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에 거창한 계획을 하나 세웠다. 가고 싶은 곳 전부를 목록으로 작성한 다음 큰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1년간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나중에도 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계획의 실행 연도는 아쉽게도 작년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에 1년짜리 육아 휴직을 하고, 준비 기간을 거쳐서 떠날 계획이었다. 가장 먼저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첫째 딸의 조기입학이었다. '빠른이'라 학교를 일찍 들어가는 제도는 없어졌지만, 부모가 희망하면 학교를 일찍 보낼 수 있는 것을 옆집 '빠른이'가 잘 알려줘서 2월생 두여자 아이는 동반입학하였고 우리의 거창한 계획은 소박하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비에이의 크리스마스 트리
'제주도, 교토와 홋카이도 그리고 천사의 도시'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서라도 가까운 곳으로 가야겠다는 수정안을 계획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가 우리에게 거침없이 달려왔다.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질 수 없었고, 휴직기간은 짧아졌다.복직하기 전까지두 딸의 등하교 운전 선생님과 목욕을담당하면서 충분히 스스로를 돌아봤고 지금은 코로나 상황에서 2년 가까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외와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현실을 인정하며,한달살기는 후일로 미뤘고 지금은 전혀 다른 곳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다.
'브런치'
오늘로 브런치에 가입한 지 정확하게 한 달이 지났고, 글 쓰는 취미가 생긴 것은 두 달 정도 지났다. 4월의 마지막 날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10년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5월의 첫날부터 인스타그램에 3~4줄의 짧은 글을 쓰면서 계정을 공개했고, 6월부터는 동네책방 '너의 작업실'의 멤버들과 온라인상에서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쓴 글을 게재하고 서로 격려하며 응원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모임이다.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실 다 모른다. 누구 하나 오탈자가 있다는지 문맥이 맞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서로의 글을 차분하게 읽으며 기분 좋게 응원해 가면서 조금씩 성장시켜주는'칭찬과 격려가 가득한 글 모임'이다. 글 모임 친구들의 소개로 지난달 14일에 브런치를 가입하였고, 16일에 승인받았으니 정확하게 30일간 활동했다. 통계를 눌러보니 그동안 35번의 글을 발행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1~2시간 쓴 글이기 때문에 30번은 꾸준하게 기록한 것이고, 나머지 5편은 가입 전에 쓴 글 몇 편을 휴일에 정리해서 발행했다. 한 달 전 글과 지금의 글을 비교해 보면 내용은 모르겠지만 양과 편집 능력은 크게 달라졌다. 한 달 반 전의 3~4줄 올린 글과 비교하면 제법 차이가 난다. 짧지만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스스로 올림픽에 출전한 무명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대회 기간 능력이 급상승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글쓰기에 빠져서 '날뛰는' 마흔의 아저씨로 보일지도 모른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글 모임 멤버 한 분의 글이 조회수가 높아졌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 '브런치 인기글'이란 타이틀로 게시글을분석해서 5,000자 정도의 장문 글도 써 봤다. 나름 인기글을 노렸는데, 전혀 인기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바로 다음날부터 인기글은 포기하고 내 글쓰기의 목적에 충실하자는 다짐과 함께 소소한 내용의 글들을 진심을 담아서 쓰는데, 며칠 전부터 올린 글들이 전부 브런치 인기글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뿌듯했다. 심지어는 포털사이트 메인에도 올라갔다. 사실 어이가 없다.
허수에 허덕이는 일상
살면서 글짓기나 독후감도 제대로 써본 적 없고, 글자와 맞춤법도 잘 모르는내 글을 누군가 읽고 가끔 공감도 해준다.구독자도 생겼다. 지인들도 브런치에 가입해서 글을 읽는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소스라치게 놀랍고 진심으로 고맙다.신기루같다. 아니면, 아직도 꿈 속이다.
부끄러워서 아직 올리지 못한 글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나는 것들을 발설하면서 머리를 정리한다. 혼자 생각한 말들을 글로 옮기고 적절한 제목을 선정하지 못하다 보니 '아침 주정'이라는 말로도 표현했다. 딱 적당하다.
발설이나 주정이란 말을 쓰니까 주변에서 불필요하게 자신을 낮추는 말투가 상대방에게 조금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고, 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겸손이 아니고 실제다.시간을 쪼개어 다시 읽어보면, 주어와 술어도 잘 안 맞는다. 그럼 다시 수정해서 발행한다.
하코다테의 크리스마스 추억
최근 들어 제목과 사진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아침시간이 바쁘다. 맑은 기운으로 글을 쓰고 난 다음 간단하게 퇴고를 하고 발행을 하는데,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날 글'이라는 표현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도 게재를 한다. 팔로워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지인이라 크게 부끄럽지 않았는데, 브런치는 달랐다.
갑자기 조회수가 폭등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급하게 얼굴 나온 사진들을 바꾸고, 맞춤법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며, 이것저것 글자색도 바꿔보면서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속물로 보였다. 주식을 해본 적은 없지만, 주식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하루종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주말 간 내 모습이 딱 그랬다. 내 조회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구독자가 늘었다고 좋아하는 나를 돌아보면서 참 미천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그렇다고 지금 초연하거나 달관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브런치 앱을 켜면 가장 먼저 통계를 쓰윽 한번 눌러본다.
어느곳에서도 인생사진이 가능한 신비의 섬 제주
'제주도, 교토와 홋카이도, 다낭과 방콕, LA, 토스카나와 남프랑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브런치'로
내 거창한 한달살기가 3음절로 줄었다. 최초에 계획한 장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글 속에서 유영하고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한 달을 기거했다. 그래서 한달이 지났으니 떠나야 하는가를 고민했다.결론은 아니다. 내가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한 달을 살았어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멋진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아내와 함께 해변을 달리고 그 기분을 만끽하면서 한 달을 보낸 뒤 "이곳에 조금 더 살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봤을 것 같다. 새로운 장소에서 짧은 시간을 여행하는 것보다 그곳에 머물면서 '한번 살아보기 위한 것'이 '한달살기'라고생각한다. 좋아하는 곳에서는 조금 더 머무르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고 그냥 더 있으면 된다.
사실 어제 이름과 관련된 글 '아빠가 뉴스에 나와요!'를 쓰면서 브런치 검색란을 처음 이용했다. 혹시 내 글과 비슷한 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면서 눌러봤는데, 역시나 내 글과 비슷한 글은 넘쳤다. 오늘 글 제목도 나름 '브런치에서 한달살기'라고 생각하고 줄거리를 '한달살기에 실패했는데, 브런치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으며, 더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하는 나' 정도로 구상했는데, 역시나 정확히 1년 전에 지금 한창 글을 쓰고 계신 출간 작가님께서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브런치에서 한달살기'란 제목의 글을 썼다.
난 안 읽었다. 아침에 쓰는 글이라 시간도 없고 내 글의 방향성을 잃을까 봐 그리고 그 내용들이 내 글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까 봐 조심스러워 읽지 못했다. 아마도 퇴고하고 '1차 발행'을 하면 읽어 볼 것 같다. 다행히 다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글을 통해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내 생각을 전달하기 전에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브런치에서한달살기의마지막 날 작은 결심으로 글 쓰기의 패턴과 방법에 변화를 주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오늘까지는 내 아침 주정을 발행하고, 내일부터는 비슷한 소재의 글을 미리 읽어보면서 내 아침 주정이 진정한 글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