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글감 수첩이나 메모앱을 쳐다보게 되는데, 의식적으로 보지 않고 명상과 비슷한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대부분 글로 옮기기 직전 오감을 통해 느끼거나 하루 전 인상 깊었던 상황 또는 밤새 꿈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소재가 된다. 난 그런 실체 없는 것들이 좋다. 글을 조금씩 써내려 가면서 베일을 벗고 실체가 드러나는기분이 좋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새집을 짓는 기분이다.
한 번은 꿈 이야기를 제대로 쓰고 싶었다. 매일 꿈을 꾸는 것은 아니지만, 잠에서 깨면 사라지는 소중한 꿈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는데,그런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을 알게 됐고, 그분 글을 열심히 읽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래도 조금 아쉬울 때는 내 꿈 이야기를 온전하게 글로 남겨야겠다. 아마도 공상과학 소설에 가까울 것 같다.
다른 꿈에 대해서도 여러 번 쓰려고 했다. 그런데 잘 그려지지 않았다.우연히 어제 큰딸이 내게 꿈을물어왔다.
"아빠는 꿈이 뭐였어? 엄마는 파일럿이었다는데,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이 뭐였어?"
"어~~ 아빠는 엄마 같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행복하게 살면서 세영이 세이 같은 예쁜 딸과 오손도손 사는 게 꿈이었어."
"거짓말!"
그렇다. 난 정답을 말했지, 내 꿈을 얘기하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어릴적 꿈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주입했던 판사는 전혀 아니고, 설까치가 유명하면 야구선수, 김주성이 축구를 잘하면 축구선수였으니 그것도 내 꿈은 아니었다. 한양대 건축과가 유명하다고 건축사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가 좋다며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은 누나의 영향을 받았고, 약사도 부모님과 주변에서 미묘하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탐험가는 인디아나 존스를 본 사내 아이의 대다수가 원하는 공통 꿈이었고 교수는 대학원 진학시기에 안정적인 직업을 희망하면서 가졌던 것 같다. 군에서도 더욱 높은 계급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이 꿈을 꾸지 않고 산다면서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삶을 비난할 때 나도 동참했거늘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꿈이 내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가끔 혼자 글에 많이 쓰는 문장으로 '정착보다는 유랑하는 삶'이라며, 여기저기 다니고 그곳에서 얻는 영감들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오래전 아내에게도 말을 했다. 여행 에세이를 써보고 싶은데, 글그림, 사진 중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희망만 할 뿐이라고, 특히 세 가지 중에 가장 큰 걸림돌이 글이라고 생각했다.
일기도 안 쓰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독후감이나 글짓기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며, 어휘력도 떨어지고, 98년 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성적도 저조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분야다 보니, 그냥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늦게나마 그림을 배워서 여행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참 유행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을 보면서, 내 꿈은 저것에 가까운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그 선에서 정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는 10년의 작은 이벤트를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내 꿈에 다가가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을 혹시 조금 잘하게 된다면 더 큰 행복이 다가오지 않으냐는 생각도 한몫을 차지했다. 결국은 모든 게 생각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정도 매일 다이어리에 일기를 썼다. 맞춤법에 띄어쓰기까지 절반 이상을 수정해야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5줄 이상 쓰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러다 올해 5월부터는 인스타를 공개하고 매일 글을 남기며, 잘 모르는 사람들하고 댓글도 주고받았다. 미리 관계가 형성되어 있던 친구들에게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러다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6월부터는 용기 내어 글 모임에 가입도 하고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남기고 있다.
글이 괴발개발이거나 맥락이 없고 감동이 부족하더라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큰 양분이 되어 멋진 한 문장으로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피곤하고 지쳐서 더 자고 싶고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도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한다.
'뭘 쓸까?'
작가도 아닌 것이 작가마냥 글쓰기에 빠져서 날뛰는 것을 보면서, 전지적 시점에서의 내 모습이 상상된다.
난 제법 수영을 한다. 주로 조용한 곳에 가서 아내와 수영하는데, 가끔 친구들끼리 놀러 와서 시끄럽게 떠들며 자신의 수영 실력을 과시하는 친구들이 있다. 수영하기 전까지 '어려서 물을 타고 다녔다'라든지 '모든 영법을 다 한다'라면서 막상 수영을 시작하면, 십중팔구 '작가 마냥 글쓰기에 빠져서 날뛰는 내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내 생각이다.
내가 그들의 수영 수준을 논할 수 없다. 그곳에 있는 라이프가드 보다 내가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박태환이나 마이클 펠프스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팔의 꺾임이 부드럽고 다이빙과 턴을 할 수 있어야 수영 수준이 높은 게 아니다. 똑같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모를 쓰고 있으며, 물 밖과 안쪽에 걸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모든 게 다 네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날뛸 수 있을 때 좀 더 날뛰고 싶다. 시간이 된다면 하루에 몇 개의 글을 더 쓰고 싶다. 이것저것 다 소재로 보인다. 여느 작가들처럼 글감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담고 싶다. 대부분 글쓰기 초반에 경험하는 일이라고 들었다. 그러다 한계가 오고, 소재의 고갈과 창작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순간이 온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다행히 난 글쓰기를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만약 그것으로 인해서 고통이 된다면 과감하게 손을 놓으면 된다. 그러다 그리우면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다.
요즘은 맞춤법도 열심히 공부한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도 꾸준하게 읽는다. 다만 글 쓰는 법이라는 책들은 넘기지 않고 있다. 그 글을 통해서 내가 갇히게 될 것 같아 조금 두렵다. 새로운 수영 강사님께 영법을 배우는 것은 포기하고 수영복 색깔을 바꾸고 물안경만 선수용 수경으로 바꿔서 그냥 조금 더 허우적거리고 싶을 뿐이다.
어제 처음으로 아내한테 너무 빠져있는 것 같다고 핀잔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니지만, 평소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을 못하는 내가 이렇게 빠져있는 모습을 본 아내도 신기해한다. 어쩌면, 내 꿈이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큰딸 세영이가 다시 물어 온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빠 꿈은 사랑하는 엄마와 멋진 곳을 돌아다니면서 추억을 쌓고 그곳에서 글을 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