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막힌 상황에 기가 막힌다

I0234_ep.36 막혀도 너무 막힌다

by 혜남세아




꽉 막혔다.

융통성이 없다는 뜻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내가 꺼리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 정말 사랑하는 큰딸 세영의 성격이 그러하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데, 특히 상대방과 서로 난처한 상황이 되지 않기를 늘 갈망한다.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 목석, 규정, 지침, 딱딱, 고지식 등 벌써부터 예상되는 별명들이 눈에 훤하다.




지금 내 귀 상태도 꽉 막혔다.

어제 샤워 중 물이 들어갔는데 귀찮아서 그냥 잤다가 내이가 부은 것 같다. 반대쪽 귀는 외이도염이다. 가지가지한다. 그냥 3M 귀마개를 하고 있는 기분인데, 살짝 흔들 때마다 액체의 미묘한 흐름이 느껴지면서 통증을 동반하고 있다. 아무튼 너무 답답하고 아프다.

한 발로 콩콩 뛰기, 머리 한쪽으로 흔들기, 얇은 면봉 슬금슬금 다치지 않게 쑤셔 넣기, 드라이기로 말리기, 손가락 뚫어뻥 기술, 중력을 이용한 3시 방향으로 얼굴 돌리기 등 각종 기술을 쓰고 있지만, 정확하게 꽉 막혀있다. 마지막으로 오전에 귀 병원에 내원하여 신의 장비인 석션만 믿을 뿐이다.


에잇, 꽉 막힌 것들...




반면,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일의 형편에 따라 처리하는 재주란 뜻의 '융통성' 이 많은 막내딸은 큰딸과 성향이 정반대이다.

밉상이고 골통인 미운 네 살이지만 훌륭하신 아버지의 유전적 결함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요령, 처세, 유연, 임기응변 등 어울리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제멋대로란 말은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평소 이분법적인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흐리멍덩하고 귀도 얇으며, 거기다 막혔고, 우유부단하면서 결정장애까지 있어 맺고 끊지 못한 확실하지 않은 상황들을 달고 산다.

정확하게는 그런 상황들이 다수고, 일부는 잘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 것조차도 한쪽으로 쏠려있지는 않다.

살면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추구하다 보니 주변에서 정치 얘기를 할 때도 끼워주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옷장에 회색 옷들이 많았는데, 적당히 묻어가려는 나쁜 성격이 옷 색깔까지 물들였다.




하지만, 이런 나도 살아오면서 수많은 갈림길에서 단호한 결정을 했다. 성향은 반대지만 책임지기도 싫지만 누군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도망 칠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손해들도 있었고 아픔과 슬픔도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나로 인해 결정된 사안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함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는 결정의 순간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여 심사숙고하게 된다.

오늘은 작지 않은 이벤트가 있는 날이다. 그 이벤트의 결과는 누군가의 1년 또는 수년 아니면 평생이 결정될 수도 있는데, '내 결정'의 결과가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도한다 또 기도한다.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좋은 결과를 받아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다시 기도한다.

그들이 힘든 결과를 받아도 툴툴 털고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간절히 기도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아픔이 되지 않고 행복과 위안이 되기를

기도한다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결혼도 육아도 일도 결정의 연속 일 수밖에 없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결정을 수백 번 수천 번 하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지 못하는 결정장애라 구박할 것이 아니다.

세상은 우리가 결정의 순간에 고심할 때 눈을 흘겨보거나 혀를 차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 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범주는 평소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못한다고 기죽어 사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배려심 있고 상황을 잘 살피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훌륭한 사람들을 총칭한다.)




이제는 너는 짜장 먹고 난 짬뽕 먹어가 아니고, 그냥 짜장이나 짬뽕으로 통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짬짜면을 먹는 것도 아니고 짜장과 짬뽕을 두 개 시켜 쉐어해서 먹는 세상이 온 것처럼 아니면, 탕수육만 시켜 먹는 것처럼 골고루 둘러보며 여유 있게 살아야 한다.


아, 기가 막히네. 귀가 막혀.

제발 귀만 뚫렸으면 좋겠다. 엉~~~



ps. 나의 기도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000 등 15명과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내 몹쓸 기억력을 원망하면서 행복을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