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매체에 슈퍼문을 다룬 내용이 쏟아졌다. 달을 보겠다며 주변에서도 야단법석이었다. 3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뉴스, 10년에 한 번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오늘 못 보면 평생 볼 수 없다는 설까지 나를 어지럽혔다. 어렸을 때 핼리혜성이 지구 가까이에 오던 해,못 보면 팔순이나 되어야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며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반 정도 지났으니 사십 년만 기다리면 헬리혜성을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과학기술 발달과 소통이 활발해졌기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유성우, 레드문, 블루문, 슈퍼문 등 살면서 한 두 번 밖에 볼 수 없는 우주 대잔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나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찾으려는노력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슈퍼문이 나타나면 남들과 다르지 않게 즐겁게 보고 사진으로 남기며 지인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냥 평범하게 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에 아내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슈퍼문을 발견했다. 스마트폰이 좋아서 그런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가깝게 촬영한 것처럼 찍히는 게 신기해서 여러 장을 찍었다. 평소에 달을 유심히 본 게 아니라서 얼마나 큰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보름달이기에 소원을 빌고 어둑한 부분을 보며 토끼처럼 보이는지 자세히 살펴도 봤다. 딱 그 정도였다. 아무리 슈퍼문이라도 달을 발견하고잠시 즐거워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아내를 전철역까지 태워주고 출근하는 길에 다시 슈퍼문을 만났다. 어제 본 슈퍼문이 조금 다른 방향에 그대로 떠 있었다. 운전 중에 보는 달이라 집중해서 볼 순 없었고 어젯밤에도,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에도 하늘에 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출근했다. 딱 그 정도였다. 아무리 슈퍼문을 두 번 보더라도 그 자리에 잘 있는 정도를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를 한잔을 내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펴고 천천히 독서를 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는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단락을 읽었다. 최근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뤘는데, 오묘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새기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선선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평소와 똑같은 창밖 배경에 슈퍼문이 놓여있었다. 딱 그 정도여야 하는데, 갑자기 감정이 요동쳤다. 매번 바라보던 곳에 등장한 슈퍼문이 대수롭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읽던 책을 덮고 가만히 슈퍼문을 바라봤다. 구릉보다 한참 위에 떠 있던 슈퍼문은 어느새 산등성이에 걸렸고 밝아오는 하늘 때문에 흐릿해졌다. 시계를 보니 앉은 채로 삼십 분 가량 슈퍼문에 빠져 있었다. 딱 그 정도가 아니었다.
우연히 찾아온 행복한 순간이었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고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생뚱맞게큰 감동을 얻었다.똑같은 슈퍼문을 두 번이나 보고 감흥이 없다가도 늘 보던 공간에 갑자기 나타난 세 번째 슈퍼문은 다르게 다가왔다. 주변에 많은 것들을 유심히 그리고 자세히 자주 바라보다 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