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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7. 2023

완주하겠다는 다짐



완주는 거리나 시간이 제법 걸려서 지구력이 잔뜩 필요한 운동끝까지 마무리할 때 쓰는 단어이다. 사전에는 목표 지점까지 다 달림이라고 쓰여있는데, 꼭 달리기한정하지 않고 목표를 정해 꾸준하게 노력하고 정성을 들여 마무리한 행위에도 자주 다.



오래전부터 5km를 꾸준하게 달렸는데, 한 번 달리면 반드시 완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4km를 달리기도 지난주는 3km만 달렸다. 그러면서도 인스타그램에 오운완이라고 다. 목표를 바꾸고 완주했다며 합리화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완주했다는 결과를 통해서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취미로 매일 글을 는데,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발행할 때마다 완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마침표를 찍지 못한 글을 서랍 속에 수북하게 쌓았다. 그런 날은 인스타그램에 짧은 글과 사진을 올리거나 그날 읽은 책 한 두장을 찍어 게시하고 짧은 문장을 기록하며 완주했다고 소리쳤다.



완주는 끝까지 소임을 다해 마무리한다는 의미가 담겼지만, 끝이라는 기준은 정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끝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물론, 시작할 때 목표나 최종상태(작전이 종료되었을 때 지휘관이 요망하는 적과 지형, 아군부대의 모습으로 설정한다. 출처 : 네이버 군사용어)를 선정하고 진행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끝을 바꾸는 사람은 줏대가 없고 소신이 없으며 비겁하고 치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완주를 못해 좌절하며 갈피를 못 잡거나 멈추는 것보다는 낫다. 더구나 꾸준하게 지켜온 을 한 번 완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좌절하며 계속하지 못하느니 잠시 시간에 기대어 다시 한 걸음 더 걷고, 한 글자를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는 게 나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작과 끝도 확하지 않았끝은 언제든지 바뀔지 모른다. 어느 지점이 마지막이냐에 따라서 완주는 완주가 아닐 수 있다. 더구나 작은 완주들만 모여서  큰 완주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리가 완주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하 멈추거나 쉬거나 돌아가는 것이 어느 큰 완주 속에서는 하나의 과정으로 포함되기다. 자기 합리화나 변명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릇된 생각으로 볼 수 없다.





(軍)에서 완주는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것이다. 직책에 부여된 임무와 역할을 다하면 되는데, 어느덧 스무 해 넘게 앞으로 구 년 정도만 더 무하 전역한다. 지금껏 완주했고 앞으로도 완주할 예정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나씩 해냈지만, 어떤 임무는 마무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당장, 지금은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직책에서 23개월을 보냈다.  끝이 보이지만 가슴 졸이며 편치 않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느새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론, 지금 와서 멈추거나 쉬거나 돌아가더라도 완주했다고 다짐할게 뻔하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완주가 언제  모르지만,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다 보면 생이 끝날 때즈음 완주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지금껏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빅터 프랭클은 28명 중에 단 한 명만 생존할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를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로고테라피라고 제시하며 세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며, 다음은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고 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니체의 말도 자주 인용했다. 간단한 논리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유는 삶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의미는 세 가지를 통해서 얻으면 다. 명확하게 끝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주를 못했다고 스스로 결정하며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패나 시련을 통해서도 의미를 찾는다면 왜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고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



많은 완주와 미완주, 불완주, 무완주가 쌓여서 결국 완주를 이루게 다.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고 해서 바닥만 보며 슬퍼할 때가 아니다. 진급하지 못해서, 적응이 힘들어서, 더 이상 복무하지 못해서, 간단한 너트 조임이나 엑셀을 수정 못해서, 그 자리에 서있기 조차 힘들어서 아니면 버티지 못해서 완주하지 못했다며 좌절 이유가 없다.





혼자만의 다짐이 아니다. 요즘 군대는 월급도 늘고 여건도 좋아졌기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도 표현 못 하고 지금 이 순간 어느 생활관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용사(세상 좋아졌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사회)국군구리병원 정신과 진료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장병(정신과 진료를 위해 엄청나게 대기하는 현실)당차게 임관하여 야전에 투입한 지 두 달 만에 출근을 고민하는 안타까운 후배(입사한 지 한두 달 만에 출근을 꺼리는 동료)에게 가닿기를 바랄 뿐이다.



* 한 줄 요약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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