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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19. 2022

우리가 이별하는 것들

보글보글 주제 '이별'

헤어짐을 표현하는 단어는 이별, 작별, 고별 그리고 사별 정도가 생각난다. 헤어짐과 어울리는 대상은 단연 사람이다. 특히, 이별은 연인과 잘 어울린다. 연인과 이별하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문장으로 누구나 수긍하는 사실이 되는데, 이유는 모두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별과 고별은 조금 다르다. 작별은 친구와 어울리고 고별은 상급자나 선생님처럼 조금 더 격식을 차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 가지 헤어짐을 비교하면 이별, 작별, 고별 순으로 슬프다. 그렇다면 사별은 어떨까?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특정 대상에 많이 사용하는 에서 다른 헤어짐보다 아프고 힘들다.


헤어짐을 생각하는 한 주 동안 우중충한 날씨까지 지속되면서 지쳤다. 기운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유언, 부고, 죽음에 이어서 헤어짐까지 생각하려니까 조금 처졌다. 더 이상 늪에 빠지기 전에 기운 센 천하장사라도 만나야겠다며, 즐거운 헤어짐을 돌아봤다.



십팔 년 전  떠나보낸 거친 말


"아! 신발 세개들. 너 나가자마자 개신발 세개들끼리 치고받고 병 깨고, 신고로 날아온 참새들까지 말리고, 서로 징역을 보내겠다느니, A9창 찢어졌으니까 Gang값 물라느니 난리였다."

"일찍 나오길 잘했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지?"

"신비 세계들 요단강 건넜지. 뭐! 이제 개신비 세계들은 생까는거야. 아직도 지들이 생활하는 줄 알아. 너무 식빵 정가네!"

"고생했어.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좋았는데, 손절한 애들은 다음에 못 보겠다. 따로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다툰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부동산을 끼고 빌라 사업하는 친구가 외계어에 가까운 거친 말로 소식을 전했다. 그렇다고 함께 비속어나 은어를 쓰며 대화할 필요는 없었다. 소통이 어렵지 않았고 이상하게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듯 막힘없이 통화했다.


아직 청춘을 달리는 친구 녀석은 학창 시절 썼던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동네 편의점 앞을 지나가면 우리 큰 딸 또래로 보이는 녀석이 던지는 욕설이나 늦은 밤 술자리 옆 테이블에서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어르신께서 주저리는 단어의 향연이 신발 세개나 신비 세계를 찾는 친구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많은 사람이 뱉어내지만 내가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나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거친 말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십팔 년 전 소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더 이상 말을 거칠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무려, 십팔 년 전인데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다고 무소유에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 같은 내용이 쓰이진 않았다. 십팔 년이나 지났지만, 좋은 문장과 생각이 담긴 책 덕분에 지금껏 거칠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간단한 산술식과 동료 이름도 쉽게 잊으면서 어려서 익힌 비속어는 십팔 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머릿속에 남았다. 어릴 때 체득한 언어가 오래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당연히 내 의식의 흐름은 활용성을 기반으로 한 삶의 모토를 따르기 때문에 큰딸 태권도는 그만 보내고 국어나 스피치 학원을 알아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헤어지는 스타벅스


일주일 만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따뜻한 리저브 커피 한 잔과 부드럽고 쌉쌀한 말차 라테, 둘째가 좋아하는 달콤한 핫초코를 시켰다. 그리고 쿠폰 잔액이 남아서 초코 시폰 케이크까지 플렉스 했다. 그렇게 한 장 남은 스타벅스 쿠폰을 사용했다.

2022년 11월 2일 부 아내가 선포한 긴축재정정책에 따라 중단한 행위 중 하나가 스타벅스 멀리 하기이다. 그래도 최근 5년 동안 9,799,280원을 먹어치운 괴물에게서 벗어나는 게 쉬울 리 없다. 1,248건 주고받은 우리 끈끈한 대화는 얽히고설킨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괴물 몫이었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를 향해 보고(BOGO) 쿠폰으로 유혹하며, 별 쿠폰 미끼를 던진다. 우리가 굳건한 신념으로 거들떠보지 않자 이제는 카카오 선물 쿠폰을 인질 삼아 협상을 요구한다.

비 내음 가득한 일요일 늦은 아침, 첫째 그림책 수업 대기시간에 호수공원 가로수길 스벅에서 한 장 남은 쿠폰으로 작별을 고했다. 잘 있어라. 스타벅스.



앞으로 버려야 할 오해


평소에 인생 책을 뽑으라고 하면 생각의 탄생과 무소유를 놓고 늘 고민한다. 이성에 치중할 상황에는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해 준 생각의 탄생을 선택하고 정신 줄을 놓고 있을 때는 무소유 쪽으로 기운다. 늘 정신없이 살기 때문에 무소유가 한 발 앞선다. 무소유에서 인상 깊게 남은 문장은 단 한 줄이다. 이백여 페이지에 좋은 생각을 녹인 글 귀가 수만 자 쓰였는데, 고작 열다섯 자만 기억하면서 인생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짧은 문장 하나가 큰 울림을 줬고, 나를 세우는 가치관 형성에도움을 줬다.

책 제목을 놓고 본다면 미너멀 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소유욕을 버린다거나 가진 것 없이 왔으니 다 놓고 가야 한다는 게 맞지만, 전혀 다른 부분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끔은 사는 게 너무 억울하다 보니까 해소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관점이 아닌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한번 더 생각하고 치우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만들었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불쾌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큰 도움이  한 문장은 '오해는 이해의 이전 단계이다.'이다.


지금껏 많은 것을 떠나보냈고 또다시 많은 것들과 헤어지는 중이다. 앞으로도 버려야 할 게 수두룩하지만 그중에서도 오해와 이별을 고하고 싶다. 잘 가라. 그동안 속 썩이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더이상 사별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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