽑혔다. 인기는 엄청나게 얻었으나 문학적으로나 교육적으로는 바르지 않은 글을 계속 썼다. 특히, 도덕성도 문제가 많았는데, 초등학생이 쓴 시를 표절하거나 노래 가사를 자작시인 것처럼 발행하여 멍청한 브런치 알고리즘을 농락했다. 문제는 브런치에 재미를 더한다며 글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각종 추잡한 기술을 부리고 열심히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비난과 조롱 글을 선사하여 허탈감이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린 글은 매번 십만 조회와 삼백 라이킷을 받았고,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댓글은 백여 개 이상 달렸다. 그가 최근에 올린 시 한 편은 기성곡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이음절                                        JUN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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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그대를 보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죠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감사해요

라이킷 358             공유 많이               댓글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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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34)
혜남세아_깊이가 느껴집니다.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
이음절_@혜남세아 잘 좀 읽고 이해 좀 합시다.
혜남세아_@이음절 죄송. 제가 이해력이 달려서
이음절_@혜남세아 앞으로 댓글 달지 마쇼.
늦봄유정_작가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기성곡을 그대로 쓰시다니. 다른 작가분에게도 무례하군요. 자제하시죠.
이음 절_@늦봄유정 내 맘.




복잡한 마음에 로애는 삼십 분 거리나 되는 너의 작업실을 며칠간 계속 방문했다. 소식을 감춘 혜세박사가 갈 만한 유력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함께 글로 나눈 사이였기에 그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일주일이 지난날 늦은 아침, 뜨거운 여름 햇살이 책방 안까지 들어왔다. 로애는 예전에 출간한 책 2쇄 발간 기념 작가 서명을 하며 혜세박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밤가시 공원 방향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성이 보였다. 책과 노트를 한 권씩 들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떡 벌어진 어깨에 훤칠한 모습이었다. 멋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남성은 너의 작업실 문을 손바닥으로 밀어 제치며 들어왔다. 로애를 발견한 남성은 평온한 표정으로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따가운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남성을 넘어 로애에게 비추자 뜨거운 열기로 변했고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지면서 숨을 조여왔다.


"잘 지냈나? 오랜만이네! 혜세박사였다. 평소 존대했는데, 반말로 안부를 물었다. 어린놈이. 놀란 로애는 인사조차 할 수 없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마치 하이드를 만났을 때 많은 사람이 느꼈던 몸살 초기 증상처럼 오한이 나고 맥박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참나 오랜 시간 글을 함께 썼는데, 인사도 안 하는 군! 오늘 책방 공기가 좋지 않네.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그러게 왜 쓸데없이 이상한 주제를 선정해서 나를 힘들게 한 거야! 에잇! 너희들은 뭐 다른 줄 알아!" 혜세박사는 눈을 감은 로애 앞에서 막말하며 가져왔던 책과 노트를 바닥에 팽개쳤다. 책방에 다른 손님들도 모두 얼어 버렸다.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험한 말을 계속 쏟아부은 혜세박사는 돌아서더니 맑고 투명한 유리문에 온갖 지문을 묻히면서 강하게 열었다. 


로애는 말문이 막혔고 움직일 수 없었으나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의 편에서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는데, 마치 동네 양아치 같은 언행을 하는 전혀 다른 모습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 것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만족감이었다. 시르니를 통해서 알게 된 브런치 작가 이음절 글에서 받았던 더러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본질적인 증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모두에게 선사했던 끔찍한 존재 '이음절'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너의 작업실로 다가올 때 멋진 어깨와 듬직함은 악마의 잔인한 뿔과 사악한 등가죽으로 변해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측면에서 보이는 매끈한 턱선과 매서운 눈빛 그리고 잔인한 미소는 살아있는 돼지를 씹어먹고 피를 질질 흘리는 잘생긴 사탄 같이 섬뜩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먹구름에 따가운 햇빛이 가려지고 서늘한 바람이 몰려왔다. 방금 전까지 한여름 날씨였는데, 순식간에 늦봄으로 바뀌며, 대지가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이 개**야! 어디서 깨끗한 유리문에 지문을 묻히고 지*이야! 네가 삼음절이건 사음절이건 왜 우리 신성한 작업실에서 떠들고 염* 떠는 거야! 허접한 부캐 하나 가지고 유세 떨지 말고 와서 지문 지워! 오늘 교육 한번 제대로 해야겠다! 에잇! 취취리치치리취."



지금까지 조용하게 책방지기를 하면서 예쁜 꽃과 리본을 묶어주던 님이 순한 얼굴과는 다른 거친 욕설을 뿜었다. 놀란 혜세박사 아니 이음절은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몇 마디 대꾸하려고 했으나 더 심한 불호령이 떨어졌다. 혜세박사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욕설이 강해질수록 브런치 촌철살인의 대가 늦봄유정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는 늦봄유정이 명백했다. 특히 치리치치리취는 확실한 증거였다. 혜세박사는 두려웠다. 자신만 부캐를 통해 다른 삶을 향유하며 즐긴 줄 알았는데, 님과 봄유정이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동안 봄유정을 직접 볼 수 없었다는 사실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정신없는 상황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로애도 눈을 번쩍 뜨더니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늦봄유정 뒤에서 묘한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나 혜세박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링의 사다코보다 무서웠다.


"혜세박사님! 그동안 수고했어요~~ 호호호. 글 밭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줄 알았나요? 그러게 좌뇌와 우뇌를 잘 써야지요! 호호호"


로애는 마치 바비가 된 것처럼 웃으며 세 마디를 전하고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를 건넸다. 이음절은 엉겁결에 책을 받아 첫 장을 넘겼는데, 잉크도 마르지 않은 작가 서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비의 실명이었다. 너무 놀란 이음절은 어느새 혜세박사로 변해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더 이상 머물면 봉변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깡충깡충 귀엽게 뛰어서 밤가시 공원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는 들고 왔던 책과 노트 그리고 바비인지 로애인지 모를 존재가 선물한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까지 놓고 갔다. 바비는 바닥에 널브러진 노트를 줍다가 끄적인 메모를 발견하고 옅은 미소로 늦봄유정을 바라봤다. 늦봄유정 역시 가벼운 눈웃음으로 응대했다.


지금 이 순간                         -아는웬-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장훈이 나와 같다면
더 이상 숨을 필요 없으니 지킬 것은 지키고
난 해방하리라!




*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은 브런치 인기 작가분들 필명을 변형했습니다. 일부 인원에게는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견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굵은 글씨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마음에 들었던 문장과 최근 글벗 글에서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문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나옵니다. 첫 장면에서부터 등장하는 하이드의 거주 장소 출입문과 지킬박사가 죽기 직전에 문 앞에서 벌어지는 어터슨의 갈등도 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마도 문이 두 공간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겠죠. 문을 기준으로 전혀 다른 세상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문은 확실하게 단절시킬 수 있는 나무와 철재로 만들어져서 단단하고 투박한 느낌입니다.


제가 즐겨 찾는 일산 독립책방 너의 작업실은 맑고 투명한  개의 유리문이 있습니다. 두 문 사이에는 벽 대신 넓은 두 개의 창이 있어서 안과 밖 세상 훤히 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다른 공간에 있어도 서로 숨기 어렵습니다. 안에서 제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 밖에서 코를 파는지 쉽게 알 수 있죠.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여도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현실과 비슷하지요.


누구나 지킬과 하이드를 품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합니다. 지킬로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신비의 약이나 주님을 통해 출연하는 하이드를 언제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요? 지킬은 하이드일 때도 진심이었기 때문에 위선이 아닌 이중인격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하이드를 숨기기 어려운 세상에서 본질적인 증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아닌 자신과 전혀 다른 멋진 존재를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 표지 : 수정작가님 글씨 4종 선물세트




이번 주 : 지킬박사와 하이드

다음 주 :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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