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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월요일 오후에

by 혜남세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일이 버거운 사람에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유쾌할 수 없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월요병에 걸린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신명 나야 한다며 다짐하고 움직였다. 결국, 우중충한 날씨에 쏟아지는 비로 제풀에 지쳐서 다시 늘어져 버렸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정확하게 발음하기 어려운 각종 호르몬이라도 뿜어내면 달라질 텐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간만 보내다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옷을 갈아입고 똑같이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창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담배 피우러 나온 사람들이 소리치는데, 잘 들리진 않았지만 거슬렸다. 잠시 후 소나기가 내렸고, 내리는 빗소리에 소음은 잠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빗소리를 유심히 들은 지도 오래다. 잠시 빗소리만 듣다 보니 다시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새롭게 가입한 음악 플랫폼을 열었는데,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만들기 귀찮아서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목록을 선택했다. 언젠가 들어본 가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가사를 듣지 못해서 빗소리에 어울리는 멜로디만 들었는데, 충분했다.


노래를 틀고 몇 분 지났다. 두세 곡 정도 흘렀는데, 사무실 책장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고 다가가서 집어 들었다.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편 소설 한 편 읽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수록된 소설은 열 편 남짓한데, 이미 서너 편 읽었다. 매번 좋은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기대하며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젊은 작가 사진이 보였다.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장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지막 장이 나왔다. 시간이 사라졌다. 단편이니 스무 장 정도였을 텐데, 한숨에 읽고 많은 생각과 감정을 얻었다. 소설 등장인물과 동일시도 해보고,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기도 했다. 문예창작과 교수다. 역시.


창문은 계속 열렸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가 그친 줄도 모르고 느지막하게 오늘 글까지 썼다. 퇴고할 때쯤 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모르는 노래를 듣고 짧은 소설 한 편을 읽었더니 눈이 맑아졌다. 진정으로 글이 좋아졌나 보다. 이제는 창을 닫아야겠다.



* 비글비글 : 힘없고 의욕이 없을 때, 전라도 방언

** 비오는 날 썼는데, 눈 내리기 전에 발행합니다. 참고로 고향은 인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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