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고장 난 후 이명은 계속 이어졌다. 2주 이상 입원해서 균이 퍼지지 않도록 치료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나쁜 균이며 복잡한 이름을 가졌는데, 다른 쪽으로 퍼질 경우 위험하다고 했다. 더구나 현재 상태를 1부터 5까지로 나눌 때 5 수준이라고 겁도 줬다. 하지만 아프진 않았다. 더구나 막혀서 들리지 않던 왼쪽 귀로 각종 잡음과 소음도 잘 통과했기 때문에 불안감이 커지지도 않았다.
당장 한 주 동안 더 해야 할 일도 있고 호주까지 가야 하는 중요한 일정도 계획되어서 경구약 처방으로 양해를 구했다. 태어나서 마주한 의사 선생님 중 가장 친절한 분께서는 진심 어린 권고까지 하며 2주일치 약을 처방해 줬다. 허리 숙여 인사하고 컴퓨터에 숫자 몇 개만 입력한 뒤 병원을 나왔다. 숫자를 입력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뜻으로 테크(-)가 포함된 7자리 숫자를 통해 보상받은 기분도 들었다.
바쁘고 지루하며 버거운 한 주를 보냈다. 평소 같으면 마무리하면서 맥주를 한잔했을 텐데, 귀를 걱정하며 참았다. 많은 일을 뒤로한 채 호주 일정에 집중했다. 그동안 핑계 대고 준비하지 못했던 탓에 급하게 덮어야 할 일이 수두룩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씩 허겁지겁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에 탑승했고 피곤한 육체와 정신을 이코너미석에 구겨 넣은 채 10시간을 보냈다.
호주에서 보낸 74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좋은 숙소, 영어 회의, 대사초청 오찬, 한식과 술이 스쳤고 코알라와 캥거루 몇 마리가 가방에 들어간 채 다시 이코너미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귀국한 다음 날 약속한 진료일이 되었고 고심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서 오해를 살만한 행보이기에 여러 번 고민했다. 기대도 했다. 워낙에 약이 잘 드는 편이라 분명 좋아졌을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부기가 가라앉은 것도 느껴졌고, 점점 소리도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명이 계속되는 게 거슬렸다.
2주 만에 만난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웃으며 2주 이상 치료하자고 했다. 바로 입원해야 한다며 혹시 걸리는 게 있으면 자신이 진단서에 잘 써주겠다고까지 했다. 스무 해 넘게 한 곳에서 일하면서 멈춘 적 없고 가족 없이 보낼 생각에 불안했다. 아내와 상의하겠다고 발길을 돌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기다릴 테니 상의하고 답을 달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 하루 시간을 달라고 하고 귀가하여 짐을 챙겼다. 그리고 반드시 연락해야 하는 사람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유지했던 4시 10분 알람을 껐다.