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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Dec 24. 2022

두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 쟁탈전

보글보글 주제 : 크리스마스 선물


산타 할아버지아이들에게 예수님과 부처님보다  차원 높은 영역에 존재하는 분이며, 부모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한참 남은 봄부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자주 모셔오는 어르신이다. 평소 말을 안 듣는 아이를 잡아가는 경찰 아저씨와 늦은 시간 미친 듯 뛰어다니는 아이를 혼내러 올라오는 아랫집 아저씨도 산타 할아버지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우리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현하기 위해서는 달성 불가능한 세 가지를 지켜야 하는데, 첫째, 울지 않기. 둘째, 거짓말 안 하기. 셋째, 착하게 살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존엄을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 밥상에서 큰딸이 산타 할아버지공개한다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산타는 엄마라고 망언을 했다. 큰딸 주장이 망언인 이유는 첫째, 엄마가 밥 먹으라는 데 쓸데없는 소리를 했고, 둘째, 보통 산타클로스는 아빠라고 할 법한데, 아버지 존재 가치를 무시했으며, 셋째, 아직 산타를 믿는 막내에게 타락한 초등 문화를 설파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막내는 상황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한 큰딸은 커밍 아웃 이후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기자정신으로 계속 추궁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서 명확한 논리도 없이 추리한 결과로 엄마를 범인으로 특정했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 사실, 큰딸이 사실을 알아상관없으나, 문제는 막내였다. 막내자신이 믿는 게 틀어지면 대성통곡하는데, 한두 시간은 훌쩍 넘긴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큰딸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지금 공개한다 너스레를 떨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잠들었고 선물에 놀라서 춤추던 모습이 생생한데, 어디서 오는 멍청함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막내까지 상황을 파악했고, 막내 얼굴 표정은 굳어졌다. 막내가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기울이는데, 다행히 분노 산타 존재를 알게 된 실망이 아닌 진실을 속이언니에게로 향했다.



"언니는 산타 할아버지를 몰라. 할아버지는 남.자.야."


한글도 잘 모르는 언니라고 무시하면서 두 딸 분쟁시작됐다. 드디어 내가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왔다. 자고로 군자는 나서야 할 때와 빠져야 할 때를 확하게 알아야 한다.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솔직히 억울한 건 나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내와 함께 준비했지만, 마지막에 선물을 놓는 역할은 늘 내가 전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대화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서 서운했고, 상황판단 결과 개입하기에 적절시기라고 판단하여 힘껏 목에 힘을 주어 한마디 내뱉었다.


"허허허. 사실은 내가 산타란다. 허허허"


딸은 듣지도 않았다. 그나마 막내는 날 보고 씨익 웃으며 한마디 다.


"산타 할. 아. 버. 지.라고. 아.빠."


두 딸은 무관심과 천대를 나에선물하더니 각자 자기주장만 이어갔다. 이렇게 될 바에는 한발 물러나서 엄마 대응이 힘들어졌을 때 지원하는 게 낫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찢어진 자아를 가져다 붙였다. 결국 한참 실랑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회심의 한방을 날렸다.


"산타할아버지는 없으니까 받고 싶은 걸 말할 필요 없겠네."


방금 전까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칠 것 같은 고함과 명탐정 코난 추리력으로 진실을 밝히려던 유기자는 한순간에 태도를 바꿨다.


"아니야~~ 산. 산 산타 할아버지는 있어. 내가 착각했나 봐"


처음부터 산타 할아버지 존재를 맹신하던 막내는 뿌듯해하며 언니를 무시하는 눈을 흘겼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아내가 각자 잘한 일을 말하라고 했다. 큰딸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둘째와 친하게 놀았다면서 비싼 레고를 원한다고 엄마를 보며 말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엄마에게 청구했다. 막내는 갑자기 언니를 때렸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러더니 "앞. 으.로. 안. 그. 럴. 께. 요."라는 아무도 믿지 않는 기계음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뽀로로 이층 집이라는 언니 장난감 가격에 상응하는 아이템을 살짝 흘리며, 눈웃음쳤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아내도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반성하는 막내가 어쩌고 저쩌고 기특하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산타 할아버지에게 잘 전해준다며 일단락했다. 여전히 난 어디에도 없었다.

큰딸은 엄마인 줄 알면서 어색하게 모르는 척하며 권력에 머리를 숙였다. 막내는 자기 만행을 속죄하는 척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산타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착한 어린이로 자신을 포장했다.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본인이 갖고 싶은 장난감을 위해서 영혼까지 버릴 수 있기에 잘 크는 두 딸과 아내를 보면서 나름 흐뭇했다. 존재감 없는 아빠는 조용히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하여 장바구니에 선물 두 개를 담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난 막내가 현관문 앞에서 서성였다. 큰딸은 어제 일을 잊은 채 엄마 옆에서 거꾸로 자고 있었다. 난 책을 읽다가 거슬리는 막내에게 관심을 표명했다.

"뭐 해?"
"선물 받으려고..."
"무슨 소리야! 크리스마스는 아직 멀었어!"

산타 할아버지는 오늘 오지 않는다고 알려주며, 크리스마스까지 아직 열 밤도 더 자야 한다고 말하니까 표정굳어졌다. 체념하는 듯 돌아서면서 혼자 구시렁거렸다.

"쿠팡에 주문하지.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오는데..."

그렇다. 막내는 처음부터 산타 할아버지 따위는 믿지도 않았다. 착한 언니가 8년 만에 발견한 진실도, 아빠가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내뱉는 호탕한 산타 웃음도, 멋진 엄마가 훈육을 위해 활용하는 착한 일 리스트도, 다 조절하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믿는 척했던 것이다. 모두가 속았다. 단지, 몇 밤을 자야 하는지 착오가 생기자 속내를 드러냈다. 막내 연기력에 감탄하며 인터넷 장바구니에 담긴 선물을 삭제할 마음만 가득해졌다.

가 동심은 소중하다고 말했을까? 유튜브를 통해 세상의 진리를 일찍 깨우친 우리 아이들은 동심보다는 동심을 유발하는 영악한 아이가 되었다. 때마침 인천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고, 재밌는 상황이라 말을 전했더니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하는 짓이 어쩌면 지 아비랑 똑같다는 망언을 다. 어머니도 칠순이 되니까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 딸의 타락과 어머니 건강 걱정에 슬픈 하루를 보냈.





* 보글보글에 첫 글을 쓴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공교롭게 지난해는 크리스마스에 올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발행합니다. 제가 쓴 첫 글은 무려 7,979자를 마구 배설했습니다. 멤버를 소개한 글이었는데, 말이 많았습니다. 제 글이 시발점이 되면서 분쟁이 생기기도 했고, 실제로 전 브런치 작가 세 분과 작별을 고하기도 했습니다.(작별이라고 해봤자 서로 구독 끊고 댓글이나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정도지만) 덕분에 저도 마음고생과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3월 한 달 동안 글을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확인해 보니 한 분은 개인사정으로 브런치를 중단했고 다른 두 분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문을 한 번 두드리고 오해를 풀고 싶네요. 관계가 개선된다면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도 있겠지요. 사람보다 귀한 건 없으니까요.



오늘 글은 보글보글 결성 전에 발행했다가 삭제한 글을 꺼내서 다듬었습니다. 새롭게 창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나온 글을 다듬고 살피는 것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올해도 크리스마스 관련 글은 썼지만, 이글이 주제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보글보글 매거진으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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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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