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게 지켜오던 일상을 잠시 중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밥을 먹듯이 잠을 자듯이 아니면 숨을 쉬듯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잠시 멈춘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허기짐과 졸림, 숨 막힘을 참아야 하는 고통과 지금껏 지켜왔던 과정이 무너진다는 강박, 잠시 쉬는 동안 뒤처지거나 다시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끊고 다시 가기로 했다. 도약이 없다고 느껴진다면서 묵묵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정진하기보다는 한 박자 쉬고 필요하다면 두 박자마저 쉬면서 가야 할 길과 주변 환경,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이다.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포장하기에 그럴싸한 주장 같지만 과학적으로도 충분하게 입증된 이론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무너뜨린다는 생각에 다시 끈기를 부릴지도 모른다.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몇 해 전 처음으로 휴직을 결심했을 때이다. 주변에서 만류했다. 분명 예전보다 여건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주변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비슷한 결심을 하고 휴직을 신청했다. 이미 능력에 비해 충분한 대우를 받았고 깜냥보다 더한 영예를 얻었기 때문에 다짐은 흔들리지 않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잠시 멈춘 사이 아무것도 못했다. 하지만, 그때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그 후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둘째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육아 휴직도 가능하지만 앞으로 휴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휴직해서 집에 기여하는 정도와 스스로 느끼는 만족도가 일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진 않지만 적당하게 누릴 수 있는 연가와 일과 이후 시간을 통해서 행복을 채우는 게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가끔 멈추면 내 큰 머리와 무거운 육신이 가벼워진다. 마치 새신을 신고 뛰어보는 느낌마저 찾아온다.
사실, 신은 나에게 꾸준하게 나아가는 끈기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치거나 힘들 때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건너뛰고 세 박자마저 쉬어도 근심, 걱정하지 않는 여유를 선물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