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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Dec 16. 2022

쌀쌀한 날씨에 제격인 만둣국


머피의 법칙처럼 기대했던 바와 다른 결과가 계속되어도 난 좌절하지 않는다.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 한두 번 정도야 잠시 아쉬울 뿐이지 서너 번 이상 발생하게 되면 연속된 어긋남은 길조로 본다. 대충 네 번 정도를 넘어서면 OX로만 할 경우에도 1/16 확률이니 6% 정도로 희박한 상황이며 추가로 두세 번 만 더 어긋나면 1보다 작은 소수점 확률을 경험하는 것이다. 살면서 충분히 희소하고 의미 있는 날이 된다. 오늘이 그랬다.


자질구레 한 어긋남은 제외하고 늦은 점심 식사만으로도 충분하게 나를 채웠다. 식사 시간을 놓친 오후 두 시 삼십 분,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 서둘렀다. 추운 날씨로 움츠린 몸을 녹이기에 적당한 만둣국이 먹고 싶었다. 부모님을 잠시 뵙기 위해서 인천에 갔는데, 인천에서 만둣국을 찾아보니 적당한 집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고양으로 돌아왔다. 검색해 보니 맛있어 보이는 몇 집이 나왔다. 평소 만두를 즐겨 먹진 않았지만, 한 곳은 지나가다 봐서 위치를 알았고, 다른 두 곳은 처음 본 집이었다.


리뷰와 사진을 보고 평이 좋은 집으로 출발했다. 꼼꼼하게 휴무일이 아닌 것도 확인했다. 길은 막히지 않았고, 삼십 분 만에 가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맛집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과 별이 여러 개 붙어있고 가게 앞에는 대기석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앞 차가 우물쭈물 거리는 바람에 두 팀이 내 앞으로 갔다. 두 팀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가게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두 팀을 한 번에 제치는 상쾌한 마음으로 뒤에서 느긋이 가게 현관 앞에 섰다. 친절한 직원이 마중 나와서 웃음으로 반기며 문 앞에 쓰인 영어 두 단어를 가리켰다.


Break time.


한 시간을 더 기다리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서 다른 가게로 향했다. 사실, 두 번째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거리가 조금 더 멀었기 때문에 포기했었다. 나는 속이 비치는 만두를 좋아한다. 얇은 만두피에 고기가 채소보다 조금 더 많은 비율로 만들어진 만두를 좋아한다. 명동 교자 같은 완자 느낌에 물만두처럼 촉촉하고 적당한 크기를 좋아한다. 두 번째 가게 만두가 그랬다. 더구나 조금 맑은 국물은 오늘 날씨에 적당했다. 흐린 날은 걸쭉한 육수가 어울리고 맑은 하늘이 비치는 추운 날에는 투명한 채수가 어울릴 것 같았다. 더구나 한 입에 쏙 들어갈 듯한 만두 크기는 충분히 날 흥분시킬만했다.


규정속도를 10% 넘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이동했다. 혹시나 해서 Break time까지 확인했다. 사실, 만둣집에 Break time이 있는 게 어이없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할 만한 일은 아니라 그냥 삭였다. 쇼핑몰 안에 입점해 있다 보니 조금 복잡하게 주차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빈 가게 몇 개를 지나고 작은 광장 같은 곳이 보여서 살짝 뛰었다. 작은 광장에 위치하자 옷 수선집과 수입 상가가 보였고, 만둣집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옷 수선집 뒤로 만두라는 2음절을 발견했다.


몸과 머리와 눈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했지만, 순간 시선이 멈춘 곳으로 모두를 일치시켰고 무게 중심을 만두 방향으로 실어서 이동했다. 가게 상호까지 다 보였는데, 이상하게 직원과 손님이 보이질 않았다. Break time을 할 가게는 분명 아니었다. 그때 닷지(bar) 위에 놓인 스케치북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캘리그래피처럼 쓰인 2음절이었다.


매진.


연속된 우연을 통해서 흥분하고 허기진 내 자아는 맑지 않았다. 그래도, 체념할 순 없어서 검색한 가게 중 원래부터 알고 있던 만둣집으로 향했다. 기억력이 나쁘지만 쫄면을 함께 파는 것을 기억했다. 출출했지만 상큼한 맛이 갑자기 당겼다. 쫄면과 만두로 배를 채워도 괜찮겠다는 생각과 고대하는 만둣국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다퉜다. 그나마 오늘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집이기 때문에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호 대기하면서 가게를 검색했더니 평도 좋았고, 휴무일도 아니었으며, Break time은 없었다.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집은 아니어서 큰 걱정 없이 향했다. 멀리서 가게가 보였다. 네온사인에 그토록 보고 싶던 2음절 만두가 반짝였다. 골목길임에도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식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서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기운이 몰려왔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가게 문 앞으로 다가가던 나는 낯선 알림장을 마주했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듯 한 4음절이었다.


임시휴무.


어느덧 첫 가게 Break time이 끝나는 네 시가 되었다. 재료가 소진되어 매진을 외치던 두 번째 가게 아주머니께서 만두를 다시 빚었을만한 시간이었다. 결국, 임시 휴무인 만둣집을 뒤로하고 재미있는 우연을 겪은 하루를 즐기며, 밤리단 길 유명 칼국수 가게에서 허기를 달랬다. 평소 대기가 길어서 추운 날은 식사할 엄두도 못 내는 집인데, 조금 늦은 네 시라서 대기 없이 맛있고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아내에게 전화해서 점심에 만둣국을 먹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유명 칼국수 가게에 가보라고 권했었다.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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