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이 쪼르륵 달려와 동네 놀이터에서 노랑, 빨강 우산을 쓰고 이름 모를 춤을 추면서 불러 줄 것 같던 노래가 생각났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부터 '우르르 구웅 구웅' 하면서 중년 아저씨의 중저음 베이스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편견이고 선입견이며 오해다.
중저음이 어때서, 중년 아저씨가 뭘 잘못했다고, 기분 나쁜 천둥소리는 거기다 비교하고, 맑고 산뜻한 빗소리는 사랑하는 딸들이 떠오르는 걸까? 내 머릿속에 정립되어 있는 비와 천둥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정체성이 본질이라면 이미지는 정체성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본질과 이미지가 같으면 좋지만, 단시간에는 본질이 이미지에 묻힐 수밖에 없다. 정체성과 이미지가 다르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새롭게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노력하게 되고 적지 않은 시간을 쓰게 된다.
특히, '첫인상'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한다. 일도 사랑도 처음 접하는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첫인상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안경을 쓰면, 똑똑하거나 멍청해 보인다거나 머리카락을 밝은 색으로 탈색하거나 염색하면 가볍거나 활발한 사람일 것 갔다 와 혈액형 A형은 소심하다는 밑도 끝도 없으며, 비논리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포장되어 생각하고 심지어는 말과 글로 표현된다. 그로 인해서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다행히 난 본질과 이미지가 일치한다. A형에 안경을 쓰고 있는데, 소심하고 멍청하다. 아무도 오해하지 않는 게 조금 슬프다.
근데 왜 편견과 선입견, 오해를 받는 쪽에서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작 편견과 선입견, 오해를 하는 사람이 바꿔야 하는데,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마흔이 들은 그 유리창을 깨트리기가 여간 쉽지 않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 이 편견 덩어리.
불혹의 정확한 뜻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나이'로 가볍게 정의하고 그 이유를 평소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내 생각대로 살기 때문이라고 자주 말한다. 마흔이들은 40년을 넘게 살면서 보고 배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면서 멋진 틀을 완성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틀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면 분명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심지어는 그 틀에 맞지 않는 경우를 비정상적이거나 이상한 것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 틀을 바꾸려는 노력도 많이 한다. 실제 프레임과 관련된 책들이 시중에 많다. 그 책으로 내 프레임이 틀어질까 봐 안 읽었다. 이 선입견 덩어리.
결국, 내 본질과 이미지를 일치시키고, 바라보는 사람이 생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정체성과 나만 모르는 이미지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와 마흔이 들의 귀를 어떻게 팔 것이며, 공양미 삼백석을 어디서 구해서 눈을 뜨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내 생각을 정리했다.
나도 모르는 내 정체성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접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내 가치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머리가 좋아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지 못하니 현상을 바라보는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다른 생각이 들 때면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만의 도서관을 만들고 그 도서관에는 세상 만물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여 책장 한켠에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20살 때 생각했던 용기와 마흔이가 되어 생각하는 용기가 다른지 헤아릴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게 남겨두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걸 마흔 살이 넘어서 깨달았다. 하필 마흔 살이지. 결국 앞으로 이십 년 이상 천천히 쌓다 보면, 소소한 주제로부터 복잡한 관계들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가치관이 성립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모르는 내 이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나마 가족과 친구 중에 사랑이 넘치거나 약간의 오지랖이 있으면 관심 가져주고 격려하며 조언해 준다. 문제는 대부분 나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나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나쁜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나쁜 이미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 '진정한 친구'가 밉지 않고, 고맙게 느껴질 수 있도록 나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주말 간 나쁜 친구를 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겠다. 근데, 나를 어떻게 다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두 가지 질문 모두 내가 살면서 하는 가장 큰 고민거리 같다. 나를 알고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 속에서 많은 생각과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며, 가끔은 오해를 이해로 바꿔 놓기도 한다. 삶의 정수에 가까워 지기 위해서 결국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복잡하게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딸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 몰라! 관심 없어!
이럴 때는 고민을 그만하고 관심 없이 그냥 막 사는 게 정답에 가깝다는 딸의 편견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